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우상’ 천우희 “몰입 안 될 땐 실제 상황이었으면 하는 마음도”…존재감의 이유
[NI인터뷰] ‘우상’ 천우희 “몰입 안 될 땐 실제 상황이었으면 하는 마음도”…존재감의 이유
  • 승인 2019.03.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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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뾰족한 송곳처럼 천우희는 배역과 분량에 상관없이 강한 존재감을 내뿜는 배우다. ‘써니’의 본드녀 상미, ‘한공주’의 17세 소녀 한공주, ‘곡성’의 무명 등 그녀가 거쳐 간 인물들은 천우희가 아닌 다른 배우의 얼굴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한공주’에 이어 이수진 감독과 재회한 ‘우상’에서도 천우희는 그녀를 대체할 다른 어떤 배우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뺑소니 사건’을 둘러싼 세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우상’에서 천우희는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최련화를 연기했다. 연변 사투리와 중국어를 구사하고 눈썹을 전부 미는 열정을 보인 천우희는 충무로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더욱 확고히 했다.

“첫 시사를 베를린에서 했는데 정말 재밌게 봤어요. 단순히 재밌고 또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신경 쓸 부분이 많아서 보통 제가 나온 영화를 처음 볼 때 즐기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영화 전체적인 흐름을 잘 따라가며 몰입이 되더라고요. 두 번째로 볼 때는 제가 연기한 부분도 보게 됐어요.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부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냥 흐름에 맡기고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매번 다른 감독과 작업을 이어오던 천우희는 이수진 감독과 ‘한공주’에 이어 ‘우상’으로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천우희는 ‘우상’의 시나리오를 받고 그 속에 있는 세 인물에 연민이 갔다. 천우희가 연기한 련화는 연기하는데 있어 외형적인 모습이나 말투, 감정, 모든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이수진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한공주’는 받자마자 ‘내 거다. 이건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이번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는데 감독님이 ‘다른 배우가 하면 배 아프지 않겠어?’라고 했어요(웃음). 그래서 감독님께 편하게 시나리오 돌려보시라고 했어요. 누구나 탐낼 만한 역할이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역할이었어요. ‘곡성’을 해서 센 캐릭터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거 같아요. 이후에 설경구 선배님이 힘을 실어주셔서 다시 시나리오가 저에게 돌아온 걸로 알고 있어요. 감독님께서 제가 표현했으면 하는 부분도 있을 테고 저도 해낼 수 있을 거란 의욕이 있었어요. ‘한공주’와는 결이 다르니까 그것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도 있어서 하게 됐죠.”

영화 속 장면 때문에 촬영 중 눈썹을 밀게 된 천우희는 “눈썹을 밀고 현장에서 빵 터졌다. 밀기 전에는 혹시나 다시 안 자랄까봐 걱정 많이 했다. 밀어보니 나름 느낌 있었다. 물론 칩거의 시간이 있었다”고 회상해 웃음을 안겼다. 해맑은 천우희와 달리 영화 속 련화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선택을 이어간다. 천우희는 련화의 인생을 차근차근 되짚어보며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고 독보적으로 강렬하면서도 연민이 묻어나는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련화가 표현되는 것을 기반으로 제가 분석하고 상상해야 돼서 캐릭터를 만들기 쉽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이 친구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이 친구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출생신고도 안 되어 있으니 이름도 없고 병원도 못가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가 없는 거죠. 련화는 아주 단순하고 일반적인 삶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물건처럼 가축처럼 취급 받으며 살았을 거예요. 노력을 해도 거짓으로 돌려받았겠죠. 제가 느낀 련화는 마음이 짠할 정도로 연민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냥 무시무시하고 강력한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이 보이길 바라면서 평소 이야기하거나 밥을 먹을 때는 순수함이 묻어나게 연기했어요. 관객들의 마음에 여운이 남는 캐릭터였음 좋겠어요.”

   
 

‘우상’에서 천우희는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 온 한석규, 설경구와 호흡을 맞췄다. 연기력으로는 이견이 없는 두 배우와 함께 하며 천우희는 그들의 연기는 물론 현장에서의 태도, 인간적인 면모에 매료됐다.

“현장에서 함께 하는 게 좋았어요. 훌륭한 배우고 연기 잘하는 배우를 떠나서 현장에서 제가 겪은 두 분 모두 인간적으로 존경스러웠어요. 그 전에도 좋았지만 더 팬이 됐죠. 인간적이고 따뜻해요. 배려심도 많으시고 제가 까마득한 후배인데도 선후배로 나누지 않고 편하게 대하세요. 그래서 저도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저는 가끔 당혹스러운 상황도 있고 마인드컨트롤이 안될 수도 있는데 두 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내시더라고요. 정말 내공이 대단하시다는 걸 느꼈어요. 그동안 많은 일을 겪고 동요되는 부분도 있고 흔들릴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시고 앞으로도 나아가는 자세가 진짜 멋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자신만의 우상을 좇거나 만드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천우희에게 맹목적으로 좇는 우상이 있을까. 

“이 영화를 찍기 전에는 우상에 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는데 결국 제 우상은 연기구나 싶더라고요. 연기라는 게 본인 만족이 가장 크겠죠. 완벽한 연기라는 건 없는데 도달하려고 계속 노력하잖아요. 그러면서 맹목적으로 되고. 연기라는 게 가짜인데 연기하는 그 순간은 모든 게 진심이잖아요. 결국 다 허상인데 왜 이렇게까지 만들어야하지 싶을 때도 있고 몰입이 안 될 때는 ‘차라리 진짜 내가 이런 상황에 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그래요.”

완벽한 연기를 향한 천우희의 집념은 그녀를 많은 이들이 신뢰하는 배우로 만들었다. ‘써니’, ‘한공주’, ‘곡성’ 등 연이은 호평 속에 성장했지만 그녀에게도 남모를 슬럼프가 있었다. 연기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함께 원동력을 잃어버린 천우희는 한동안 연기를 멀리했지만 결국 연기로 위로받고 다시 일어섰다. 인터뷰 말미 천우희는 “정성을 다해 오랫동안 연기를 하고 싶다”는 고운 마음을 전했다.

“그동안 연기를 하면서 한계를 느꼈지만 무너지지 않았어요. 한계가 올 때 뛰어넘으려 하고 노력했지 좌절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번에는 외적인 이유로 힘들었어요. ‘이렇게 노력한다고 많은 사람이 기억해줄까’,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지배하면서 와르르 무너졌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래도 조금 시간이 흘러서 회복된 부분도 있어요. 재작년 가을부터 작년 가을까지 다른 작품을 선택할 수 없었어요. 너무 힘든 시간이었어요. 작품을 할 여력이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 연기를 하면 제가 그런 저의 모습을 봐야 하잖아요. 그럴 자신이 없었어요. 좋은 작품을 거절하는 게 죄송스럽고 안타까웠지만 못하겠더라고요. 한동안 연기를 멀리 했어요. 그러다가 의욕을 찾았어요. 연기로 상처받고 힘들어도 결국 연기로 위로받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