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남영동 1985’ 박원상 “전라노출? 아내는 단체관람 한대요”
[SS인터뷰] ‘남영동 1985’ 박원상 “전라노출? 아내는 단체관람 한대요”
  • 승인 2012.12.0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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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여물어 가는 배우를 꿈꾸는 박원상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유수경 기자] ‘남영동 1985’. 상상만 해도 힘든 고문 피해자 역할. 그 긴 여정을 마친 박원상의 얼굴은 의외로 평안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언론 시사회 초반 마음이 먹먹해서 눈물이 나 고생했다고 털어놓았다. 88학번인 박원상은 그 시대의 언저리를 살아온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아니, 얼핏 알았어도 ‘내 일 아니니까’ 하고 지나친 사람 중 한사람이다. 그게 그가 쏟아낸 눈물의 가장 큰 이유였다.

실제로 박원상은 요즘 ‘제2의 배우 인생’을 걷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러진 화살’ 이전에도 늘 연극과 영화를 꾸준히 해 왔지만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불만은 없었다.

“제가 좋아했던 걸 한 번도 놓지 않고, 지금까지 인생의 절반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물론 2012년 한 해 동안 정지영 감독님과 두 편의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죠. 감독님의 영화 ‘헐리웃 키드의 생애’ ‘하얀 전쟁’ 같은 영화를 6~7번씩 봤으니까요.”

   
안으로 여물어 가는 배우를 꿈꾸는 박원상 ⓒ SSTV 고대현 기자

◆ 잊을 수 없는 2012년

배우 생활을 꽤 오랜 시간 해 온 박원상은 상기된 얼굴로 정지영 감독의 얘기를 늘어놓더니 이내 안성기, 이경영 등을 연이어 언급한다. 마치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를 떠올리는 소녀팬 같이 들뜬 모습이었다.

“안성기나 이경영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굵게 있었던 거죠. 연극이든 영화든 저에게는 한 작품씩 만나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기도 하고요. 연극할 때도 너무 좋았던 게 제가 객석에서 침 흘리며 바라본 사람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기를 한다는 게 신났거든요.”

“‘화려한 휴가’ 때도 안성기 선배와 한 앵글 안에 들어가 있는 게 너무 신기한 겁니다. 선배님을 따라다니면서 ‘하얀 전쟁’ 때 얘기를 묻고 듣고 좋아한 기억이 나요.(웃음)”

박원상은 올 한해가 본인에게 ‘굉장히 굵은 글씨로 남아있을 해’라고 설명했다. 나중에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2012년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한 해가 됐다.

‘남영동 1985’는 물론 편안하고 유쾌한 영화는 아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행복한 마음으로만 떠올릴 수 있는 영화는 아닐 터. 그러나 가슴이 먹먹하고 슬프지만 반드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영화이기도 하다.

   
안으로 여물어 가는 배우를 꿈꾸는 박원상 ⓒ SSTV 고대현 기자

◆ 시늉도 죽을 듯 힘들더라

“관객들이 팝콘 먹고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는 분명히 아니죠. 처음에는 칠성판에 묶여서 물고문 당하는 장면을 찍을 때 걱정이 너무 많았어요. 제가 어릴 때 계곡에 빠진 이후로 물공포증이 있거든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촬영에 들어간 후 극도로 당황하는 박원상에게 명계남은 ‘호흡으로 하란 말이야. 임마, 우리가 진짜 고문해줄까? 고문당할래? 정신 차려라’라고 말했다. 후배가 고통 받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쓴 소리를 한 것.

“선배님 말이 백번 맞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거죠.(웃음) 쫑파티 때 제가 농담으로 ‘이 영화를 찍으면서 방만 했던 몸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고 물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감사하다’는 말을 했어요. 그런데 농담이긴 하지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실제로 박원상은 고문 피해자 역을 연기하면 할수록 요령이 생기고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당시 일을 고스란히 써내려간 책을 보면 ‘고문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무서워지고 더욱 낯설어지는 것’이라고 돼있다. 양수리 셋트장에서 연기를 한 그는 현실과 영화의 괴리감과 함께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다.

“‘나는 시늉만 내는데도 죽을 것 같이 힘든데 그 분들은 이걸 어떻게 버텼지?’ 그런 생각을 하면 몸이 힘든 거보다 더 힘든 거예요. 이 영화는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의 어느 기억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하는 그런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으로 여물어 가는 배우를 꿈꾸는 박원상 ⓒ SSTV 고대현 기자

◆ 성기 노출? 고민 안 했다

박원상은 이 영화 속에서 물고문 뿐 아니라 전기고문까지 당한다. 현실감을 더욱 높이기 위해 그는 성기 노출까지 감행하며 전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고문이라는 거는 옷을 벗기는 것에서 시작을 해요. 사람들의 가치를 처음부터 해제 시키는 거죠. 구타가 들어가고 몸을 옭아매면서 의지를 박탈해가는 과정이에요. 고문을 가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행위이고요. 감독님이 ‘부감샷이 필요한데 여기선 다 벗어야 된다’ 하시더라고요. 저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의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의상팀이 돈이 안 들었다며 그는 너스레를 떨었다. 촬영 현장에서도 늘 벗고 다니니까 스태프들도 의례 그러려니 하더란다.

“아내는 심지어 동네 아줌마들이랑 단체 관람을 한다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남편 온몸이 나오는데 그렇게 단체로 보냐’고 했죠. 하하.”

   
안으로 여물어 가는 배우를 꿈꾸는 박원상 ⓒ SSTV 고대현 기자

◆ 좋은 선배를 꿈꾸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를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박원상은 무거운 작품에만 등장하는 배우’라고 인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올 여름 젊은 배우 박한별 김지석과 함께 ‘두 개의 달’에도 출연했었다.

“얼짱 출신의 박한별과 연기한 건 고마운 복이죠. 하하. 마흔 셋이 됐는데 아직 저는 배우의 전체 무리 중에 선배 부류가 됐다고는 생각 안 해요. 저는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작업하면서 선배들에게 얻은 게 굉장히 많아요. 반대로 어린 후배들이랑 작업하면서 내가 뭘 준 게 있나 이런 생각을 해 보죠. 겸손 떨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배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존경심을 표하던 박원상. 올 해는 그가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눈시울이 촉촉해진 박원상도 그 점을 인정했다.

“갑자기 연기력이 엄청나게 좋아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 안에는 분명 뭔가가 성장한 것 같습니다. 감독님 선배님들처럼 그렇게 세월을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어떤 게 가치 있는지 생각하면서 안으로 여물어 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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