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이민호, 꽃보다 남자의 일리 있는 변신 (‘강남 1970’)
[SS인터뷰] 이민호, 꽃보다 남자의 일리 있는 변신 (‘강남 1970’)
  • 승인 2015.02.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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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TV 김나라 기자] 그저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 속 도시 남자인 줄 알았던 배우 이민호(27)가 첫 스크린 주연작 ‘강남 1970’(감독 유하)에서 얼굴에 ‘못생김’까지 묻히고 김종대로 분했다.

고아 출신 밑바닥 청춘 김종대를 완벽 표현해내기 위해 7개월간 로션조차 바르지 않고 맨 얼굴로 촬영에 임한 것이다. 극중 넝마주이 시절을 연기할 때는 촬영장에 방문한 어머니마저 안쓰러운 눈빛을 지으며 “반찬이라도 챙겨 줘야 하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는 비주얼을 선보였다. 

‘강남 1970’ 개봉 전날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민호는 “‘상속자들’ 출연 이후 불과 1년 만에 풋풋함이 사라졌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분명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는 이민호의 거친 남성성은 낯설지만 한층 짙어진 배우의 향기로 반가운 매력이 가득하다.

   
▲ '강남 1970'에서 김종대(이민호 분)의 넝마주이 시절 모습

1월21일 개봉된 ‘강남 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에 이은 유하 감독의 거리 시리즈 완결편으로 강남땅 개발이 막 시작되던 1970년대를 조명한다. 고아 출신의 두 젊음, 김종대와 백용기(김래원 분)가 강남땅을 둘러싼 이권 다툼의 최전선에서 정치권력의 행동대원이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 왜 ‘강남 1970’ 김종대? “제가 이미지 변신을 위해 움직이는 배우는 아니잖아요”

지난 2013년 ‘상속자들’에서 “나 너 좋아하냐”라는 대사 하나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꽃보다 남자’ ‘시티헌터’ ‘신의’ 등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중국내 인기는 이 작품을 통해 폭발했고 명실상부 한류의 선봉장 자리를 굳혔다. 이민호는 이 기세를 몰아 여심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차기작으로 핏빛이 난무하는 19금 액션 영화를 택했다. 의아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강남 1970’을 선택했을 당시 대부분 ‘왜 영화를 해’라는 반응을 보였어요. ‘상속자들’ 끝나고 만약 비즈니스 모델대로 움직였다면 다른 작품을 선택해 훨씬 더 많은 수입을 벌어들였을 거예요. 그래서 주변분들이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고 ‘이 시기에 왜?’라는 반응을 보인 것 같아요. 사실 ‘꽃보다 남자’를 끝낸 이후 20대 후반쯤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거든요. 아직 어린배우들이 어떤 캐릭터에 맞는 느낌이 안 나는데 무리하게 소화를 하려고 했을 때, 관객입장에서 영화를 보면 설득력이 없어 보이거나 몰입이 조금 힘들더라고요. 저는 그런 실수를 범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이민호의 필모그래피에 영화가 처음 오른 것은 아니다. 2008년 ‘강철중: 공공의 적 1-1’(감독 강우석)에서는 단역으로 ‘울학교 이티’(감독 박광춘)에서는 학생 역할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쳤다. 이후 주연급으로 자리매김한 뒤, 영화의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을 채우려면 무게감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이로부터 약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유하 감독을 만났다. 이민호에 따르면 “나이스 타이밍”이다. 그는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고 ‘대본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말을 이번 작품을 통해 느꼈다”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27세 나이에 처음 ‘강남 1970’ 대본을 접한 이민호는 유하 감독의 배려로 ‘상속자들’을 끝내고 스물여덟 봄, 드디어 내재돼 있던 남성미를 표출할 수 있는 김종대라는 새 옷을 입었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미지 변신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제가 이미지 변신을 위해 움직이는 배우는 아니에요. 아직은 20대이기 때문에 그런 강박관념이 크게 있는 거 같지도 않고요. 그랬다면 아마 제 필모그래피에 ‘상속자들’의 김탄은 없었을 거고 그때쯤 배우로서 변신하고자 했을 거예요. 어쨌든 이 영화는 여심 잡는 영화는 분명 아니잖아요. 항상 여성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달달한 역할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일부러 남자답게 보이려고 선택한 건 아니에요(웃음). 그냥 단순히 지금 나이쯤 영화를 하고 싶었고 또 유하 감독님은 굉장히 신뢰가 가는 분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 할 수 있었어요.”

‘강남 1970’을 통해 자신 안에 또 다른 모습 하나를 꺼낸 거 같다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늦게 하길 잘했다”는 이민호의 강한 자신감이 담긴 덕분일까,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개봉 5일 만에 100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이제 한 작품 마쳤을 뿐인데 벌써부터 영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드라마도 놓칠 수는 없지만 많은 배우들이 영화하고 나면 영화만 하고 싶다는 얘길 하듯이 저도 사실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에요(웃음). 드라마 촬영의 경우 대부분 4회 이상부터는 생방송으로 진행이 되다 보니까 쪽 대본을 받으며 연기해야 하는 상황도 많고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편하게 한다고 하는데 딱딱한 말투가 나올 때도 있어요. 반면 영화는 일단 잠을 푹 잘 수 있고 전체 대본을 이미 다 숙지하고 촬영에 임하기 때문에 드라마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화면에 나오는 거 같아요. 육체적 피로감이 덜해서 확실히 몰입감도 더 높아지는 장점이 있고요.”

   
 

◆ 청춘배우 이민호, 청춘에게 고하다 

‘강남 1970’은 청춘이 폭력과 만나는 드라마로서 거리 시리즈의 주제 의식을 3부작 중 가장 큰 스케일로 보여주고 있다. 가진 것 없이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던 청춘들의 초상이라는 점에서 ‘청춘 3부작’이라고도 한다. 한국 부동산 신화의 시작이 된 1970년, 가진 건 몸뚱이 하나와 믿을 건 싸움 실력뿐인 김종대 역시 땅을 향한 열망을 강하게 드러내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 시대를 살아간다. 이민호가 이를 통해 2015년의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도 종대와 같은 20대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난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이런 방향성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하고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70년대보다 이런 것들을 깨 나갈 수 있는 방향들이나 방법들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직업으로 삼을 수 있고 다양한 길들이 열려 있잖아요. 이 시대에 비하면 우리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들이에요. 20대 때 누구나 하는 당연한 고민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향해서 더 달려나가고 지금에 살고 있음을 감사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20대 초반 김종대 못지않은, 어쩌면 더 칠흑 같은 암흑기를 거쳤다. 데뷔작인 2006년 ‘비밀의 교정’을 마치고 단짝인 배우 정일우와 함께 강릉 여행을 떠났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음주운전차량과 정면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가해 차량에 타고 있던 2명은 모두 사망했으며 이민호는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남들은 캠퍼스를 누비며 진로에 대해 고민할 시기에 이민호는 ‘내가 다시 걸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며 약 1년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회복 후 처음 출연한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는 방송 8회 만에 조기 종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저는 연기를 즐길 수 있는 배우가 아니었어요. 데뷔작을 찍을 때만 해도 굉장히 긴장을 많이 하고 모든 것들이 겁나서 촬영장 가는 걸 두려워했죠. 활발하기는 했지만 내성적인 성격이었거든요. ‘꽃보다 남자’를 통해 배우로서 떨어진 자존감과 자존심이 많이 회복됐고 인간 이민호도 조금 더 멋진 남자가 될 수 있게끔 해준 계기가 됐어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죠. 저를 세상 밖으로 던져준 것도 ‘꽃보다 남자’고 물질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를 해소해준 작품이기도 하고요(웃음). 여러 방면에서 정말 고마운 작품이네요.”

   
 

◆ 이민호 “목표는 없다… 지금 이 순간 최선 다할 뿐”

한류스타답게 수시로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해외 스케줄을 소화하고 1년에 광고 스케줄만 170일이나 잡혀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민호를 열심히 할 수 있게끔 만드는 힘은 바로 책임감이다. 주연에 대한 책임감, 작품을 기다려주는 팬들에 대한 책임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등 많은 책임감들이 계속해서 쌓이고 커져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났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이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 안에서 인간 이민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들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느 정도 편하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 생각 안 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저를 풀어줘요.”

2015년 이민호는 ‘소처럼 일하자’는 주의로 중반기에는 영화, 하반기에는 드라마를 계획하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때에만 할 수 있는 작품을 위해 직진 중이다. 만약 일을 안 하고 있었더라면 이민호는 “20대 때 해봐야 할 모든 것들을 해보고 신나게 놀았을 것 같다”고 말한다.

   
 

2013년과 지난해에는 청춘이라는 단어에 꽃혀 청춘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을 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대, 서른으로 접어든 배우 이민호의 모습이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이 돼있을지는 저도 궁금해요. 저는 목표가 없어요. 꿈도 없고요. 어느 순간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 맞춰서 살아가는 사람이 돼버렸어요. 5년 뒤, 10년 뒤 제가 계속 연기를 하고 있을지 또는 배우로서 어떤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30세가 되자마자 갑자기 사이코패스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나 회춘 할래’라는 마음에 교복이 입고 싶다고 할지도(웃음). 시대 흐름, 제 생각의 바뀜을 중요시 여기고 그때그때 꽂히는 게 있기 때문에 진짜 몰라요. 일단 계속해서 달려나가는 시기인 것만은 분명해요.”

사진 = 고대현 기자, ‘강남 1970’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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