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허삼관' 하지원, 이보다 더 싱그러울 순 없다
[SS인터뷰] '허삼관' 하지원, 이보다 더 싱그러울 순 없다
  • 승인 2015.01.2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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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삼관 하지원

[SSTV 김나라 기자] 학창시절, 텔레비전 속 배우 고두심 연기에 사로잡혀 책가방을 맨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어떤 에너지를 갖고 있기에 날 이렇게 소름 돋게 할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참 대단해 보이면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면모에 매력을 느껴, 배우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혼자만의 꿈을 간직하던 이 소녀는 어느새 고두심과 같은 길을 18년간 걷고 있다.

이 소녀는 커서 많은 여배우의 롤모델로 꼽히는 하지원이 됐다. 이제는 ‘믿고 보는’ 수식어까지 획득한 어엿한 충무로 대표 여배우지만 아직도 마음은 그때 그대로다. 여전히 관객들을 웃고 울리기 위해 매 작품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하지원을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허삼관'에서 세 아들의 엄마 허옥란 역을 맡은 하지원

◆ ‘허삼관’ 절세미녀+억척스러운 아줌마 허옥란… “내 옷 아니란 생각에 출연 결정 쉽지 않았다”

지난 14일 개봉된 ‘허삼관’(감독 하정우)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위화의 대표작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가진 것 없는 남자 허삼관(하정우 분)이 마을 최고 절세미녀 허옥란(하지원 분)과 결혼한 뒤 11년 동안 남의 자식을 키우고 있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하지원은 애초 ‘허삼관’ 출연 거절 의사를 품고 하정우와 첫 만남을 가졌다. 처음 맡는 엄마 역할이라는 부담감보다도 억척스러운 허옥란의 모습에 거리감이 생겼다. 그간 강렬한 역할을 도맡아온 하지원이지만 거친 욕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억척스러운 면모에 ‘나랑은 안 맞아’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 역할은 처음인데 엄마라는 점보다도 억척스러운 허옥란을 표현해내는 게 더 자신이 없었어요. 원작에서도 보면 욕도 하고 억척스러운 인물인데 욕하는 연기는 자연스럽지 않고 뭔가 연습해서 한티가 나면 진짜 아니잖아요. 물론, 재밌기는 하지만 저한테는 이런 부분들이 제 옷은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대본대로 욕하는 장면을 연습했는데 결국 저한테 맞춰 자연스럽게 수정됐어요.”

   
 

여배우 하지원의 2015년 첫 변신을 담은 허옥란 캐릭터는 “난 외모도 예쁘고 재주도 많으니까 당신은 참 복 받은 사람이에요”라며 원작과 달리 새침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매력을 지닌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을 최고 절세미녀에서 허삼관의 적극적인 구애에 넘어가 남모를 과거를 안은 채 그의 아내가 되는 허옥란. 하지원의 밝고 당찬 반전 매력에 대해 기대감을 모은다.

“전쟁 직후 가난하고 강냉이를 파는 상황에서 어떻게 절세미녀일 수가 있겠느냐”라며 고충을 토로하는 하지원. 아무래도 의상이나 쥬얼리, 메이크업 제품 등의 사용에 제약이 따르는 시대물인지라 ‘절세미녀’ 수식어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공사판에서 강냉이를 들고 등장하는 허옥란의 모습을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오는 비타민걸로 상상해보면서 하지원만의 허옥란이 완성됐다.

“처녀시절 절세미녀일 때는 다들 지치고 힘들 때 ‘강냉이 사세요’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는, 비타민 같은 미녀로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내려 하고 웃는 설정은 없었는데 일부러 연기하면서 더 많이 웃었죠. 허삼관과 결혼 후에는 몸매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엄마처럼 보이고 또 영화 톤과 어울리기 위해 오히려 더 외적인 면에 신경 썼어요. 몸빼 바지나 티셔츠 등 의상을 굉장히 엄선해서 선정했죠. 엄마의 모습처럼 보이도록 최대한 내추럴하게 메이크업도 많이 안 했고요. 또 결혼 후에는 뻔뻔하면서 생활 느낌이 나게끔 대사 톤을 더 빨리 쳤어요.”

   
 

하지원 “‘허삼관’ 기대 이상의 작품 … 내면 연기 자신감 생겼다”

힘들게 출연 결정을 했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신나게 놀았다. 허옥란의 남편 허삼관(하정우 분)과 세 아들 일락(남다름 분), 이락(노강민 분), 삼락(전현석 분)이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 점이 자신을 릴렉스하게 만들어줬다. 평상시 아역배우들과 함께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었다.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하지원의 입가에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결혼 생각보다는 세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진짜 내 아들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이들을 내가 돌봐줘야 겠다가 아닌, 그냥 친구처럼 지냈어요. 함께 묵찌빠 게임도 하고 사진도 찍고 옥수수도 따러 다니고 시내에 놀러가기도 하고 너무 재밌었어요. 그러고 보니 저는 현장에서 많이 웃은 일 밖에 한 게 없는 거 같아요(웃음). 애들과는 아직도 가끔씩 문자를 주고받으며 연락하고 지내요.”

데뷔 18년 만에 모성애 연기 도전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하지원에게는 이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1남 3녀 중 둘째로서 항상 딸 입장에서만 부모님을 바라봤던 하지원은 영화를 찍고 나니 자식의 고난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일락이가 만두를 찾는 모습에서 이전에는 일락이와 함께 ‘만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마음이 아려와 그냥 보기조차 먹먹하다.

   
 

‘허삼관’을 “만두처럼 따끈따끈, 말랑말랑한 영화”라고 표현하는 하지원에게서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허삼관 마을에서 ‘힐링’을 단단히 받고 온 듯하다. 덕분에 연기에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원은 “예전에는 강한 캐릭터의 작품들을 주로 해왔는데 이제 누군가의 삶을 더 깊이 표현 할 수 있는 연기를, 좀 더 내추럴한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뭔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거나 이런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들은 촬영을 마쳐도 마음이 아픈데 행복한 엔딩을 맞는 작품은 후유증이 좀 덜해요. 이번 영화는 왠지 허삼관 가족이 그대로 살고 있을 거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많은 분들이 저처럼 이 가족의 그 다음 스토리를 궁금해 하더라고요.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봐주셔서 그런 거 같아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는 행복해서 눈물이 절로 났어요. ‘허삼관’은 제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어요.”

   
 

 하지원 “스타? 사람 마음 움직이는 연기자 되고파”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하지원. 안방극장에서는 ‘황진이’ ‘시크릿 가든’ ‘더킹 투하츠’ ‘기황후’ 등 사극과 현대극을 오가며 연기력은 물론, 작품성까지 인정받으며 연타석 홈런을 쳤다. 하지만 최근 스크린에서의 성적은 다소 아쉽다. 2009년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감독 윤제균)와 관객들의 눈물을 쏙 뺀 ‘내 사랑 내 곁에’(감독 박진표) 이후 ‘7광구’(감독 김지훈) ‘조선미녀삼총사’(감독 박제현)부터 동갑내기 연기파 배우 하정우와의 첫 호흡으로 기대를 모았던 최근작 ‘허삼관’까지 아쉬운 흥행 성적을 거뒀다.

“항상 흥행만 될 수는 없고 잘되는 작품도 있고 좀 미묘한 작품도 있고 그렇잖아요. 흥행이 부진할 때는 물론, 아쉽죠. 그런데 날씨처럼 인생이 항상 잔잔할 수만은 없잖아요. 이때 ‘슬럼프’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이런 것들이 저를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이 시간들은 제가 더 큰 걸 뛰어넘기 위해 있는 시간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저는 후회하지는 않아요. 제게 온 기회들에 모두 감사할 뿐이죠.”

지금 이 순간도 감사하다. 우연한 기회로 배우가 된 뒤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하지원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원은 “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게 너무 신기했다. 주인공이 된다는 상상조차 안 해봤다”며 연기자로 첫발을 내디뎠을 당시를 떠올렸다.

“배우로서 많은 작품을 하면서 제 안에 몰랐던 걸 오히려 알게 됐어요. 공포 영화도 못 보는데 공포물에 캐스팅되고 액션을 접하고는 더 많이 좋아하게 됐죠. 스타가 되고 싶어서 연예인이 된 거는 아니에요. 저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가 되고 싶었죠. 또 바람이 있다면 메릴 스트립이 중년의 나이에도 ‘맘마미아’에서 청바지를 입고 풋풋한 사랑을 표현하듯 환갑, 일흔 살이 돼도 멜로 연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싱그러운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에게나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같이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요.”

사진 = 고대현 기자, '허삼관'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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