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리뷰] ‘기생충’ 봉준호 감독, 진일보한 천재…지워지지 않는 냄새를 남기다
[인싸리뷰] ‘기생충’ 봉준호 감독, 진일보한 천재…지워지지 않는 냄새를 남기다
  • 승인 2019.05.29 1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스틸/사진=CJ엔터테인먼트

한국적이면서 보편적이고, 평범하면서 기묘하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통해 공생할 수 없는 기생의 시대를 그린다.

영화는 양말이 걸려있는 반지하 집의 조그마한 창을 비추며 시작한다. 창밖에는 밝은 빛이 비추고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지상의 평범한 삶에서 반층 내려가 있는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전원이 백수로 휴대폰마저 끊겨 주변 시설의 와이파이를 몰래 빌려 쓴다.

별다른 계획 없이 살아가던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는 어느 날 친구를 통해 고액 과외를 소개받는다. 위조된 재학증명서를 들고 박사장(이선균 분)의 집으로 향하는 기우에게 기택은 “너는 계획이 있구나”라며 뿌듯해 한다.

잘나가는 IT기업의 CEO인 박사장의 집은 지하에 있는 기택의 집과 달리 언덕에 위치하며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대저택이다. 그곳에서 딸 다혜(정지소 분)의 영어 과외를 시작하게 된 기우는 박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 분)에게 막내아들 다송(정현준 분)의 미술 선생으로 자신의 동생 기정(박소담 분)을 연결해 준다. 기정 역시 학력과 신분을 속이고 성공적으로 박사장의 집에 들어가게 되자 두 사람은 조금 더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설국열차’ 후반 작업 중 봉준호 감독은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족을 중심으로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자 ‘기생충’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설국열차’에서 계급사회를 상징하는 기차를 전복시키고 세상으로 나왔다면, ‘기생충’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기묘한 사건들로 공생할 수 없는 계층의 계단을 쌓아간다. 

‘기생충’이라는 제목 이전에 불리던 영화의 제목은 ‘데칼코마니’다. 감독은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4인 가족과 언덕 위 저택에 사는 4인 가족, 명확하게 대비되는 두 가족이 뒤엉키는 상황을 통해 반복해서 불편한 시선차를 보여준다. 특히 두 가족을 나누는 건 시선과 냄새다. 높은 곳에 있는 이들과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이 보는 풍경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반지하에 살며 생활에 찌든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나지 않는 특유의 냄새를 풍긴다.

블랙코미디와 같이 ‘웃픈’ 상황들이 펼쳐지는 초반과 달리 중반 이후부터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전개로 빠져든다. 이미 봉준호 감독 특유의 시선과 디테일한 연출에 빠져들 때쯤 감독은 진일보한 장르의 변주로 러닝타임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관객을 뒤흔든다.

송강호를 비롯한 배우들은 봉준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에 맞춰 각자의 역을 완벽히 소화한다.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 송강호 외에도 최우식, 박소담, 이선균, 장혜진, 이정은 등 어느 누구도 빈 곳 없이 극을 채운다. 특히 조여정의 개성 있는 템포의 연기는 기대를 뛰어넘는다.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두 가족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악인이 없다는 점이다. 기존 작품들에서 전복의 대상으로 그려졌던 기득권을 대변하는 박사장네 가족 역시 어느 누구도 악의가 없다.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사고하고 행동할 뿐이다. 분노의 대상도 전복의 쾌감도 없기에 웃음과 서스펜스 뒤에 몰려오는 감정은 영화 속 지워지지 않는 냄새처럼 마음 깊은 곳에 남는다.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