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 감독 “배우 김영애, 소녀 같았다”
[SS인터뷰]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 감독 “배우 김영애, 소녀 같았다”
  • 승인 2012.12.1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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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길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유수경 기자] 공소시효가 만료된 극악무도한 살인범. 그가 죽도록 잡고 싶은 형사. 두 사람의 엄청난 대결을 글과 영상으로 풀어내기까지 정병길 감독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무작정 노트북과 옷 몇 벌만 들고 제주도로 향했다. 처음 제주도에 갈 때는 6개월 동안 절대 서울에 오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두 달에 한편씩 쓰겠다는 독한 마음도 먹었다.

그는 독학을 했기 때문에 공부를 더하자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글을 쓰고 술을 마시고 잠을 자고. 이러한 생활의 반복이었다. 당연히 너무 힘들었다.

“1주일 하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웃음) 계속 혼자 있으니까 그냥 ‘인간’이랑 대화가 하고 싶었어요. 그만하고 싶어서 전화통화를 하게 되고 서울 가고 싶다고 얘기했죠. 두 달 반 정도 있었는데 완성하자마자 올라왔어요. 영진위에서 심사위원 해달라는 전화가 왔는데 (서울에 돌아올) 핑계가 생긴 거죠.”

늘 독립영화의 심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그. 마침 당시 돈도 떨어져가던 상태라 심사비도 많이 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며 웃어보였다.

   
정병길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 제주도에서의 특별한 경험

제주도에서 돌아온 그는 담배부터 끊었다. 중 2때부터 피운 ‘오랜 친구’인데 그래도 끊고 나니 좋은 게 많았단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그에게 담배를 끊게 해준 고마운 시나리오다.

당시 제주도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도 있었다. 그 곳 펜션에서 계약을 할 때 사장이 당신 아들과 나이가 비슷한 거 같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들 역시 영화감독이 꿈이었단다. 하지만 서울에 가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고.

“어느 날 계란 한판을 사서 들어가는데 사장님이 고기 파티를 할 것이니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종교 얘기가 나왔는데 세례명이 ‘도미니꼬’라고 하니까 깜짝 놀라시며 ‘우리 아들과 같다’ 하시는 거예요.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신기했죠.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마음이 짠했어요.”

글을 쓰러 무작정 찾아간 제주도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정병길 감독. 그는 평소 현장에서 말이 없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정병길 감독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말수를 지닌 남자였다.

“친구들이랑 만나면 말을 많이 하려고 해요. 현장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게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기 때문에 꼭 중요한 말만 하게 되죠. 많은 얘기를 해도 다 전달은 안 되거든요. 게다가 우리 촬영은 하루하루가 빡빡했기 때문에 더욱 절실했죠.”

   
정병길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 배우 한다 했더니 부모님 반응이…

알려진 바대로 정병길 감독은 액션스쿨 출신이다. 그의 감독 데뷔작인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에는 그의 이야기가 소상히 담겨있다.

당시 그는 군대를 갓 제대한 스물다섯 살 청년이었다. 스스로 ‘애기 때’라고 말했다. 좀 어려서였는지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영화배우도 하고 싶고 연극배우도 하고 싶고 스턴트맨도 하고 싶었단다. 그냥 막연히 영화 쪽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어릴 때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있었고 부모님은 제가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어요. 처음에 배우 한다고 했더니 부모님께서 ‘군대갔다오더니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하지만 영화감독이 되고 첫 단편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땐 많이 좋아하셨어요.”

또 한가지 그는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활약을 펼친 중견배우 김영애에 대해서도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주인공 박시후 정재영의 캐스팅과 관련된 얘기는 이미 공식석상에서 많이 한 터라 기자는 영화 속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김영애에 관해 물었던 것.

“김영애 선배님은 영화에서 유가족의 한을 혼자 다 설명해 주죠. 정말 대단하세요. 그런데 현장에서 항상 ‘나 연기를 못하는 거 같애. 괜찮아?’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첫 미팅 때 제가 좀 늦게 가서 방문을 열었는데 왠 처녀가 앉아있는 거예요. 청바지에 빨강색 티를 입고 소녀처럼 메이크업을 하고 오셨더라고요. ‘와, 예쁘다’고 생각했죠. 저한테 남자친구 자랑도 하시고 소녀 같은 분이세요.”

   
정병길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 제이는 ‘절대악’이어야 했다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주인공 못지않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는 또 있다. 바로 제이. 감독은 제이가 ‘절대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제이 역을 맡은 정해균을 실제로 만나보니 너무 착해보여서 걱정이었다고.

“‘삼류배우’라는 연극에서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제이 역에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던 참에 생각이 나서 밥 먹으며 시나리오를 줬죠. 처음에 본인 역할이 사회자냐고 묻더라고요. 제이 역할이라고 했더니 너무 놀라는 거예요. 반대가 심하지 않겠냐고. 그래서 함께 만들어가자고 했죠.”

정병길 감독은 너무 착해 보이는 정해균을 ‘절대악’ 제이로 변신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했다. 단발머리에 화상 입은 상처 등 이런저런 설정을 통해 제이를 만들어냈다. 감독은 말했다.“좋은 토양에 정말 열심히 가꿨어요.”

덕분에 두 사람은 서로를 돕는 일등공신이 됐다. 제이는 영화를 살렸고 감독은 정해균을 널리 알렸다. 정병길 감독의 배우에 대한 신뢰와 끝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의 차기작도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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