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끝을 알고 시작한 정진영의 ‘화려한 유혹’
[SS인터뷰] 끝을 알고 시작한 정진영의 ‘화려한 유혹’
  • 승인 2016.03.21 0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뻔한 통속극일 수도 있었던 MBC ‘화려한 유혹’(연출 김상협, 김희원|극본 손영목, 차이영). 범접할 수 없는 상위 1% 상류사회에 본의 아니게 진입한 여자가 일으키는 파장을 다룬 드라마다. 하지만 ‘화려한 유혹’은 막장이라고 질타 받을 수도 있는 소재를 인간 사이의 심리를 통해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SBS ‘육룡이 나르샤’란 대작이 동시에 시작됐지만 1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선전했다.

그 중심에는 ‘할배’ 강석현을 연기한 정진영이 있었다. 남녀 주인공의 복수 대상인 강석현 총리는 어느새 복수의 대상이 만이 아니라 ‘할배파탈’로 불리며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방송 인터뷰와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들었을 ‘할배파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할배파탈’ 별명이 있다고 해서 무슨 뜻인가 의아했죠. 고맙고 황송스럽죠. 강석현의 매력을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정말 무리가 있는, 어울리지 않는 설정, 멜로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사랑하고 결혼하고 치매 걸리고 죽는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어요. 그래도 멜로는 부담스러웠어요. 감정이 순백하기 때문에 배우들은 멜로 하는 것을 좋아해요. 근데 나이 어린 여자와 좋아하고 결혼하는 것이잖아요. 어떻게 설득할까? 고민을 했어요. 결국 나의 과제니까 제 감정으로 소화해 내야해요. 강석현의 바라보고, 느꼈는데 그런 마음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것 같아요. 파탈이란 단어가 치명적이고 위험하다는 건데 그야말로 흔치 않기 때문에 진귀하게 보인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50부작인 ‘화려한 유혹’에서 강석현은 45부인 지난 8일 죽음을 맞으며 하차했다. 다른 배우들은 촬영이 남아 있었지만 정진영은 종영 전 촬영을 마친 것. 이에 여행을 다녀오며 마음을 정리했지만 인터뷰를 하고 강석현, ‘화려한 유혹’을 회상 하니 어딘가 우울해졌다.

“끝나고 잘 빠져나올 것 같았어요. 사흘 째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우울해지네요. 드라마라는 게 다른 생각할 여지를 안 줘요. 인터뷰를 하다보니까 오늘(17일) 새벽에 우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리적인 상흔 탓일 수도 있고요. 배우는 마음이 움직이나 봐요. 몇 개월 가져온 감정을 되새기니 고단했구나하는 걸 인정하고 있죠. ‘왕의 남자’도 오래 갔어요. 어둡고 깊은 곳을 파고나면 그래요. 앞으로 삶을 힘들 게 할 정도는 아닌데, 사람이라는 게 자기에게 조화된 심리와 정서 감정을 안정시켜놓고 사니까요. 강석현 감정을 마구 끌어다 제 안에 넣어 충돌하는 상태죠.”

   
 

강석현은 극 후반 심장병을 얻고, 치매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권수명(김창완 분)에 의해 삶의 끝을 맞았고, 다행인지 진형우(주상욱 분)에게는 용서를 구했다. 이런 전개가 강석현이 저지른 짓에 면죄부를 주고, 미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강석현은 비극의 시작에 대한 참회는 했지만 벌을 받지않고 눈을 감았기 때문.

“강석현이 조성한 비자금, 그것에 관련된 문서에서 비극이 시작돼요. 강석현이란 인물은 여러 일을 겪으면서 반성을 하고 죽는 전개에요. 그 반성을 은수는 강석현이 죽은 뒤에 알아주지만. 원래 설정 그대로 갔어요. 두 사람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는 운명이잖아요. 설정보다 멜로가 진해지긴 했어요. 이 사람에 대한 정체를 모르고 선인지 악인지 본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긴장감 조성하겠다는 게 원래 구성인데 멜로가 강해지니까 진심이 담아지더라고요. 애초 설정, 운명대로 죽었어요. 이 드라마가 재밌는 게 복잡하게 사람 사이에 연관을 지어놨어요. 시청자들과 두뇌게임을 하고자 한 게 작가와 감독 의도죠. 통속적인 이야기를 다른 터치, 결로 풀겠다는 거였습니다. 뻔 한 것을 뻔 하지 않게 간 게 이 드라마의 미덕이 아닌가? ‘인간은 모두 선하지만 조금씩은 악하다’는 대사가 있어요. 그런 게 화려한 유혹이 가진 특징이에요.”

앞서 말했듯 정진영은 강석현의 끝을 알고 드라마를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강석현의 마지막을 알지 못했기에 더 놀랐다. ‘할배파탈’이란 수식어까지 보내며 강석현과 정진영을 아끼기까지 했다. 하지만 심장병에 치매가 걸려 세상과 이별했다. 죽음을 위장한 강석현의 계획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들도 나왔지만 결국은 죽음이었다.

“강석현이 청미를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후에 야수가 됐어요. 상처 속으로 파고드는 삶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아요. 마지막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 은수를 만났는데 거울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장병에 치매는 재밌는 메타포였어요. 야수가 되면서 심장이 굳었고, 뇌도 냉철하지만 기쁨이란 것 잃은 기계적인 이성이었으니까요. 굳어버린 심장을 그 뇌로 호도하면서 살았어요. 은수를 만나 심장이 풀리고 피가 돌아 그동안 지켜온 게 흔들렸고 병을 얻게 된 거죠. 그래서 우울했나 봐요. 죽는 장면은 세트 촬영을 했는데 배우들이 많이 울었어요. 장례식 촬영은 직접 안 갔는데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죽는 배역을 많이 했어요. 그 자체는 묘하지 않은데 극에서 제가 죽은 다음을 보는 게 묘했어요. 대본을 안보고 방송으로 확인한 건데 내가 앉은 자리, 내가 걷던 복도인데 내가 없잖아요. 난(강석현) 죽었더라고요. 죽은 다음에 영혼이 있다면 잠시라도 저렇게 세상을 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장에서 망자에 대한 추모를 하는데 잘해야겠구나 싶었죠. 편히 갈 수 있게 남은 사람들이 잘 살아야 겠다고요.”

   
 

‘화려한 유혹’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이 나오는데 대체로 나쁘다. 권력, 돈을 좇고 서로를 미워하면서 속으로는 감추는 것도 많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그랬다. 강석현 집 식탁에서는 가족들이 서로에게 날을 세우거나 마음에 꽂히는 말들로 상처를 줬다. 순식간에 1천억, 2천억이 왔다 갔다 하는 것 보다 더 복잡하고 지치는 일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상처 입은 사람이에요. 계속해서 갈등 일으키고 싸우는 이유는 내 상처가 더 크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서로 상처 크기를 재지 않고 이해한다면 훨씬 더 편한 세상이지 않았을까? 그러지를 못했으니 갈등이 생기고 독하게 물어뜯고 하는 게 우리 드라마 형국이에요. 결국에는 누가 착하고 나쁘고를 가리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인정하고 큰 상처를 이해해주느냐가 오히려 의미 있는 인간의 발견이 아닐까? 형우와 석현의 화해도 그런 점이 선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은수와 석현은 상처 싸움은 아니었고. 그런 생각이 든다. 다행인 게 반성을 하고 죽었다는 거. 반성도 안하고 부끄러움 안 느꼈다면 처참한 죽음이죠. 은수가 한 번도 안 웃어준 것은 어쩔 수 없고요. 정통 사회는 아니지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삶을 반성하는 거요.”

‘화려한 유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정진영은 항상 진지했으며, 작품에 대한 애정 또한 숨기지 않았다. 처음엔 ‘화려한 유혹’을 고사했던 정진영이지만 지금은 자신을 설득해준 작가, 감독이 고맙다. 안했으면 아쉬웠을 거라고. 아쉬운 정도가 아니었을 거라고 한다. 시청자들 역시 정진영이 연기한 강석현, 강석현을 연기한 정진영이 고맙지 않을까?

[스타서울TV 이현지 기자/사진=MBC, FNC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