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운기 칼럼] 소탐대실, 위기의 폭스바겐
[홍운기 칼럼] 소탐대실, 위기의 폭스바겐
  • 승인 2016.08.0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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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인자산관리 청인투자지원단 홍운기 대표이사

2015년 영국 리서치회사 유고브는 독일인 1081명을 대상으로 ‘독일의 대표 상징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1위는 무려 6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국민차, 폭스바겐(Volks 국민, Wagen차)이 차지했다. 2위는 대문호 괴테, 3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였다. 부자의 전유물이던 자동차를 모든 국민이 탈 수 있도록 대중화시킨 폭스바겐은 독일인에게 자부심 그 자체인 셈이다. 그랬던 폭스바겐이 작년, 디젤엔진 배기가스 조작 파문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고 독일인의 자존심에는 큰 상처를 냈다.

많은 전문가들은 사태의 원인을 오너 가문의 왜곡된 지배구조로 보았다. 폭스바겐의 창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셰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3세대로 경영권이 내려오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친손주 포르셰, 외손주 피에히 두 가문의 지배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배출가스 사건으로 포르셰측의 인사 빈터코른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피에히측의 인사 뮐러가 CEO로 임명되었다.

폭스바겐 스캔들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은 배출가스 기준이 유럽 등 어느 나라보다도 엄격하다. 그 기준에 맞추려면 추가적인 정화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디젤차의 배출가스에서 질소산화물을 줄이면 출력과 연비가 나빠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에 폭스바겐은 실험실 테스트에서는 저감장치를 가동해 배출가스를 줄이고, 운전자가 실제로 주행 할 때는 저감장치가 작동되지 않도록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 그러나 부메랑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법. 2015년 9월 조작파문 사건 발생 3일 만에 주가는 33% 하락하고 시가총액은 260억 유로(34조 3640억 원) 증발했다. 현재 미국 법원에서는 배출가스 조작에 따른 소비자피해 배상 합의안이 잠정 승인되었다. 금액이 무려 147억 달러(16조 6900억 원)로 미국 내 집단소송 합의금 가운데 최고액이다.

엄청난 액수의 합의안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일부 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성격이 짙다. 우리나라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어왔으나 아직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환경부는 폭스바겐 32개 차종 8만 3천대의 인증취소와 판매정지 처분을 내렸다. 당초 3000억 원까지 거론되었던 과징금이 178억 원이 그치자 미국소비자에 대한 보상금과 너무 차이 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인증취소 파장으로 폭스바겐 중고차 값은 계속 하락하면서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 딜러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에 폭스바겐이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동기는 미국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의 위법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으므로 천문학적인 합의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위법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으로 사건이 더 복잡하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배출가스 기준이 덜 엄격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조작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똑같이 코딩된 차가 수입되었고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된 것이다.

환경부에서는 조작된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자동차를 판매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폭스바겐은 해당 소프트웨어를 제거하겠다며 리콜은 받아들이겠지만 위법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폭스바겐측은 리콜계획서를 3번이나 제출했지만 위법을 인정하는 조항을 넣으라는 요구에는 불응했다. 이에 환경부는 제출한 계획서를 모두 반려했다. 그런데 서류조작 사건까지 드러나면서 행정상 문제로 일은 확대된다. 수입차를 판매하려면 차량의 데이터(공차중량, 도로 저항값 등)를 환경부에 제출해야 하는데 해당차량이 아닌 비슷한 차종의 것으로 허가를 받은 것이다. 환경부는 실제 수입된 차와 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했던 차의 데이터 값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서류조작 사실이 명백하므로 인증취소와 판매정지 명령을 내리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처분이 내려졌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3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아우디 폭스바겐 코리아의 대다수 모델이 판매 중단되자 국산차나 다른 수입차가 반사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폭스바겐은 이번 사태로 시가총액, 배상금, 과징금 등 눈에 보이는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바로 소비자의 신뢰다. 기업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속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영속성은 소비자의 충성도를 통해 유지된다. 브랜드 가치를 쌓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 명성을 잃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가는 오히려 큰 것을 잃게 된다. 창립 80주년의 자동차공룡 폭스바겐은 이번 사태로 존립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소탐대실의 결과다. 이는 우리기업에게 큰 교훈을 시사한다. 폭스바겐처럼 대부분 오너가문이 경영권을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 구조에서 언제든 제2의, 제3의 폭스바겐 스캔들이 일어날 수 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쫓는다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 날 수가 없다.

/ 청인자산관리 청인투자지원단 대표이사 홍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