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루시드폴, ‘귀로 눈으로 입으로’…누군가를 위한, 따뜻한 기록
[SS인터뷰] 루시드폴, ‘귀로 눈으로 입으로’…누군가를 위한, 따뜻한 기록
  • 승인 2015.12.16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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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타이틀곡 ‘아직, 있다’)

루시드폴, ‘귀로 눈으로 입으로’…누군가를 위한, 따뜻한 기록 (종합)

루시드폴이 홈쇼핑에 나올 줄이야. 가수, 제주도민, 농부, 소설가, 박사, 다양한 타이틀을 보유한 루시드폴이 홈쇼핑에 귤 탈을 쓰고 나와 직접 키운 귤과 앨범을 판매했다. 종합 창작물 1000장 한정 패키지로 판매된 상품은 9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렸다.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을 위해 그가 시도한 방법은 기발하며 다소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창작물은 가볍지 않았다. 정성을 다하고 진심을 녹인 창작물을 내보인다는 점에서 농부와 뮤지션, 작가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15일 서울 강남구 안테나 사옥에서 열린 루시드폴의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타이틀곡 ‘아직, 있다’) 발매 기념 라운드 음감회에서 루시드폴은 다소 파격적인 앨범 홍보에 관해 유희열의 농담에서 시작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다음 앨범을 어떻게 할 건가 계속 고민했어요. 사는 게 재밌는 게 저도 2년 전에는 농사를 지을지 몰랐어요. 어쩌다보니 곡도 쓰고 글도 쓰고 귤 농사도 했는데 제가 만들 수 있는 창작물을 다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CD 하나로는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앨범 형태로 발표할거면 제 음악을 들어주시는 팬들에게 다양한 창작물을 제공하며 차별을 두고 싶었어요. 막상 실행에 옮기자니 암담했어요. 주문은 어떻게 해야 하며 귤은 어떻게 담아야 할지 등 방법론적인 고민을 끝내지 못하고 8월 중순에 데모 작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어요. 오랜만에 회사 식구들과 밥을 먹다가 유희열 씨가 농담처럼 홈쇼핑에서 하면 어떻겠냐고 말했죠. 다들 깔깔 웃고 넘어갔는데 희열이 형이 ‘방송활동 안할 거면 홈쇼핑에서 진하게 한번 하고 끝내’라고 말했어요. 그 말에 솔깃해서 한다고 했죠. 농담처럼 했던 말이 진짜가 돼버렸어요. 이전에 없던 일이다보니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냥 CD를 발매하는 것보다 열배 이상 힘들었을 거예요. 안테나 대표, 매니저 할 것 없이 다 내려와서 귤 따고 나르고 포장했어요. 다음에요 또 한다고 하면 회사 나가라고 하지 않을까요(웃음). 일단 지금은 좀 쉬고 싶네요.”

   
 

루시드폴은 ‘귤이 빛나는 밤에’라는 타이틀이 붙은 홈쇼핑 방송에서 귤 모자를 쓰고 다소 우스꽝스럽게 등장했다. 유희열을 비롯한 안테나 소속 가수들이 나와 루시드폴의 앨범을 유쾌하게 홍보했다. 이날 루시드폴의 앨범은 9분 만에 완판 됐고 유희열은 “판매가 안 되면 고등어를 끼워 팔려고 했다. 정말 다행이다”고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루시드폴은 망가지는 것에는 부담이 없었지만 그런 것들로 인해 본 의도가 곡해될까 걱정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루시드폴은 라이브를 하고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이 목표지 이렇게 해서 몇 개 더 팔고 이윤을 남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요즘 40분 동안 앨범을 이야기하고 라이브를 들려줄 방송 채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파격적이지만 음악을 들려주고 자신의 창작물을 유쾌하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루시드폴의 선택은 옳았다.

홈쇼핑을 통해 앨범을 홍보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푸른 연꽃’이라는 루시드폴이 직접 쓴 동화책과 앨범을 함께 발매한 것도 독특한 지점이다. 평소 작가로서 다수의 책을 번역하고 작품을 썼던 그인 만큼 앨범과 동화를 함께 녹여내며 공감각적인 앨범을 완성했다.

“다들 이 앨범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말이 많았어요. 책에 CD가 껴있는 건지 아니면 CD에 책이 딸려 나온 건지 말이 많았죠. 둘을 따로 놓고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모두가 제 2년 동안의 기록물이거든요. 작년에 동화를 먼저 썼고 동화에 맞는 곡을 썼기 때문에 통틀어서 ‘앨범’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거창하게 말씀드리면 루시드폴이라는 작가 혹은 뮤지션이 만든 모음집이에요. 15곡 중 5곡은 동화를 위해 쓴 사운드 트랙이고 다른 10곡도 의도치 않았지만 동화의 내용과 잘 연결돼있어요. 앨범을 들으시는 분들께 동화도 읽고 곡도 들어주셨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한정판은 1000개가 발송됐고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키운 귤을 함께 넣었어요. 안테나 식구 분들이 제주도로 내려와서 직접 따고 어제까지 포장을 했어요. 한정판은 남색표지로 만들었고 안에 일련번호를 만들었어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받으시는 분들이 기념이 될 수 있게 인증서 같은 걸 넣어서 보내드렸어요. 그만큼 제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담아내고 싶었던 앨범입니다.”

   
 

루시드폴에게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은 제주도로 내려가고 2년 동안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기록’이다. 지난 앨범도 그 전 앨범도 루시드폴은 2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꾸준히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루시드폴은 유학 시절 썼던 3집의 ‘사람이었네’라는 곡을 예를 들며 “그 시기에 겪은 일, 만났던 사람들이 없다면 그 곡도 없었겠죠. 이번에는 동화 속에 나오는 새, 꽃, 나무 모두 저희 동네에 있던 것들이에요. 글이나 가사 같은 직접적인 것들이 아니더라도 2년 동안의 제 모습이 서정적으로라도 묻어있어요”라고 말했다. 2년은 루시드폴에게 뮤지션으로서, 사람으로서 변화의 적기(適期)다.

“2년 보다 자주 만들 자신은 없고 2년이 넘어가면 뮤지션으로 나태해질 것 같아요. 2년이라는 시간이 어찌 생각하면 길수도 있는데 앨범을 만드는 입장해선 길지 않아요. 벌써 6월에 곡을 모으고 편곡을 하면서 반년이 훅 지나갔죠. 온전히 남아있는 시간은 1년 반인데 그사이에 음악도 많이 듣고 많이 느끼고 기타 연습도 해야 하니 빠듯해요. 앨범 작업을 마치면 한두 달은 쉬고 싶기도 하고요(웃음). 그러다보면 1년이 지나가죠. 앨범을 자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뮤지션으로 성장하고 사람으로서 성장하고 변화하기에 저에게 2년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벌써 7집까지 왔네요.”

작가, 생명공학 박사, 농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루시드폴이 본업인 뮤지션으로서 강점은 무엇일까. 루시드폴은 “가창력 아닐까요”라고 말하고는 웃었다. 슬프게도(?) 대답을 듣는 모든 이가 그가 농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함께 웃고 나서 루시드폴은 음악을 향한 꾸준한 마음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가벼운 해명을 했다.

“누구나 음악이 못 견디게 좋아서 시작해요. 그건 예외가 없는데 한 결 같이 좋을 수는 없죠. 오래 음악을 한 선배님들을 보면 결국은 얼마나 음악을 잘하느냐, 타고난 재능이 많은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음악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하는지가 오래하시는 분들의 특징 같아요. 다른 분들과 비교할 순 없지만 저는 참 다행히도 처음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리고 ‘내가 뮤지션이구나’를 자각했을 때와 지금이 별 차이가 없어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런 부분이 저의 장점이라 생각해요.”

   
 

루시드폴은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을 준비하며 사진 작업에 있어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을 이용했다. 녹음 역시 오토튠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필름의 아날로그적인 질감은 이미 디지털로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에 왔다. 하지만 수만 장을 찍을 수 있을 때와 36컷이라는 한정된 필름 안에 모든 걸 담아야 하는 것은 한 장 한 장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차이가 생긴다. 루시드폴은 “요즘 오토튠을 안하는 가수는 없겠죠. 하지만 ‘나중에 튠으로 수정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못 부르는 노래, 열심히 해도 부족한데 태도가 안일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튠을 안하겠다고 선언하고 녹음했어요”라며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를 밝혔다.

이날 루시드폴은 다음 앨범에 관해 묻는 질문에 “다음 앨범도 CD가 되든 USB든 형태가 있는 앨범이 될 거예요. 누군가가 제 앨범을 간직해줬으면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루시드폴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만질 수 있고 안을 수 있고, 냄새도 맡고 가방에 넣을 수 있는 ‘형태’이길 원했다. 사진이든 책이든 앨범이든 모든 기록에는 손때가 묻어야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정말 모두 다르다는 생각을 해요. 음악을 듣는 방식, 듣는 시기도 다르더라고요. 그중 저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분들이 팬일테고 그분들은 제 앨범을 가사, 멜로디, 연주 모두 신경 쓰며 듣겠죠. 그런 분들은 루시드폴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생각해주시면서 들었으면 해요. 저를 잘 모르시고 우연히 제 음악을 듣게 된 분들에게는 그냥 큰 거부감 없이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됐으면 해요. 일을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 출퇴근 시간에 들어도 환기가 될 수 있는 노래였음 좋겠어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가사가 들리고 제 곡들을 더욱 주의 깊게 듣겠죠. 딱히 ‘어떻게 들어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 제 음악이 즐거움이 됐으면 합니다.”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사진 = 안테나 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