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 “각자의 신념과 선택, 나는 어떤 인간이길 지향하나”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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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당시 상황을 무언가에 치우치지 않고 시대를 관통하는 인물에 포커스를 두려고 했어요. 그리고 아픈 시대를 소환하면서 이야기해야 했던 것들을 지키는 과정이 있었죠.”

김혜수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로 1997년 IMF 외환위기, 아픔의 그날을 복기했다. 국가부도를 앞두고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국가부도의 날’에서 김혜수는 국가적 위기를 감지하고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을 연기했다. 김혜수는 고통스러운 시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통해 그날을 다시 살피고 내막을 알려야 한다고 느꼈다.

“어떤 식으로든 다들 영향을 받았죠. 목숨을 버린 분들도 많았고 갑자기 이사 가고 이민 가는 분도 많았어요. 삶이 곤두박질치는 고통스러운 시기를 영화로 다시 이야기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아니에요. 그때 실제 했던 내막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잖아요. 그 아픈 시기를 복기하고 그 일이 벌어진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마음이 컸어요. 저도 시나리오를 보고 알게 됐는데 충격적이었어요. 인물이나 각자의 스토리는 만들어졌지만 협상 내용은 가공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호황이라고 믿던 그때, 순식간에 많은 이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누군가는 직장을 잃고 집을 뺏기고 급기야 생을 포기했다. 김혜수는 “IMF 이후로 저희 업계에도 밝고 경쾌한 작품들이 많아졌던 것 같다. 다들 어떤 식으로나 영향을 받고 어려워졌다. 그래서 영화는 덜 무겁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많아진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일을 할 때는 특별한 변화를 감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IMF 이후로 저희 업계에도 밝고 경쾌한 작품들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다들 어떤 식으로나 영향을 받고 어려워졌잖아요. 그래서 영화는 덜 무겁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많아진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당시 거리에서도 어느 기업이 부도가 났다는 뉴스가 많이 들렸어요. 가까운 분들 중에도 외국으로 유학 갔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온 분도 있고 휴학하고 돈을 번 사람도 있었어요. 영화에서 나오는 뉴스 장면 중에 ‘스스로 비하하고 싶지 않지만 실로 국치일이 아닐 수 없다’는 앵커의 멘트가 나오는데 그 장면을 당시 뉴스로 봤었어요. 그런 기억들이 있죠.”
   
 

영화는 당시 복잡했던 경제 상황을 그리기 때문에 다소 생경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김혜수는 영어를 포함, 전문적 지식이 담긴 대사에 감정을 넣어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사를 수없이 반복하고 암기하며 체화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제 역할도 그렇고 대사가 평소에 쓰지 않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진심을 전달해야 하는데 이런 말 속에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걱정은 있었어요. 그리고 나조차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관객이 따라 와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작품을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보자면 말의 부담을 없애야 캐릭터를 담을 수 있으니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 외에 경제 용어 중에 교체할 수 있는 단어들은 평상시에 쓰는 말로 바꾸는 작업도 거쳤어요.”

극중 한시현은 자신의 위치에서 소임을 다하는 인물이다. 그는 남성 위주의 관료주의 사회에서 소신을 잃지 않고 무리한 조건을 내거는 IMF 총재에게 분노하고 당당히 맞선다. 결국 실패로 돌아갈지라도 한시현은 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한다. 김혜수는 극 후반부 단 한 번 흘리는 한시현의 눈물에 분노와 무기력을 넘어선 모든 것들에 대한 좌절이 응축되길 바랐다. 매우 멋진 여성 캐릭터가 만들어졌지만 김혜수는 ‘여성’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 당시 필요했던 ‘사람’에 집중했다.

“사실 한시현의 성별은 상관없었어요. 특별히 여성이라서 남성 위주의 권력 구조 속에서 전투적인 입장을 염두에 두진 않았어요. 영화 속에서 한시현이 여성이라서 무시하는 모습들이 있는데 그 시대상의 하나였어요. 저희 영화 같은 경우 제작자, 현장 피디, 주요 인물이 모두 여성이었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 번도 ‘정말 멋진 여성캐릭터를 만들자’라고 한 적은 없어요. 다만 여성이든 남성이든 당시 영향력 있는 인물 중에 한시현 같은 사람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은 해봤어요.”

국가적 금융위기 속에서 한시현은 극복하려 했고 재정국 차관은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 금융맨 윤정학은 위기에 베팅해 개인의 기회로 삼았고 평범한 가장 갑수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갔다. 누군가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고 다른 누군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어떤 신념을 갖고 선택하며 지금에 왔으며 어떤 인간이길 지향할까. 

“재정국 차관이라는 인물이 정말 나쁜 악역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나름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사는 거고 자연스럽게 기득권층이 도모할 수 있는 걸 하고 취하는 거죠. 정학이라는 인물도 그래요. 모두가 신념이 있고 그것이 옳다고 판단하니 지키려는 거잖아요. 제가 같은 상황이라면 평소 신념이 시현에 가깝다고 해도 정학과 같은 고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가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제 신념을 확인할 수 있겠죠. 평소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내면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이번 영화를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선택을 해왔고 어떤 인간이길 지향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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