사우디 비전 2030, 지식재산권을 핵심 자산으로한 혁신 경제로 전환 추진.
지식재산권청(SAIP) 출범 이후 특허·상표·저작권 등록 증가
위조품 단속과 불법 콘텐츠 차단 강화로 기업 투자 환경 크게 개선.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랫동안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으로서 부와 국제적 영향력을 축적해왔다. 그러나 석유는 한정된 자원이며, 국제 사회의 탄소중립 흐름 속에서 에너지 의존 경제는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국가 발전 전략이 바로 2016년 발표된 ‘비전 2030’이다. 사우디는 이 비전을 통해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 문화산업, 창업과 혁신이 견인하는 지식 기반 경제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이 대전환의 중심에 있는 것이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IP)이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이 곧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이 되는 시대, 지식재산권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 정부는 2018년 지식재산권청(SAIP)을 출범시키며 체계 개편에 나섰다. 이전까지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던 특허·상표·저작권·디자인 관련 업무를 일원화하고, 권리 침해에 대한 대응 속도와 실효성을 크게 높였다. 덕분에 기업과 투자자는 안심하고 혁신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최근 공식 통계는 이러한 성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2024년 사우디의 특허 출원은 8,029건으로 전년 대비 13% 이상 증가했다. 상표 등록은 3만 1,834건에 달했으며, 저작권 등록도 1,504건으로 꾸준히 확대됐다. 이 수치는 단순한 증가가 아니라 연구개발, 브랜드 가치 보호, 디지털 콘텐츠 창작이 동시에 활발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집행 측면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23년 위조 상품 압류 건수는 3,400만 건을 넘어섰고, 3,467개 웹사이트가 불법 콘텐츠 차단 조치를 받았다. 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지식재산권 집행력이 크게 강화됐음을 보여준다.
현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리야드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한 창업자는 과거에는 권리 보호 인식이 낮아 기업 활동에 불안한 점이 많았지만, 지금은 지식재산권청의 신속하고 엄격한 집행 덕분에 안심하고 기술 개발에 몰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도 네옴(NEOM)과 같은 대규모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서 특허와 기술 보호가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며, 사우디 정부가 명확한 규정과 집행력을 보장해 기술 유출 걱정 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식재산권 강화는 첨단 기술뿐 아니라 문화 산업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매년 리야드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와 게임 엑스포는 저작권 보호가 확실히 보장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2023년 게임 엑스포에는 40여 개국 300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했으며, 참가 기업의 75% 이상이 사우디 시장 진출에 긍정적 의향을 표했다. 해외 제작사들이 안심하고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창작과 투자 활성화라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소비재 브랜드의 체감 변화도 뚜렷하다. 스타벅스, 나이키 등은 최근 몇 년간 강화된 단속 덕분에 가품 유통이 눈에 띄게 줄고 정품 시장 점유율이 확대됐다고 평가한다. 2023년 상표권 단속 건수는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고, 관련 소송 판결 건수도 40% 이상 늘었다. 이는 소비자 보호는 물론 시장 신뢰를 높이는 효과로 이어져, 사우디 유통 생태계가 점차 선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특허 심사 및 소송 절차의 신속성 제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인공지능(AI), 메타버스, NFT 등 신기술 분야에서는 아직 법적 틀이 미비하다. 이러한 영역에 대한 선제적 가이드라인 마련과 국제 지식재산권 네트워크와의 협력 강화가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위해서는 제도 완성도와 집행력의 균형, 창업·투자 환경에 대한 종합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식재산권은 더 이상 단순한 법적 권리가 아니다. 이는 기업 생존과 성장의 안전망이며, 국가 경쟁력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사우디가 추진하는 ‘비전 2030’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무형 자산을 지켜내고 키워내는 데 있다. 정부, 기업, 학계가 손잡고 지식재산권 기반의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 간다면, 사우디는 중동을 넘어 세계 혁신 경제의 중요한 허브로 도약할 것이다.
[편집자주] 박성진 박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에서 해외 주재원을 수행하며 글로벌 경영 분야에서 20년이 넘는 실무 경험과 학문적 통찰을 겸비한 전문가다. 특히 삼성엔지니어링 사우디아라비아 법인장을 역임하며 현지 프로젝트를 총괄했고, 현재는 사우디에 본사를 둔 Naba International의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과 중동을 연결하는 실질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박성진 박사의 칼럼은 매주 연재될 예정이다.
<박성진 박사, Naba International의 부회장 sj25park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