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인터뷰] ‘82년생 김지영’ 공유 “우리 모두의 이야기,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 시작”
[인싸인터뷰] ‘82년생 김지영’ 공유 “우리 모두의 이야기,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 시작”
  • 승인 2019.10.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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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공유/사진=매니지먼트 숲
배우 공유/사진=매니지먼트 숲

“엄마라는 키워드가 감정을 건드렸어요. 너무 모르고 지나갔다는 것. 키워주신 엄마에 대한 생각이 1차적으로 감정을 건드렸고, 그렇게 시작해서 지영을 둘러싼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 어머니, 누나의 얼굴이 스쳐지나갔고 감정의 연쇄작용이 생겼죠. 시나리오를 보며 느꼈던 것들이 영화에 잘 표현된 거 같아요. 어느 누구도 나쁘게 기울지 않는데 그래서 더 짠했어요.”

2016년 영화 ‘부산행’, ‘밀정’, 드라마 ‘도깨비’로 최고의 한해를 보냈던 공유가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 분)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2016년 출간 이후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한국 사회 여성들이 맞닥뜨린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고발한 원작 소설은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동시에 젠더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공유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이 여성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로 시나리오를 받고 가장 먼저 감성을 자극했던 건 어머니라는 키워드였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반성과 위로로 확장됐다.

공유가 연기한 대현은 지영의 남편으로 지영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게 된다. 영화에서 대현은 아내에게 한없이 다정한 남편으로 그려진다. 공유는 대현의 행동들이 어디까지가 현실적인 모습이고 모두의 공감을 이끌 수 있을지 고민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대현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대중이 기존에 갖고 있는 배우 공유에 대한 호감 혹은 판타지가 필요 이상으로 가미돼서 대현 캐릭터가 너무 판타지스러운 인물로 비춰질까봐 걱정했어요. 바라봐 주시는 분들이 판단할 문제지만 저 스스로 그런 우려가 있었죠.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촬영했고 영화를 본 후에도 감독님께 대현이 좀 덜 착했다면 어떨까 물었어요. 감독님 말씀은 대현이 무심하고 차가운 성향인데 갑자기 아내가 아프다고 변한다면 인물의 간극이 커져서 오히려 더 영화적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이었어요. 그 말에 납득했고 지금의 대현이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죠.”

대현은 지영을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다. 지영 역시 그런 대현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여성의 보편적 삶 속에 녹아있는 근본적 아픔이 해소되진 않는다. 극렬한 대립과 갈등이 아닌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무지들이 쌓여가며 마음의 병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더욱 현실적인 공감을 자아낸다.

“대현은 순진하고 모르잖아요. 단편적으로 볼 때 좋은 남편일 수 있어요. 이 정도면 다정하고 좋은 남편처럼 보이는데 그런 지점들이 대현에게 중요했어요. 신혼 때 아이를 낳자고 하는 부분도 천진난만해요. 그런 무지한 장면들을 더 많았으면 했는데 감독님은 지금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저는 대현이 마냥 자상하게 보이진 않을까 기우가 있었죠. 저도 디테일한 부분을 몰랐던 거예요. 아무래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분들 입장에선 대현의 행동들이 지영을 힘들게 했다는 걸 더 확실하게 느꼈을 거예요.”

극중 지영은 본인이 아프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대현은 홀로 감내하다 결국 지영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미안함에 눈물을 흘린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감정이 복받쳐 올라와 눈물을 흘렸던 공유는 실제 촬영에서도 복잡한 감정들이 요동쳤다. 

“식탁에 앉아 대현이 지영에게 속내를 토로하는 장면에서 꽤 울었어요. 답답해 보이면서 공감과 이해가 됐어요. 그리고 김미경 선배님 장면도 눈물이 났어요. 지영의 엄마가 우는 장면에서 저는 관찰자 입장이었는데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생겨서 실제로 어머니께 전화도 드렸어요.”

배우 공유/사진=매니지먼트 숲
배우 공유/사진=매니지먼트 숲

공유는 정유미와 ‘도가니’, ‘부산행’에 이어 ‘82년생 김지영’으로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동료 배우이자 관객의 입장에서 정유미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있었던 공유는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금 믿음을 확인했고 고마움을 느꼈다.

“믿음이 있어요. 관객과 시청자 입장에서도 정유미라는 배우를 신뢰해요. 호흡을 맞춰봐서 일터에서 상대배우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지도 확인해봤죠. 새로운 캐릭터라서 결과를 예단할 순 없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고마움이 생겼어요. 믿음에 보답을 해준 느낌이에요. 감독님에 대한 것도 같아요.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지만 막연하게 제가 머리로 그린 영화를 잘 만들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영화를 보니 두 분 모두에게 고마웠어요.” 

공유와 정유미가 처음 호흡을 맞춘 ‘도가니’는 청각장애인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도가니법’이 개정됐다. 젠더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한국 사회에 ‘82년생 김지영’이 긍정적인 한걸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제가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선택하지 않아요. 제 역할은 동참하고 싶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배우로서 역할에 충실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도가니’ 이후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중요한 건 지속성이에요. 그 순간의 결과만 놓고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이번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바라는 건 인식의 개선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는 정도예요. 저 역시 영화를 통해 주변 사람들이 생각났고 평소 연락도 잘 안하던 아들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죠.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 욕심과 희망은 갖고 있어요. 뭔가 대의를 꿈꾸고 모두의 인식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끝으로 공유는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각종 이슈들에 관해 생각을 밝혔다. 공유는 영화를 진영논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봐주길 바랐다.

“반론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각자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양한 시선이 존재해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가 제목처럼 김지영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분명해요. 그 말씀은 꼭 하고 싶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접하고 영화를 만들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생각은 한 여자의 이야기만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 안에 가족이 있고 사회가 있고 그 속에 사는 우리가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영화를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hyuck2@newsinsid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