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김윤석, 28년차 연기 내공의 ‘믿고 보는 배우’는 오늘도 달린다
[SS인터뷰] 김윤석, 28년차 연기 내공의 ‘믿고 보는 배우’는 오늘도 달린다
  • 승인 2016.12.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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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은 한 가지 이미지로 설명되지 않는 독특한 배우다. 워낙 다양한 모습들을 봐 왔던 덕분인지 그의 실제 성격은 무엇인지 도무지 갑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영화 속 캐릭터 처럼 매섭고 묵직한 느낌이 강할까 넘겨 짚어볼 뿐.

그러나 실제로 만난 김윤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유쾌하고, 딸의 육아 이야기에 다소 수다스러워지기도 하는 40대 후반 보통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김윤석 특유의 포스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연기에 대한 열정과 신념 덕분이었다.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속 ‘현재의 수현’으로 분한 배우 김윤석을 만났다. 이날 김윤석은 영화에서 보여줬던 모습보다 한층 핼쓱해진 얼굴로 등장했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마음 고생이 심했던 탓일까 걱정했지만 김윤석은 “최근 영화 ‘남한산성’을 촬영 중이다. 산성에 갇혀서 먹을 것도 없고 그런 배경이다보니 감독님께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특히 저는 볼이 통통한 편이라…”라는 너스레로 이러한 걱정을 불식시켰다.

김윤석은 이번 영화에서 우연히 얻은 알약으로 30년 전 자신이 있는 곳으로 타임슬립해 과거의 사건을 바꾸며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려 하는 현재의 수현 역을 맡았다. 타임슬립으로 30년 전 자신을 만나는 설정이라니, 범상치 않다 싶지만 과거 김윤석이 연기했던 캐릭터들에 비하면 오히려 이번 영화 속 ‘현재의 수현’ 역을 가장 평범한 캐릭터 축에 속한다. 장르 역시 이전보다는 잔잔한 판타지 드라마다.

“이전에 ‘면정학’ ‘마카오 박’도 해 보고 했으니까 이번에는 드라마 캐릭터를 해 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장르에 기대는 액션이나 스릴러도 좋지만 요즘에는 일상이 주는 파격이 훨씬 더 강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일상적인 것에서 오가는 감정적인 교류가 울림을 그대로 받기 때문에 더 세거든요. 하지만 그만큼 더 세밀한 표현, 절제, 계산이 필요한 연기이기도 하죠. 저는 그런 면이 재미있었어요. 어렵기도 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그냥 지르는 캐릭터는 힘으로 해도 되지만 이런 따지고 보면 더 치열한 전쟁이거든요”

그럼에도 김윤석이 이 치열한 도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거쳐왔던 캐릭터들과는 달리 의사라는 직업의 ‘인텔리’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김윤석은 “따지고 보면 검은 사제들 속 김 신부도 이태리 유학파 인텔리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인텔리 캐릭터기 때문에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이 영화가 멜로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생을 돌아보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어요. 우정도 있고 부정도 있고.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어서 출연을 선택했죠”

   
 

악령에 씌인 소녀를 구하기 위해 예식을 치루는 ‘검은 사제들’의 김신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타짜’의 아귀, 조선족 살인청부업자였던 ‘황해’의 면정학까지. 강렬해도 너무나 강렬한 김윤석의 시나리오 선택 기준이 궁금해졌다.

“시나리오를 많이 받다 보니 한 다섯 페이지 정도 읽으면 ‘이거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심지어 이제는 대본 디자인만 봐도 ‘이거 잘 썼겠다’ 어느 정도 느낌이 오더라고요. 여태 읽었던 시나리오들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고 놀랐던 시나리오는 추격자였어요. 이 간결한 지문과 많지 않은 대사들이… ‘몇 번이나 수정을 거쳐서 이 대본이 나왔구나. 이건 대단한 시나리오가 되겠다’ 이런 직감이 들었었죠”

지난 5일 있었던 언론배급 시사회 전 기술시사로 먼저 영화를 봤다는 김윤석은 영화 개봉 전부터 들려오는 호평에 대해 안도감을 전했다.

“기술 시사 때 스태프들과 함께 영화를 봤었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니 울음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지고 아빠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런 느낌이라면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조심스럽게 이루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죠. 언론 시사회 끝나고 있었던 일반 시사회에서도 분위기가 좋아서, 가뜩이나 세상이 어수선한데 따뜻한 영화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이번 영화에서 중년 남성의 로맨스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윤석은 로맨스 이야기에 의외로 촬영 당시 꽤나 쑥스러웠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로맨스는 이 정도가 딱 좋아요. 극 중에서 풍선을 들고 나오는 것도 힘들었는데…(웃음) 쑥스러워서 정말, 제가 강동원도 아니고 풍선 뒤에서 얼굴을 내밀라고 하는거에요. 영화 보는 내내 빨리 실루엣으로 넘어가라, 넘어가라 생각했었죠.

로맨스는 쑥스럽다고 말하는 김윤석이지만 영화 속에서 30년 전으로 돌아와 당시 연인이었던 채서진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김윤석은 표정만으로도 세월의 그리움을 표현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감정이입은 쉽게 됐어요. 그럴법 하겠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일찍 떠나보냈던 연인을 30년이 지나서 본다면 좋기도 하지만 애절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장면의 복병은 따로 있었어요. 채서진 씨를 바라보는 장면이라 카메라는 저만 찍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채서진 씨 자리에 보조출연자 지휘하시는 남성 분이 ‘여기 보시면 됩니다’하고 서계시는거에요. 게다가 군복 야상 같은 것을 입으시고 해병대 모자, 군화같은 워커까지 신고 계시는데 ‘이래서는 감정이입을 못하겠다’고 말려서 결국 채서진 씨를 보면서 같이 연기했었죠”

   
 

김윤석은 과거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인 채서진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영화 내내 함께 호흡하는 과거의 수현 역으로 연기한 변요한에 대한 칭찬도 아낌 없이 내놓았다.

“변요한 군의 연기요?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직접 추천했다던데?) 캐스팅 전에 후보 배우들 리스트가 있었어요. 요한 군은 그 중 한 명이었고요. 이전에 ‘미생’도 보고, ‘육룡이 나르샤’도 보면서 참 느낌이 좋은 친구였던 것이 기억나서 함께 해보면 어떨까 했었던 거에요. 게다가 요한 군도 저도 연극을 베이스로 하다보니 뿌리도 비슷하겠다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요한 군 팬 분들은 싫어하실지 모르겠지만 약간 저랑 눈매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굉장히 샤프한 이미지의 배우가 왔다면 그 미래가 저라는 것을 믿으시겠어요? 그런 부분에서 요한 군을 추천했었죠.

그리고 요한 군이 저를 몰래 많이 훔쳐보면서 연구를 했던 덕분에 저희 둘이 더욱 비슷해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찍는 중간에 스태프들이 저희 두 사람이 점점 닮아간다고 말하더라고요. 이 외에도 서로 비슷한 느낌을 극대화 하기 위해 의상 등에도 신경을 많이 썼죠”

변요한, 채서진, 그리고 딸 역할로 나왔던 박혜수까지. 김윤석은 이번 영화에서 많은 후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야 했다. 대선배인 탓에 후배들이 김윤석을 무서워했을 법도 한데, 김윤석은 “후배들을 편하게 풀어놓는 스타일이다”라며 이러한 생각을 깨놓았다.

“후배들을 무조건 편하게 풀어놓는 편이에요. 촬영하기 전에 모든 걸 다 허물어버리는거죠. 담배를 피우는 후배면 담배도 앞에서 피우게 하고, 선배를 대하는 깍듯한 벽을 없애려고 해요. 카메라 슛 들어가기 전에는 깍듯하다가 연기를 할 때는 갑자기 바뀌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같은 경우에는 요한 군도 요한 군이지만 딸 역할인 혜수와 그런 것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저도 딸이 있다보니 딸과 아빠의 관계를 잘 알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어려워서는 안된다 싶어 저희 집으로 혜수를 초대하기도 했어요. 집에서 추리닝 입고 저희 집도 보여주고 아내가 과일도 깎아주고, 계속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진짜 아빠, 딸 하는 것 처럼 하자’고 했었죠”

이러한 김윤석의 남다른 후배 대하는 법 때문일까. 그간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후배 배우들 중 그럼에도 불편했던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김윤석은 손사레를 쳤다.

“껄끄러운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아무리 후배라도 프로들이라 그 껄끄러움이 카메라에 담긴다면 그건 프로가 아니라는 것은 다 아니까요. 하정우, 유아인, 여진구, 강동원 등 모두 다 자기 몫보다 훨씬 더 잘 해내고, 개성들도 강해서 오히려 제가 배웠었죠. 각자의 개성이 다 다른데 저도 그걸 보면서 배우는거에요”

   
 

김윤석은 2007년 드라마 ‘있을 때 잘해’를 마지막으로 약 10년의 세월 동안 줄곧 스크린에서만 관객들을 만났다. 김윤석이 우리에게 ‘탤런트’보다 ‘영화 배우’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이유다.

김윤석은 이에 대해 “드라마는 자신이 없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드라마는 자신이 없어요. 드라마는 촬영을 할 때 항상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촬영 시간이 참 부족하잖아요. 심지어 대본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매 회 찍어가면서 대본이 완성되는 거라, 제가 이 시스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요”

그렇지만 김윤석은 최근 국내 드라마 업계에도 심심치 않게 도입되고 있는 ‘사전제작 시스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미드, 영드 이런 것들이 유행이잖아요. 아마 그렇게 완성도 있는 이야기로 사전제작 시스템을 도입해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 내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더 깊숙하게 파고들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시스템이 들어온다면 저 또한 드라마를 안 할 이유가 없겠죠. (나홍진 감독의 드라마라면 어떨까?) 글쎄요. 나홍진 감독의 작품을 10부작으로 찍는다면, 사람이… 아주 열심히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이번 영화로 가족간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꼈다는 김윤석은 이날 인터뷰에서 딸의 이야기가 나오자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작품이 끝나면 항상 가족들이랑 여행을 가요. 그게 저희 집의 불문율이고 어디로 갈까 하는 것이 재미이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사실 딸들이 커가는 것을 보고 걱정도 되고 이런 것들이 있다보니 항상 제 생각의 반 이상은 그쪽으로 쏠려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결국 남는 건 가족밖에 없어요. 이건 정말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해요. (딸 육아 조언을 해준다면?) 딸이 어릴 때 부터 10살 까지. 그 변화가 어찌나 예쁜지 몰라요. 단 한 순간도 놓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2016년의 12월이 채 한달도 남지 않은 지금, 김윤석은 촬영 중인 ‘남한산성’의 촬영에 매진 할 것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남한산성’을 내년 4월까지 찍어야 해요. 마음의 각오를 하고 열심히 찍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통해 배우 모두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죠. 무엇보다 끝까지 후반 작업을 놓지 않는 감독님의 치열함을 위해서라도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고,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이 따뜻해졌으면 좋겠어요”

[스타서울TV 홍혜민 기자/사진=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