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그것만이 내 세상’ 윤여정 “인생은 배반의 연속,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NI인터뷰] ‘그것만이 내 세상’ 윤여정 “인생은 배반의 연속,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 승인 2018.01.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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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아들들이 너무 잘했어요. 내가 가장 못하더라고.”

‘그것만이 내 세상’ 언론시사회부터 인터뷰까지, 윤여정은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털어놨다. 인터뷰 내내 윤여정은 예상된 대답에서 자꾸만 벗어났다. 그는 굳이 본인을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솔직한 모습들, 소위 말하는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서 풀어내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최근 방송 등을 통해 공개되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장수상회’,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 등 여전히 적극적인 작품 활동을 보이고 있는 윤여정이 올해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이병헌, 박정민의 어머니가 됐다. 영화에서 윤여정은 모두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뜨거운 눈물을 선사한다.

“이병헌, 박정민이 한다고 해서 덕 좀 본다고 했어요.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70점이고 그쪽이 90점이라면 80점은 나올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덕은 못보고 걔네 잘하는 것만 봤네(웃음). 기대 이상으로 잘했더라고요. 정민이가 노력하는 과정은 봤어요. 연주회를 마칠 때는 진짜로 박수를 쳐야하나 싶을 정도로 잘했어요. 물론 편집과 감독님 연출의 힘이 더해진 거지만 신통했어요. 나에게 저런 열정이 있을까 싶고 부러웠어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주먹만 믿고 살아온 전직 복서 조하(이병헌 분)와 서번트증후군 동생 진태(박정민 분)가 난생처음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에서 두 형제의 어머니로 분한 윤여정은 연기 인생 처음으로 부산 사투리에 도전했다. 3개월을 합숙하며 사투리를 익혔고 그 열정은 후배들과 비교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나는 열정만 보여주다 말았지. 부산 사투리 때문에 석 달을 합숙했어요. 부산 사투리가 어렵대요. 섣불리 하는 게 아니라고. 나중에는 사투리 선생님이 뻗었어요. 석 달 동안 함께 먹고 자고 하면서 아침에 연습하고 점심 먹고 또 하고, 저녁 먹고 하는데 선생님이 너무 지쳤는지 ‘저 좀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러더라고요. 다른 작품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한 적은 있어요. 전라도나 충청도는 덜 까다로운데 부산이 젤 어려운 걸 몰랐으니 덤볐죠. 이제 어느 부분에서 올리고 내리는지는 알았어요. 감독이 경주 사람이에요. 그래서 경북 사투리로 쓰셨는데 처음에는 하지 말자고 했어요. 색다르게 표현해보고 싶어서 도전한 건데 후회를 많이 했죠.”

   
 

영화 속 조하, 진태, 인숙(윤여정 분) 세 모자는 모두가 결핍을 지닌 인물들이다. 인숙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친아들 진태를 두고 도망치고 새 삶을 살며 진태를 키운다. 낳은 자식을 향한 미안함과 기른 자식을 향한 애틋함이 공존하는 인숙의 삶에는 또 다른 시련이 닥친다. 일흔을 넘은 윤여정은 기구한 인숙의 인생에 특별한 연민보다는 공감의 시선을 보냈다.

“그런 인생 많아요. 그런 인생이 더 많죠. 나 같은 사람은 상위 10%에 들어가는 행복한 사람일 거예요. 그렇잖아요. ‘살만하니까 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인생은 배반의 연속이에요. 여러분 앞에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렇다고 못사는 것도 아니에요. 굳은살이 생기면 좋은 점도 있어요. 상처를 잘 받지 않고 무심해질 수 있어요.”

‘그것만이 내 세상’에는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과 ‘충무로 차세대 연기파 배우’ 박정민이 뭉쳤다.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인정받은 두 후배 배우의 활약에 윤여정은 “내가 거름이 됐으면 좋겠다”며 관객들이 두 배우의 연기를 봐주길 당부했다. 평소 현장에서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 윤여정은 “모니터를 본다면서 하는 게 고작 잘 나오는 각도를 보고 있더라”면서 그 이유를 밝혔다. 감독을 믿고 동료 배우를 믿는다는 윤여정은 본인의 연기에 대한 평가보다는 후배가 잘해야 영화계가 발전한다며 모든 영화의 공을 넘겼다.

“이병헌은 굉장히 프로이고 정민이는 막 날개를 펴기 시작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둘과 함께 작업한 게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이병헌은 이미 만개했다고 봐야죠. 정민이가 만개하는 걸 보고 싶어요. 아마 젊었을 때는 같이 연기하는데 내가 못하고 또래 배우가 잘하면 질투심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정민이나 병헌이가 하는 걸 보면 장하고 좋아요. 그런 여유가 생긴 내 나이에 감사해요.” 

   
 

‘꽃보다 누나’, ‘윤식당’으로 윤여정은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윤여정의 인기는 그의 패션까지도 이어졌다. 윤여정 안경, 가방, 팔찌 등 다양한 아이템이 젊은 세대에서도 소비되고 있다. 이러한 파급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윤여정은 “사람들이 이렇게 예능을 많이 보는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패셔니스타’ 타이틀을 얻은 윤여정은 “협찬이 아닌 내 옷을 입는다. 그래서 출혈이 심하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지“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 드라마가 아닌 예능에 도전하게 된 계기에 관해 윤여정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오래전 배우의 길을 선택하고 인생을 걸어오며 얻은 지혜이자 가치관은 ‘사람을 보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같이 일하는 사람을 많이 봐요. 결국은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그 사람이 잘생겨서 좋다는 게 아니라 나보다 세련되고 현명하면 함께 작업하고 싶고 신뢰가 생기죠. 젊은 시절에는 하기 싫은 걸 했어요. 인생의 쓴맛을 보고는 절실해서 했어요. 밥줄이니까 최선을 다했어요. 60살을 넘기고 애들 다 키우고 결정했어요. 그 전에는 안 가리고 했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작품 선택하고, 좋아하는 사람하고 일하기로. 아이 둘 키우고 미션을 끝냈으니 나의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은 건 아니에요. 즐겁게 살고 일하는 게 최고의 사치라 생각해요. ‘윤식당’을 한 것도 나영석 PD와 그 팀을 좋아해요. 굉장히 일을 잘하고 현명하고 센스 있어요. 저런 사람이 많으면 우리나라가 발전하겠다 싶었죠. 반면에 우리 때보다도 못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보면 뒤도 안 돌아봐요. 내가 할 수 있는 사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