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정우 “‘응답하라 1994’는 진짜 멋진 놈이에요” ①
[SS인터뷰] 정우 “‘응답하라 1994’는 진짜 멋진 놈이에요” ①
  • 승인 2014.01.26 0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우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김숙현 기자] ‘남편 찾기’는 지난해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94’(연출 신원호 | 극본 이우정)의 가장 큰 화제였다. 시청자들은 혈안이 되어 성나정(고아라 분)의 남편 김재준이 누구인지 추리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리고 이내 최종회를 통해 밝혀진 진정한 주인공의 몫은 배우 정우에게 돌아갔다. ‘응답하라 1994’의 핵심, 김재준이라는 이름의 주인인 쓰레기를 연기한 정우를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루카511에서 만났다.

일요일 아침부터 미안하다고 거듭 허리를 숙인 정우는 전날 얇은 옷을 입고 촬영하느라 감기에 걸리고 체력이 저하된 상태였다. 심지어 최근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잠 문제로 남모를 고충까지 겪고 있었다. KBS 2TV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연출 윤성식 | 극본 정유경)과 ‘응답하라 1994’에 연달아 출연하며 1년 여 기간 동안 쪽잠을 자는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것. 시간이 주어져도 편히 잘 수 없는 게 울고 싶을 지경인지라 평소 좋아하는 커피도 선뜻 마시기 꺼려진다고. 그럼에도 정우는 밝은 표정을 지은 채 매 질문마다 진지하게, 또 살갑고 쾌활하게 롤러코스터같은 모습으로 기자를 들었다 놨다 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응답하라 1994’는 정우를 위한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원호 PD가 전작 ‘응답하라 1997’ 때부터 “어떻게 등장시킬지 몰라도 무조건 하고 싶으니 정우 찾아와라” 할 만큼 정우를 탐낸 일화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성나정의 남편 김재준이 쓰레기(정우 분)임을 알고 나서 돌이켜 본 ‘응답하라 1994’에는 쓰레기가 김재준임을 암시하는 코드가 속속 드러났다. 수많은 배우들 중 이렇게나 제작자에게 무한 신뢰를 받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기분 좋죠. 직접 감독님께 듣진 못했지만 소문으로 접하고 매체를 통해 정확히 인지하게 됐어요. 호감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셨다는 게 무척 기분 좋고 감사하더라고요. 정말요.”

   
정우 ⓒ SSTV 고대현 기자

◆ “쓰레기, 내가 아니라도 분명 잘 됐을 것”

쓰레기는 ‘응답하라 1994’ 내에서 가장 복합적인 요소를 가진 캐릭터다. 겉으로 보기엔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천재적인 실력을 갖춘 의대생이며 아닌 척 하면서 세심하게 상대를 챙기고 사랑에서는 진정한 남자다. 가진 것이 많은 캐릭터는 보여줘야 하는 게 많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부담스러울 만도 하다.

“보여줘야 될 게 많으니까 좋을 수도 있고 그래서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저는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응답하라 1994’를 하진 않았어요. 쉽게 말하자면 ‘여기서 내 역량을 다 발휘하면서 다 보여줘야지’라는 마음으로 참여한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죠.”

그는 ‘응답하라 1994’에 임하면서 원래 자신이 가진 것과 제작진이 만들어 준 놀이터가 만나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놀다 보니 즐거운 분위기가 탄생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장의 시너지는 시청자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작품의 반응이 좋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즐거운 현장에서 다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데 남다른 의미를 느꼈다고.

“신원호 감독님은 ‘직업이니까 한다’고 말씀하실 때도 있었지만 제가 보기엔 분명히 좋아하는 일이고, 천재성을 갖고 계세요. 이우정 작가님도 마찬가지인 게 지금까지 다른 작품에서는 애드리브를 하거나 대사의 토씨를 제 입맛에 맞게 바꾸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응답하라 1994’는 대본이 매우 좋아서 신경 쓸 게 없더라고요. 그냥 나와 있는 대로 대본 읽고 인지해서 숙지하고. 다만 그건 있죠. 쓰레기가 되려고 노력하진 않았어요. 그냥 ‘내가 쓰레기구나’ 하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라고 말씀하셨고.”

사전 촬영 분이 있었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밤샘 강행군과 생방송에 맞먹는 살인적인 촬영을 진행했다. 심지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표현해야 할 감정이 더욱 깊어지면서 최상의 컨디션에도 그리기 벅찰 만한 감정 소모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도 연기를 끌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팀워크’였단다. 배우들 간 팀워크를 뜻하나 싶었는데 스태프들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한 명도 빼 놓지 마세요”라고 신신당부한다.

“촬영 감독님, 조명 감독님, 동시녹음 감독님, 소품 팀들, 연출부, 제작부 등등! 그 분들의 힘이에요. 그 다음이 배우고요. 물론 배우들의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저는 스태프들이 우선인 것 같아요. 이 모두가 하나로 뭉쳐서 ‘응답하라 1994’ 팀인 거죠. 아마 제가 아닌 다른 배우가 쓰레기 역을 했을지라도 이 작품은 반드시 잘 됐을 겁니다.”

   
정우 ⓒ SSTV 고대현 기자

◆ “시청자 분들이 보신 그대로예요”

쓰레기가 여심을 설레게 한 행동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불시에 튀어나오는 존댓말은 깨알 같은 재미로 시작해 극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정신병자야”를 외치다가도 툭툭 등장하는 “삐삐 인사말 녹음해 주세요”, “휴지 좀 주세요” 등 간단한 문장부터 “오빠가 미안해요”, “오빠도 많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정점을 찍은 “오빠랑 결혼해주세요”까지. 이 역시 정우가 만들어낸 결실이 아닐까 싶었다.

“존댓말 대사들은 초반엔 대본에 없었어요. 그냥 제 입에서 나온 거였는데 나중에 프러포즈 장면 속 존댓말은 대본대로 한 거예요. 특히 프러포즈 장면은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했던 걸로 기억해요.”

쓰레기와 성나정이 맺어지기까지 성나정-쓰레기를 칭하는 ‘나레기’ 커플의 서사를 보여준 시점은 먼저 쓰레기를 좋아하기 시작한 성나정 중심이었다. 또 성나정만을 바라보던 칠봉이(유연석 분) 역시 한 회 전체를 장악하며 짝사랑을 털어냈다. 그에 비해 쓰레기의 의중이 드러나는 순간은 비교적 흔하지 않았다.

“많이 숨겼던 것 같아요. 쓰레기의 감정에 관해 시청자 분들이 고민할 수 있는 장면들을 많이 던지기도 했고. 또 나중에 있을 시원함을 대비해 약간의 궁금증이 쌓이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쓰레기는 성나정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쓰레기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으로 혼란스러워하던 빙그레(바로 분)는 ‘응답하라 1994’ 17회 ‘사랑, 두려움 II’에서 부산에 있는 쓰레기를 찾아 ‘밥 사 달라’는 청의 마지막이 된 국밥을 먹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간 쓰레기의 지적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선배님’ 호칭을 고수하던 빙그레가 비로소 쓰레기를 ‘형’이라고 칭했을 때 쓰레기는 빙그레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지, 그리고 그런 쓰레기의 심경을 정우는 얼마나 염두에 두고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시청자 입장과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요? 저도 알쏭달쏭하게 연기하되 빙그레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아예 안 주진 않았어요.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형으로서 빙그레의 마음을 받아준 것 반, 빙그레가 정체성을 다잡고 나를 동성의 형으로 정리했구나 싶은 마음 반. 그 느낌 그대로 하려 했는데 시청자 분들이 그렇게 봐 주셨다면 성공한 거겠죠.”

   
정우 ⓒ SSTV 고대현 기자

◆ “쓰레기 나이였던 24살, 찰흙으로 길을 다지고 있었죠”

‘응답하라 1994’ 신촌 하숙 7인방 중 1994년을 가장 생생히 기억하는 이는 가장 연장자이자 동갑내기인 정우와 김성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기억을 듣고 싶어 이야기를 꺼내자 생각지 못한 ‘춤’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1994년으로 가서 엿보고 오고 싶을 만큼 궁금증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중학교 때였고 춤추는 거 좋아했어요. 반 친구들 앞, 전교생 앞에 나가서 춤추는 정도? 그때 좀 추긴 췄어요. 하하하! 어린 나이 치고 곧잘 췄죠.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니고 비디오 보면서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춤 따라 추고. 집이 워낙 엄해서 친구 집에서 잔 적도 거의 없어요. 수업 끝나면 바로 집에 들어가야 했지만 반항심 같은 것도 없었고, 그냥 파릇파릇하고 좋은 기억들만 있어요. 학창시절에 흔히들 가지고 있던 풋풋한, 에너지 넘쳤던 시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 학교에서 애들이랑 까불고 굉장히 개구쟁이였어요.”

쓰레기의 첫 등장 나이와 맞물리는 정우의 24살은 이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보통의 24살에 비해 깊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쓰레기를 떠올리며 실제 정우의 24살을 궁금해 하자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찰흙으로 다져나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는 명언 수준의 답이 평소 ‘인터뷰 미남’이라 알려진 명성을 인정하게 한다.

“그 길이 나중에 아스팔트가 될지, 자갈밭이 될지 모르지만 찰흙으로 빚어서 다져나가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또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24살짜리 애가 뭘 알겠어요. 하고 싶은 건 배우의 길이지만 어떤 배우를 좋아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어떤 영화나 연기를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지금도 그걸 다 알 수는 없고 앞으로도 배워나가야겠지만 그때는 기본이 안 돼 있었다고 할 수도 있죠. 수준 미달인 학생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냥 ‘해야겠다’는 파이팅만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 밀고 나가려 하고 앞으로 무작정 전진만 하려고 하는. 찰흙을 탁탁탁 쳐 가면서요.”

정우가 다져온 찰흙 길은 14년 만에 탄탄대로가 됐다. 고속도로는 아니었지만 차근차근 튼튼하게 만들어진 길을 걷던 정우는 ‘응답하라 1994’를 만나 메소드 연기(배역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배역 그 자체가 되는 기술)에 관한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선배님들 중 배역을 평소 일상에 접목해서 생활화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에는 그걸 잘 이해 못 했어요. ‘정말 그런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워낙 촬영 기간과 호흡이 길고 회차가 많은 캐릭터에 드라마 첫 주연이다 보니 제 생활에도 쓰레기가 조금씩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거창하게 ‘메소드 연기를 느꼈다’는 생각 자체는 못 했고, 뒤늦게 돌아보니 선배님들이 말씀하시는 연기 방법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런 방법도 있겠구나’하는 경험을 해서 굉장히 신기했어요.”

한 작품에 임하면 그 작품을 한 명의 인간으로 느낀다는 정우에게 ‘응답하라 1994’는 어떤 인간이었냐고 묻자 “멋있는 인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응답하라 1994’라는 인간을 곰곰이 생각하며 “멋진 놈인 것 같아요, 진짜 멋진 놈이에요”라고 한참을 곱씹었다.

[보도자료 및 제보=sstvpress@naver.com

Copyright ⓒ SS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