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송승헌 “일로만 생각했던 연기, ‘플레이어’로 재미를 깨달았죠”
[NI인터뷰] 송승헌 “일로만 생각했던 연기, ‘플레이어’로 재미를 깨달았죠”
  • 승인 2018.11.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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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길에 첫 발을 들인지도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간 멜로에 최적화된 대표 배우로 대중들의 뇌리에 박혀있던 송승헌이었지만, 그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술 정도로 최근 그의 연기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지난 11일 종영한 OCN 드라마 ‘플레이어’를 통해 두 번째 장르물에 도전하게 된 송승헌은 그간 대중들이 알지 못했던 자신의 또 다른 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성공적인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그 어떤 작품보다 팀워크가 좋았던 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허전한 마음을 드러낸 송승헌과 지난 15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극중 호흡을 맞췄던 네 명이 다 처음 보는 사이였고, 내성적이라서 처음 만났을 때는 많이 서먹했어요. 드라마 특성상 팀워크가 좋아 보여야 하는데 저 또한 외향적이지 못해서 걱정이었죠. 그래도 ‘내가 좀 더 다가가야 되겠다’라는 생각에 촬영 때 웬만하면 같이 밥 먹으려고 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려고 했어요. 어떤 촬영보다도 배우들끼리 많은 시간 보냈고, 그러려고 저 또한 노력을 많이 했죠.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서 편해지더라고요. (정)수정이도 첫 인상은 얼음 같잖아요. 그런데 친해지니까 장난도 치고, 나중에는 ‘이렇게 편한 현장은 처음이다’라면서 제일 아쉬워하더라고요. 그런 편함이 잘 표현 됐던 것 같아요.”

송승헌이 처음 ‘플레이어’ 출연을 결정한 것은 전작이자 같은 OCN 드라마인 ‘블랙’을 촬영할 때 부터였다. 고재현 감독과는 ‘여름향기’의 조연출로 만나 사석에서 ‘형·동생’ 할 정도로 친분이 있다는 그는, ‘블랙’의 B팀 촬영을 맡게 되면서 ‘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송승헌은 “감독님이 원했던 건 고급스럽거나 웰 메이드가 아니라 그저 재밌고 경쾌하고 유쾌한 작품”이었다며 “부족한 친구들이 모여서 사회의 단면을 꼬집을 수 있는 통쾌함 주는 이야기를 원했다. B급 코미디일수도 있고,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쿨하게, 경쾌하게 가자’라고 얘기했다”라고 설명했다.

“감독님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보니 그 캐릭터를 많이 보여줬으면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때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 없으니 그걸 강하리 캐릭터로 잡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스태프도 거의 다 ‘블랙’ 때와 같아서 그런지 현장이 너무 편하고 즐거웠죠. 그래서 그런 편안함이 잘 묻어나왔던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도 ‘송승헌이 새롭다’라고 하시는데, 긍정적으로 봐 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죠.”

   
 

그간 시도해보지 않았던 코믹하고 가벼운 캐릭터인 만큼 송승헌 스스로도 “너무 떠 있는 게 아니냐” 얘기했을 정도로 낯설었다고. 하지만 “심각하고 진지할수록 오히려 웃으면서 가자”라는 고재현 감독의 제안에 한톤 씩 떠서 강하리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그는 “연기를 잘 했다기보다는 다행히도 새로운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라고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신기자로 변장했을 때예요. 장발인 기자로 변장해야 했었는데, 드라마에서 그런 가발을 써본 것도 처음이거든요. 너무 웃기게 나왔더라고요. 처음에는 안한다고 했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어요(웃음). 그래도 재밌을 것 같고, 안 해봤던 시도도 많이 해보고 싶어서 분장을 했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재밌게 봐 주셨더라고요.”

극중 송승헌이 맡은 강하리는 수려한 외모와 재치 있는 언변, 여심을 끌어당기는 세련된 스타일의 소유자. 팀의 ‘브레인’ 역할인 만큼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그는 뛰어난 싸움 실력까지 겸비한 ‘사기캐릭터’였다. 때문에 송승헌은 변장뿐만 아니라 액션까지 소화해내야 했다고. 실제로도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알려진 그는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를 언급했다.

“톰 크루즈를 보면 작품 속에서 뛰어다니고, 액션 하는 게 멋있잖아요. 그런데 나이를 봤더니 깜짝 놀랐어요. 저보다 15살은 더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저분처럼 저 나이 돼서도 멋지게 (액션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꿈이 생겼죠. 저런 분이 뛰어 다녀도 좋아해주는 환경이 부럽기도 하고. 나이 들어서도 멋지게 액션을 할 수 있는, 멋지게 나이 드는 배우가 꿈이에요. 갈수록 멋있어지는 사람이 있잖아요. 외적인 것 보다는 가지고 있는 느낌이나 작품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배우로서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그렇게 되고 싶고, 그렇게 노력을 하고 싶어요. 운동은 몸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건강을 위해 하는 거죠. 평생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멜로 이미지가 고착화돼있다시피 했던 송승헌은 전작인 ‘블랙’에 이어 ‘플레이어’까지 연달아 장르물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특히 영화 ‘인간중독’을 기점으로 출연하는 작품과 캐릭터의 폭이 넓어졌다는 그는 “20대, 30대 초반까지의 송승헌은 연기에 대해 기본적으로 잘 몰랐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연기가 재밌지도 않았고, ‘이게 내 길인가’ 고민 하다가 10년이 지나간 것 같아요.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뭐지?’ 하면서 넘어갔죠. 연기적인 평가도 당연히 안 좋았고, 방송국 가는 게 두려웠어요. 세트장에 불이 나서 촬영이 연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요(웃음). 가면 혼나니까요. 연기자를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TV에서 본 사람들과 같이 연기하라고 하니 당황스러움의 하루하루였죠.”

이렇듯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황하던 송승헌을 바로 잡아준 것은 어느 팬이 보내준 한 통의 편지였다. ‘연기자라는 직업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니 감사하며 살아라. 축복 받은 직업이 아니냐’라는 그 한 줄이 뜨끔하고 창피했다는 그는 “다시 연기자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해주는 큰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저는 그냥 의도하지 않았지만 배우가 직업이 됐고, 돈벌이를 하는 많은 직업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연기 했어요. 그런데 그 편지를 보니 창피했죠. 많은 팬레터중 하나지만 그런 팬레터를 더 빨리 받았으면, 누가 더 빨리 말해줬으면 좀 더 나은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요?(웃음) 그래도 그걸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날이었죠.”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린 마음에 멋지고, 정의롭고, 목숨 걸고 사랑하는 캐릭터가 하고 싶었고 악역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그. 하지만 그 한통의 편지 이후 영화 ‘인간중독’ 속 불륜 연기를 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걸 확 느꼈다고 털어놨다. 때로는 친일파로, 때로는 평범한 구청 직원으로 역할의 폭이 넓어지면서 “연기가 재밌어졌다”라고 전한 송승헌은 “특히 ‘블랙’을 하면서 왜 장르물을 이제 서야 했을까 후회 아닌 후회를 했다. 기존 작품에는 멜로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사건이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게 중심이 되는 작품을 하니까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라며 장르물에 제대로 매료된 모습을 보였다.

“창피할 수도 있지만, 요즘이 연기가 제일 재밌어요. ‘블랙’을 하면서 느꼈고, ‘플레이어’를 하면서 더 강하게 느꼈죠. 연기를 일로만 생각했던 연기자로서의 시간이 창피할 정도로. 늦게나마 그걸 느끼게 된 게 다행스럽기도 해요. 기존에 멋지게만 하려고 했을 때는 힘을 주고 연기를 했는데, 그 때보다도 힘 빼고 놀면서 하듯 연기를 했을 때 시청자분들이 더 좋게 봐주시는 게 의외였어요. 제가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예전에 더 멋진 역할 많이 했는데 왜 덜렁대고, 허세 있고, 코믹스럽고, 어쩌면 부족해 보이기도 하는 모습을 더 좋아해주시지?’싶었죠. 신기한 경험을 했던 작품 중 하나예요.”

앞서 조금은 꾸며진 듯한, 현실감 없는 이미지로 ‘포장 되고 싸여있었다’는 송승헌은 가장 좋았고, 놀랐던 점으로 ‘송승헌 다시 봤다’ ‘새롭네’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꼽았다. 그는 “20년 가까이 연기를 했는데 뭐가 새롭단 거지? 싶으면서도 이만큼 내가 대중들한테는 막이 한 겹 있었던 거구나 싶더라. ‘송승헌은 이런 역할만 할 거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니 좋은 쪽으로 새로웠나 보다”라며 “‘플레이어’는 그런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많은걸 느끼게 해줬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간의 배우 인생이 스스로 걸어온 것이 아닌, 주위의 환호에 ‘떠밀려 온 것’이었다면 최근 3, 4년 들어 연기에 본격적인 재미를 느끼게 된 송승헌이 앞으로 보여 줄 모습은 ‘플레이어’에서 그랬듯 보다 진취적이고, 과감해질 것이다. 자신을 향한 ‘비주얼파 배우’라는 타이틀마저 “비주얼로 먼저 사랑 받았다면 앞으로의 배우로서의 길은 연기적인 부분으로 더 인정받고 싶다”는 그는 “‘이제 저 사람이 좀 배우 같네’라는 얘기를 들으려면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플레이어’는 저에게 연기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해줬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시청자 분들이 ‘송승헌을 다시 봤다’라고 말하게 해준 작품이에요. 송승헌에 대해 좋은 쪽으로 스펙트럼이 넓혀질 수 있었던, 그런 작품이었죠.”

[뉴스인사이드 김나연 기자/사진=더좋은 이엔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