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생각] 문창극 후보자 교회 강연내용 ‘전문’ 올리는 이유는...
[이준석의 생각] 문창극 후보자 교회 강연내용 ‘전문’ 올리는 이유는...
  • 승인 2014.06.1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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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생각] 문창극 후보자 교회 강연내용 ‘전문’ 올리는 이유는...

동영상 전체를 보실 여력이 없는 분들을 위해 문창극 후보자가 했던 강연의

전문을 "퍼와서" 올려본다.

비판하는 사람도, 옹호하는 사람도 내용을 파악해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줄요약은 의도적으로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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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이런 우리 강단에 설 자격이 없다. 여기는 다 목사들이 서야 한다. 나한테 우리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주에 마리아 행전을 대대적으로 하는데 나라를 위해서 무엇를 기도 해야 되느냐. 기도하는 제목을 좀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부탁을 받았다. 다음주 오대원 목사가 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오대원 목사가 오는 길을 예비하는 사람으로 여기에 섰다.

나라를 위해 우리가 기도를 왜 해야 되느냐. 우리는 각자 개인을 위해 기도한다. 매일 우리가 아침에 끊임없이 기도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다. 나라를 위해서도 우리가 같이 기도를 한다. 왜 기도를 하느냐. 이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기 위해서,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으면 우리가 그 뜻대로 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

나라라는 것은 무엇이냐. 난는 비행기를 타면 3등칸을 많이 타지만 가끔 기회가 돼 좋은 좌석을 타게 되면 굉장히 대우가 다르다. 1등칸을 타면 대우가 더 달라질 것이다. 나는 나라라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3등 나라에 있으면 우리는 3등칸에 타고 있는 승객이다. 우리가 만일 1등 나라에 있으면 우리는 1등칸에 타고 있는 승객이다. 1등칸이 되면 서비스가 훨씬 좋고 편하고 안락하다. 우리가 만약 1등의 나라를 만든다면 그 1등의 나라 안에서 우리는 개개인의 삶의 고통과 고민을 3등 나라보다는 우리가 덜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나라가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 그래서 복받은 나라가 돼야 한다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왜 탄생시켜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무엇에 쓰려고 그러시는가 하는 것이 우리 기도의 방향이 돼야 한다. 그 뜻을 알아야 '아. 하나님의 뜻이 우리 한국에 대해 이런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기도를 드려야 되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아느냐.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뜻이 있다. 또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역사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에서 지금까지 진행해온 상황으로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내가 말하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은 과연 대한민국에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것을 내 나름대로 찾아보려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1890년 선교사들이 이 나라에 오실 때, 이조 말기 고종때 그 이전에는 선교사들이 사실 상륙하지 못했다. 배를 타고 있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했다. 그 때에 1890년에 선교사들이 오신 후부터 사실은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알게 됐다. 189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됐느냐 하는 것을 훑어보면 그 안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제목을 놓고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란가. 고비고비 굽이굽이 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었다 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에 고난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기 위해 고난을 주셨다. 고난을 준 다음에 하나님은 우리한테 길을 열어 주셨다. 매번 길을 열어주셨다. 중요한 시기마다. 길을 왜 열어주셨느냐.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이 나라를 써야될 일이 있기 때문에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라는 곳은 지금까지 오면서 시련과 도전과 이런 것들을 받았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됐다. 지금 이 나라가 됐다. 먼저 조선 말 풍경을 말씀드린다. 그 당시 조선이 어떻게 됐냐. 도대체 어떤 나라였는지. 여러분들이 막연하게만 알고 있어 내가 책을 찾아 한두가지만 먼저 알려드린다. 1832년 영국상선 암허스트호가 황해도 서해 몽금포에 왔다. 그 때 거기에 선교사가 동승했다. 독일 개신교 선교사. 순조 31년 때다. 이 선교사 이름은 귀츨 라프. 이 사람은 조선의 현실에 대해 '조선 사람들은 불결과 빈곤으로 자기 생애를 보내야 하는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피부는 어김없이 때로 덮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몇달씩 씻지 않아서 이 따위의 해충이 득실댔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해충을 잡아 죽이는 짓을 주저하지 않았다. 살림도구는 서툴게 빚어졌다. 진흙으로 빚어졌는데 상상할 수 없이 조잡한 종류였다' 이것이 1832년 선교사가 우리나라 서해 몽금포에 와서 보고 북경에 자기네 선교 본부에 보고한 조선 말의 상황이다.

30년 뒤 1874년. 달레 신부라는 분이 왔다. 파리 외방 선교사 소속이다. 이분이 한국에 와서 한국을 보고 나서 '코리아의 교회 역사'라는 책을 썼다. 조선의 상황이다. '창고에 저장은 장부 상에만 있다. 지방 병기고에는 쓸만한 탄약도 무기도 없다. 관리들이 다 팔아먹고 누더기 몇조각과 고철 나부랭이를 대신 갖다 놓았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만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강탈한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서해안 사람은 밀수업자에게 어린 딸을 쌀 한 말에 팔고 있다. 길마다 송장이 널려 있다' 1874년 달레 신부가 본 한국의 현상이다.

1890년대 또 한분이 왔다. 비솝여사. 영국분이다. 책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다. 비솝 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썼다. 한국을 샅샅이 들여다 봤다. 부산에서부터 신의주, 강계 넘어가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갔다 와서 책을 냈다. 부산에 와 보니 한국이 어찌나 더러운지 하수도도 없고 자기가 놀란 것은 일본인 거처하는 부산 동래를 가보니 동래현에는 그렇게 깨끗했다. 일본이 사는 지역은 이렇게 깨끗한데 어떻게 한국 사람이 사는 부산은 이렇게 더럽냐. 놀라서 썼다. 서울도 얼마나 더러운지 냄새가 풀풀 나서 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지금부터 100년 전 일이다. 100년 전 한국이 그런 나라였다. 이사람이 한강을 따라서 영월까지 갔다. 배를 타고 갔다.

그 당시 서양 여자는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중간중간 내려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서양 여자 귀신이 왔다' 이래서 구경을 하려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 이 때문이 아니고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와서 잘 수 없었다. 양평. 예전에 컸던 양평이다. 아까 우리가 읽은 것 처럼 군 사정을 알아 보니 작은 동네에 이방 이런 사람들이 800명이나 있었다. 조그만 군에 이방이 800명이면 그 사람들 다 누가 먹여 살리냐. 다 백성들이 먹여 살린다. 백성들이 집에 뭘 가졌는지 이방들은 다 안다. 숟가락 몇개, 장 담그는 독이 몇개 이런 것들을 다 안다. 그리고 이방들이 그집에 농사를 열심히 져서 뭐가 좀 생기면 이방들이 무조건 곤장을 친다. 이방이 하는 얘기가 '네 죄는 네가 알지 내가 아냐. 네가 고백을 해라' 그래서 곤장을 쳤다. 그래서 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 뺏긴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은 일을 하려하지 않는다. 다 뺏기니까. 게을러진다. 노력을 해봐야 나한테 남는 것이 없다. 세월은 가라. 이런 태도다.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가보고 대동강을 따라 평양을 가보고 해도 조선 상황이 똑같았다. 그런데 깜짝 놀랐던 것은 당시 연해주 현재 블라디보스톡. 거기에 갔는데 당시 한국 이민자들이 북간도와 연해주에 있었다. 그곳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둘러보니 깜짝 놀랐다. 조선에서는 그렇게 더럽고 게으르고 3류 민족, 원시인 삶을 살던 민족이 연해주에서는 깨끗했다. 집을 반듯하게 짓고 열심히 일하고 러시아 사람보다 훨씬 더 잘살고 깨끗하게 산다. 조선 민족이 이런 민족인지 참 놀랐다. 왜 연해주 조선인은 이렇게 조선에 있는 조선인은 왜 그러냐. 그건 뭐냐. 나라가 잘 못 돼서 그렇다. 나라가 백성이 뭐만 생기면 볼기를 쳐서 다 뺏으니까. 일을 안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를 떠나서 자기들끼리 모여 사니까 그렇게 잘 산다. 조선 민족을 다시 봤다. 그런 얘기를 한 걸 봤다. 이것이 사실 우리 한국의 전신인 조선 말 한국의 상황이었다.

그 시절은 조금 더 하면 1904년 고종 때다. 민비는 죽었다. 민비시해사건. 민비는 지금을 많이 높인다. 명성황후 이래서 오페라 같은 것도 있다. 그 당시 왕은 똑같았다. 그 당시에 윤치호라는 분이 일기를 쓴 게 있다. 20대부터 죽을 때까지 일기를 썼다. 우리의 귀한 자료다. 그 당시에 영어로 썼다. 한국 말로 쓰면 나중에 혹시 잘못돼 누가 흉 잡을까봐 매일 영어로 일기를 썼다. 그분이 쓴 일기에 당시 고종과 민비에 대해 한 이야기가 있다. 얼마나 그 당시 왕궁에 점쟁이, 무당, 내시 이런 사람들만 바글바글했다. 1904년에 러일전쟁. 자기가 왕이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냐. 조선이 러시아에 먹히냐 일본에 먹히냐. 조선이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하고 자기가 생각을 많이 하고 지도자로서 왕으로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 당시 일기를 보면 '제물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황제는 점쟁이 말을 듣고 궁궐 기둥 밑에 큰 솥을 묻는 짓을 하느라 바쁘다' 이런 일기가 있다. 우리 고종이 그렇게 무능하고 나약하고 타락한 사람이었다.

민비도 똑같다. 민비에 대해 평한 일기다. '영리하고 이기적인 이 여인은 미신을 섬기는 것에 반 만큼 백성을 섬겼더라면 그녀의 왕실은 안전했을 것이다' 민비도 백성을 섬기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전부 다 미신을 섬겼다. 지금 덕수궁, 경기여고 자리가 경운궁이었다. 러시아에서 아관파천을 하고 경운궁으로 고종이 옮겼다. 1907년 쯤. 그런데 옮길 당시 1900년대 덕수궁과 경운궁 지금 시청 부근에는 전부 점쟁이와 무당들이 드글거렸다. 왕이 점쟁이와 무당을 좋아하니까 전부 다 그사람들만 있었다. 백성들은 그 사람들 먹여 살리느라 세금 냈다. 이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다. 나라에 대한 걱정 없는 대신 '왕과 왕비, 세자만 안전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다' 이것이 민비의 자세였다.

내가 책을 읽어보니 당시 민비라는 사람 죽고 나서 얼마나 나라에 대해서 무책임하냐면 일본한테 나라를 팔아 먹어도 좋다. 일본이 우리를 합병해도 좋다. 단 우리 이씨 왕실만 살려달라는 것이 조건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할 때 가장 큰 조건. 이완용이 그 조건을 들고 일본하고 협상했다. 얼마나 어리석냐. 이 나라가 없어지는데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지면 조선의 국왕이라는 것. 조선의 대신들이라는 것 없어지는 건데 그런데 그런 것을 모르고 일본한테 나라, 조선을 너희한테 바칠텐데 이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러면 나라를 다 너희에게 갖다 바치겠다. 그래서 갖다 바친 것이다 사실. 그렇게 우리가 무능하고 그런 나라에서 100년 전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100년 전 그런 나라였다. 이런 나라에 들어 온 것이 우리 기독교가 들어온 것이다. 선교사들을 통해서.

이승만 박사 전기 같은 것을 읽어보면 그런 것들이 잘 나타나 있다. 이승만 박사가 그 당시 과거를 보려고 했다. 과거를 못 봤다. 어렸을 때 눈병이 났는데 눈이 멀게 돼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 어머니가 놀랐다. 외아들인데 봉사가 되겠구나. 그래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해보고 해도 안 낫는다. 이승만 박사 어머니가 수소문을 해보니 서양 선교사 의사가 왔다. 그 의사가 잘 고친다기에 이승만 박사 어머니가 이승만을 데리고 갔다. 서양 선교사가 약을 발라주고 집에 가 있어 보니 며칠 지나니 이승만이 문을 열고 '어머니, 엄마가 보여요'라고 말을 했다. 네가 눈을 떴구나. 하며 이승만 어머니가 기뻐했다.

어머니가 이승만을 데리고 선교사에게 갔다. 갈 때 계란 한줄 이렇게 가지고 선교사한테 찾아 갔다. 선교사한테 고맙다고 하자 선교사가 계란은 당신 아들 먹이세요. 당신 아들이 눈이 먼 것은 영양부족 때문이다. 계란은 당신 아들 갖다 먹이세요. 하면서 안 받았다. 그래서 이승만이 깜짝 놀랐다. 서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선교사라는 사람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 나는 과거를 봐서 썩어가는 나라를 고치려 했는데 과거 볼 때가 아니다. 선교사라는 것은 뭐고 서양의 의술이라는 것은 뭐냐. 완전히 머리가 달라졌다. 그래서 과거를 때려치우고 배제학당에 들어 갔다. 배제 학당에서 신학문을 공부했다. 그 후 독립협회 같은 곳에 가입했다. 이승만이 23세 때 감옥에 가게 됐다. 고종에 대한 반역죄로. 1907년 6년 만에 감옥에서 나왔다. 그때 조선은 러일전쟁 등으로 일본에 먹히게 됐다. 이승만이 29살 때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감옥에서 썼다. 지금 읽어도 아주 뛰어나다. 이승만은 굉장히 훌륭했던 분이다. 젊었을 때. 제가 지금 60이 넘었는데 제가 쓰라 그래도 그거 보다 못 쓰겠다. 29살 때 100년 전 이승만이 그걸 썼다.

그 책의 마지막 부분 결론은 '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 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로 일반 백성들까지도 높은 도덕 수준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서 일어나고 썩은 데서 싹을 틔우고자 노력하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에 접할 지라도 그 목적을 못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돼 나라를 한 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건국 4237년 6월23일'

1904년에 이런 글을 썼다. 이승만 29세때의 결론이 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돼야 되겠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서는 조선은 살아날 길이 없다. 이사람이 결론을 내렸다. 이승만이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됐다. 일본이 차지하게 됐다. 그런데 그때도 왜 우리나라를 보우해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나라를 일본한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항의할 수 있겠다. 속으로. 그런데 나는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한테 고난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40년 생활을 하고 우리가 가난한 땅으로 들어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에 독립을 허용 하신 것이다.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지금 와서 '야 과거 일제가 우리한테 그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절대 없다.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피 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서 지금의 뿌리가 됐다. 우리는 그것을 지금 후회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그것을 애석하게, 애석하긴 애석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들어 왔지만은 기독교가 들어온 반면, 500년 동안 내려왔던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이런 것은 일제 시대 대도 같이. 기독교인들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런 것을 하나의 모토로 삼았다. 여러분들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없을 것 같은데, 저는 어렸을때 요즘엔 찬송가에 그런 것들이 없다. 우리 당시에 1930년 40년 대의 찬송가에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노래, 박수) 기독교가 뭔가. 기독교가 우리 조선 민족들한테 너희들 일해야 된다. 열심히 일해야 된다. 근면해야 된다. 그걸 깨우쳐 준거다.

일제 때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은 조선 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개 주셨다' 아마 양반들이 옛날 청나라 사람처럼 손톱을 안 깎은 모양이다. '하나님은 조선 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개를 주시면서 너희들이 선택해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조선 민족은 애뀝게도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긴 손톱을 선택했다' 양반들이 게을렀다. 민비의 친척, 민형익, 일제 말 높은 벼슬. 이 사람은 일을... 물론 그 때 양반들은 아무도 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양반들이 일하는 것을 수치라고 생가가. 그럼 양반들은 긴 담뱃대에 담배 피우고 또 앉아서 강독같은 것을 했다. 조선 민족의 상징인 게으른 것이었다. 그런 게으른 것을 깨자고 한 것이 우리 기독교다.

당시 일본에 유학을 많이 갔다. 돈 많은 사람들이. 양반들 자제. 일본 유학 가서도 일을 하지 않고. 조선 민족의 못된 관습 때문에. 그럼 일을 안하고. 당시 조선 지식인이 어땠나. "조선 유학생 90%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 코를 묻고 있는데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는 사회주의가 이상적일 것이다." 윤치호 일기다. 그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일본가서 유학했을 때 공학을 한다거나 의학을 한다거나 진짜로 이 비탄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려면 그런 게 필요한 것 아닙니까. 과학을 한다든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다 혓바닥 놀리고서 게으르게 먹고 살려고 한다. 그게 조선 사람들 엘리트들의 생각이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영국의 애딘버러 대학을 나왔다. 문학을 전공했다. 안국동 백칸이 넘는 집에 살았다. 이사람이 부자니까 영국에 가서 문학을 했다. 그때 문학을 하면서 집에다가 학비를 보내시오. 문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학비를 보내라 그랬는데 800파운드 당시 아마 한학기 학비 생활비 800파운드였던 모양이다. 아마 쌀이 100가마 이상 될 것. 그걸 보내라 그랬다. 그것을 보고 윤치호가 통탄을 했다. '아니 그 비싼 돈을 들여서 영국 애딘버러에 가서 문학을 하다니. 지금 우리나라가 당장 필요한 것은 나라를 부강시키고 어떻게든 국권을 회복하고 이런 것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문학을 선택하냐.'라고 꾸짖는 편지를 쓴 것이 있다. 우리나라 그때 지식인들이 다 똑같았다.

그런데 윤치호는 어떻게 그것을 버전 업을 시켰냐면, 조선 유학생들이 일하기가 싫다 이것. 앉아서 순 말로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거에요.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고 이게 아주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윤치호라는 사람은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다 체질상.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도록 하기 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 살기를 조장한다. 이것이 유교를 가진 조선과 공통점이다'

그렇죠? 공산주의도 자기가 일 하는 겁니까. 자기는 일 안하려 하잖아. 정부가 세금 걷어서 나는 어떻게든 놀려고 하는 게 공산주의 아니냐. 사람이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자기 노력과 땀으로 일해야 되는데 '야. 돈버는 사람들은 다 우리 것을 착취했다. 저 사람 것을 뺏어서 우리가 먹자" 그게 아주 심플하게 얘기하면 그거다. 조선의 과거 조상들의 피에는 오히려 이 공산주의가 맞는다. '조금만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달라붙는 친인척들. 조선은 옛날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 조선 버전의 볼셰비즘(공산주의)는 강도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이조 말기의 우리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 먹는 게 아주 그냥 몸에 박혀 있었다. 하여튼 이런 나라였다.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들이 와서 변화를 시켰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재작년에 사진전이 있었다. 사진전을 갔다. 북간도에 명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한 백여명이 가서 정착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정착을 해서 자기들이 일궈 나갔느냐 하는 것을 그 후손이 사진을 전부 다 발견을 해서 사진전을 연 것이다. 가서 보니까 당시 북간도의 우리 사람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감명스럽다. 이렇게 게으른 나라의 피를 타고 났는데 선교사님들 거기에 그 목사님이 있었는데 김약연 목사라는 분이 가족을 120명을 다섯가구 끌고 가서 교회를 만들었다. 명동교회, 명동학교, 명동주일학교, 명신여학교를 만들었다. 사진전을 보니 냄새가 나는 조선이었는데 얼마나 깨끗한지 모른다. 애들이 중고등학생들한테 여학생들은 세라복을 입고 실험실에는 가운을 입고 비커 실험기구들이 다 차있고 애들을 악대를 만들었고... 교회를 지었는데 500명이 다니는 교회를 만들었다.

그렇게 거기서 잘 살았다. 우리가 그렇게 게으른 가운데 기독교로 우리가 개종을 하고 하나님 뜻에 맞게 살기로 작정을 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달라졌다. 그래서 참 하나님이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조선민족들한테 보여줬나 하는 것을 말씀드린다. 그렇게 해서 일제 시대가 지났따. 그래서 우리한테 독립을 주셨다.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가 잘 살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 36년, 40여년을 우리가 광야에서 방황을 했는데 잘 살아야 되는데 또 하나님은 시련을 주셨다. 분단이다. 남북분단을 만들게 해주셨다.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본다. 그 당시 아까 얘기했듯이 조선 지식인들은 거의 다 공산주의 사상에 가깝게 있었다. 만일 그때 통일 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것이다.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된다. 그당시 남한테 얼마나 많은 소위 공산주의, 조선노동당이 있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 여순반란 사건 같은 것을 일으켰다. 그 당시의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위에는 다 소련이고 그 옆에는 다 중공이고 그러면 우리가 거기서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를 분단시켜 주셨어. 분단시킨 이유가 뭐냐. 그때는 안타깝고 이게 뭐냐 우리는 독립을 얻었는데 독립도 못하지 않았냐. 그렇지 않다 이거에요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너희들은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은 앞으로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의 게으름, 죄 깨끗하게 안된거야. 그래서 분단을 시킨 거에요.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 와서는 오히려 우리한테 분단이 됐기 때문에 한국이 이정도 살게 된 거에요. 만약 그때 공산주의가 됐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지금 월남, 중국 중국은 몇년 사이에 잘 살아졌지만 지금 북한. 그게 지금 우리 현실이다. 남한이 그 당시 통일됐다면 지금 북한이 돼 있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놔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은 안되겠다. 다시 고난을 더 가져라. 해서 분단을 시켰어. 그것 뿐아니라 6.25까지 만들어 주셨어. 우리 생각에는 야 하나님 참 너무하다. 이럴 수가 있냐. 어떻게 6.25를 이렇게 주셨습니까. 6.25가 또 이렇게 얘기하면 지가 죽지 않았으니까 6.25를 미화한다. 하는데 6.25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단련이 된 것이다.

미국은 그당시 한국을 떠나려 했다. 1949년에 애치슨라인을 만들어서 미국은 방어책임을 한국에서 제외한다. 일본하고 대만까지만 미국이 방어책임을 진다. 그리고 1949년에 남한에 있던 미군을 다 철수했다. 철수하고 나니까 1950년 북쪽에서 쳐들어 온 것이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서. 그러면 그때 6.25전쟁이라는 것은 우리는 소련이나 중공 밑에서 그 후원을 받은 북한에 흡수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안되겠다. 너희들을 붙잡아야겠다. 너희들 어떻게 붙잡냐. 미국을 못가게 만들어주겠다. 하나님이 미국을 우리를 딱 붙잡아 주셨다. 미국이 6.25 사변이 끝나면서 우리하고 안보조약을 맺었다. 상호안보조약. 그것은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하면 미국이 침략을 당한 것처럼 도와주고 미국이 침략을 당하면 우리가 침략당한 것처럼 미국을 도와준다. 우리가 무슨 미국을 도울 힘이 있습니까. 괜히 미국과 조약을 맺기 위해 그러는 거지. 그 안보조약을 맺어서 지금까지 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다. 그것 때문에 지금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이 없는 한국을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친미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군이 없는 한국은 옛날에는 소련 밑에 가 있는 것이고 지금은 중국 밑에 가 있는 것이다. 중국의 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거의 돼 있다. 6.25를 왜 주셨냐. 돌아 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 다음에. 경제발전 했습니다. 경제발전 했는데 누가 시켰습니까. 우리 힘으로 했습니까. 물론 우리가 새마을 운동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뭐 하고 다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루에 3교대씩 밤을 새우면서 일을 했다. 그런데 일해서 상품을 만든 게 다 어디 갔냐. 그당시 신발 앨범 흑백TV 이런 것 다 우리가 만들어서 어디서 사줬냐. 미국에서 사준 것이다. 우리 경제개발의 가장 뿌리는 미국에서 사줬기 때문에 한 것이다. 우리 경제개발도 사실은 미국의 덕이 굉장히 컸다.

이런 얘기는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다.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으려면 경제도 부강해야 되고 이런 게 골고루 다 있어야 된다. 그런데 그거 있는 데에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의 뜻이 전부 다 이해가 될만 하더라. 1960년대서부터 70년부터 공업화를 했다. 공업화를 한 가장 큰 힘이 일본의 기술력이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다 기술을 하고 앞장 섰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만 따라가면 된다. 박정희나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다 일본 따라서 이만큼 컸다. 일본이 우리는 지금 우습게 보지만은. 우리는 특히 일본사람들 우습게 본다. 쪽바리들 이렇게 생각하지만은 일본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하나 중국. 지금은 중국이 달라졌지만 우리가 막 경제 발전을 할 때 중국은 문화혁명을 했다. 모택동 밑에서. 문화혁명이란 공산주의 젊은 애들이 윗사람들 다 내쫓고 다 폭력으로 정권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 20년을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경제고 뭐고 다 내팽개쳤다. 우리가 그 20년 사이에 우리는 올라 섰다. 어느 단계까지 올라섰다. 그러니까 중국이 깜짝 놀라서 1980년대부터 지금 등소평이 와가지고 개혁개방이다 해가지고 세계의 G2나라가 됐다.

그러면은 안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미국을 우리한테 주셨고 경제가 필요할 때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리나라를 있게 해 주시고 이런게 그냥 보통 생각하면은 '그냥 다 역사가 그런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당연하게 우리가 그렇게 온 우리의 역사라 이거다.

지금 제가 걱정되는 것은 중국이 옛날 중국이 아니다. G2가 됐다. 세계에서 두번째 강대국이다. 우리는 평생 미국이 제일 큰 나라고 제일 잘 사는 나라일 줄 알았는데 앞으로 2015년 많이 안 남았다. 4년 뒤에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강대국이 된다. 강대국보다 생산을 제일 많이 하는 경제 제1의 국가가 된다. 물론 인구가 많으니까 개별 소득을 따지면 미국이 앞서지만 전체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 1위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1위가 된다. 그게 2015년이다. 그러면 2015년 이후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미국이 계속있으면서 잘 봐주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중국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아주 막대한 영향을 준다. 이것도 우리가 잘 해결을 앞으로 해나가야될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국이 G2로 올라선 것까지 좋은데 거기에 나는 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뭐냐. 과거에는 세상의 축이 대서양이었다. 미국과 유럽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일본 중국 한국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돼 간다. 중국이 1위 국가가 되고 일본이 3위나 4위 국가다. 한국이 7-8위 국가다. 그러면 동북아가 세계 중심권이 된다. 그러면 이건 또 뭐냐. 거기에 또 우리 한국이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가야되는데 굉장히 중요한 지정학적인 무엇인가가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역사를 훑어보면서 중국을 우리가 한편으로는 우리 물건을 수출해야 하니까 중국이 우리하고 친해져야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은 아직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북한하고 가깝다. 그러니까 중국의 역량에 따라 우리나라는 통일이 되고 안 되고 그럴 가능성도 높아졌다.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가 됐다. 그러니까 중국을 하나님께서 터치를 하셔야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터치할 것이냐 하는 것은 아직 모르겠다. 중국에 1억명의 기독교 신자가 있다. 나라에서 인정하는 기독교 말고 모두 합쳐서 1억명이다. 중국에 앞으로 하나님의 터치가 어떻게 일어날는지 모르겠지만은 공산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무슨 협상을 통해 이렇게 망하는 건 아니다. 하나님이 터치가 돼야 함. 동구에서도 그런 일이 다 일어났다. 폴란드가 제일 먼저 변했는데. 폴란드를 제일 먼저 변하게 한 것은 그 당시 바오로 2세다. 바오로 2세가 거기 가서 설교를 하고 했기 때문에 그때 터치가 돼 폴란드가 변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왜 붕괴했냐. 소련이 그냥 붕괴한 것이 아니다. 레이건 회고록에 보면 레이건이 분명히 얘기한다. 레이건은 소련을 핵무기 개발 경쟁을 덜 해서 소련을 개방하고 이래서는 소련이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터치해야 한다. 레이건이 믿음이 좋았던 사람인 것 같다. 겉으로는 영화배우라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시하는데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터치는 어떻게 만들 것이냐. 고르바초프를 개종을 시켜야겠다. 고르바초프가 교회에 나오도록 하나님 믿도록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1985년 정상회담을 할때 4차례를 비밀로 만났는데 레이건이 고르바초프한테 전도를 했다. "너 하나님 믿어야 된다. 너 나랑 헤어질 때 갓블레스유 그러던데. 너 하나님 믿어라. 하나님이 계시다. 내 아들이 있는데 내 아들은 하나님을 안 믿는다. 난 내아들이 하나님 믿길 바란다. 걔한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좋은 식당에 가서 좋은 음식을 한번 먹이겠다. 그리고 나서 묻겠다. 음식이 어디서 만들어졌는데 네 앞에 와 있니. 아들이 주방에서 만드는 것 아니냐고 얘기할 것 아니냐. 그러면 지금 너는 누가 만들었냐. 너는 누가 만들었냐.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고르바초프 당신 하나님을 믿으세요." 정상회담을 하면서 이렇게 전도를 했다. 카터 대통령이 1978년에 한국에 와서 박정희 대통령한테 하나님 믿으라고 전도한 적도 있다.

하여튼 공산주의라는 것은 우리가 뭐 협상을 통해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남북통일이 되고 이런 거 없어요. 그런 거 일어날 수가 없어. 우리 남북을 분단시킨 이유가 다 있다. 왜냐. 하나님은 통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것을 우리 민족한테 다시 한번 보여주려고 그러는 겁니다. 분명히 보여주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슨 남북회담을 해서 개방정책을 해서 그렇게 안돼. 분명 10년 내에 하나님의 터치가 온다. 그때 한국 민족이 '아 이게 뜻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제가 왜 '기회의 나라로 만들게 해주십시오' 우리나라 기도를 하냐 하면 우리나라가 보통 나라가 아니라 이거야. 하나님이 우리한테 매순간 매순간 기회를 주셨다. 지금은 어떤 기회를 주셨습니까. 모든 나라가 다 한국으로 오려그런다. 아시아에서. 우리도 아시아 전도대회 나가지 않습니까. 아시아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뭐 다 모든 사람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한국의 예술, 체육, 문화, IT기술 그것 다 배우려 그런다. 다 오려그런다. 그사람들 생각에 한국은 기회의 나라다. 우리가 옛날에 미국을 보고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기회의 나라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터치가 있는 그런 축복받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을 받아 제1의 국가가 됐지만은 지금 미국이 점점 쇠퇴한다. 이유는 사이클이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 잘못으로 있다. 가난하고 어렵고 이럴 때는 열심히 노력. 절약 한다. 가난 고난이 있다가 열심히 해서 부유해지고 번성 돈이 생기면 그 다음에 퇴폐한다. 그럼 인간사가 똑같다. 모든 세계 역사가 똑같다. 번성하고 잘 살게 되면 그 다음 사이클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부패하고 이기주의가 번성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몰락이다. 이게 사이클이다. 하나님은 우리한테도 이런 사이클을 주실지 모른다.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지 이 사이클을 막을 수 있따. 이 사이클을 막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된다.

기회의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것은 미국 선조들이 처음 미국에 올라갔을 때 청교도들이 원한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저 언덕 위에 빛나는 집으로 만들게 해주십시오. 환한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교도들이 기도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점점 쇠퇴하고 이제 G2가 됐다. G3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 기독교가 점점 더... 유럽은 이미 끝났따. 다음은 미국 차례다. 미국도 끝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 누구를 써야 되겠냐. 하나님이 쓸 사람이 있어야 돼. 하나님이 쓸 사람은 전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괜히 제가 뭐 우리 민족이 잘났고 이런 것을 부추기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선교사가 왔다. 임진왜란때 일본 소서행장을 따라서 선교사가 이미 조선에 왔다. 일본에 있던 선교사가.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200~300년 앞서 선교사가 왔는데 일본은 하나님 나라가 안 됐다. 중국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선교사가 왔는데 하나님 나라가 안됐다. 한국이 유일하게 그래도 지금 1000만 교인이라고 하는데 1000만 교인을 가지고 있다. 참된 신자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님 나라도 돼 있다.

아까 동북아시대가 열렸다. 여기가 중심이다 할 때 하나님은 '아 한국을 써야 되겠구나. 한국을 다음의 세계의 중심 국가. 세계의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 되겠다"하는 뜻이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그런데 다음주에 오대원 목사님이 와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야 되는데 나라를 위한 기도 뭐를 해야 되겠냐. 나라를 위한 기도. 간략히 하겠다. 아까 사이클이 있다고 했다. 흥망성쇠, 번영 그 다음에 퇴락, 부패 이것들이 다 이어진다. 우리가 이 사이클을 끊어야 한다. 사이클을 끊을 힘은 하나님과 성령님밖에 없다. 그 사이클을 끊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그래서 이 나라를 다시 성령님으로 도덕의 나라 개혁의 나라로 정신적으로 다시 바꿔야 한다. 그게 우리 첫째 기도가 돼야 한다.

요새 왜 자살이 많냐. 왜 뭐만 하면 대통령부터 다 죽습니까. 장관 지낸 사람들. 나라가 벌써 부패해진 것이다. 정신이 썩어진 것이다. 이러면 이 나라는 고꾸라지게 돼 있다. 우리가 이나라의 정신을 살려주십시오. 이나라에 성령이 임해서 정신이 부흥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게 첫째다.

둘째는 우리가 개혁. 정신 개혁에 따라오는 것은 뭐냐. 지금 이 나라가 너무 분열이 돼 있다.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너무 분열이 돼 있다. 잘 살게 된 데도 큰 원인이 있다. 있는 사람들의 원인도 있다. 지금 분열이 된 이 나라가 다시 통합이 돼야 한다. 갈등에 쌓여 있는 나라가 다시 화합을 해야 한다. 그게 우리나라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이 나라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분열의 영이 떠나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두번째 기도를 해야 한다.

세번째 기도는 북한에 대한 기도다. 아까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지 북한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 통일원 사람들을 몇사람 만나 봤는데 이사람들 예측은 2020년까지 북한에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서 자기들이 보기에는 통일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얘기를 했다. 2020년까지 통일이 온다 이거야. 그건 하나님 터치가 있을 때 통일이 온다. 그때까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된다. 기도하고 지금 못 먹고 있는 북한 애들을 위해 도와줄 것 있으면 도와줘야 된다. 지난 주에 목사님도 그런 말씀 하셨다. 애들은 못 먹으면 뇌가 상한다. 3~4살까지 뇌가 100% 발달을 하는데 그때 영양 부족이 되면 평생이 애들이 IQ가 낮은 저능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 북한 애들이 저능아가 되면 나중에 통일이 된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먹여 살리겠습니까. 우리 북한을 도와줄 것은 식량이나 의약품이나 영양가 있는 것. 이건 도와줘야 된다. 도와주면서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기를 기도해야 된다.

네번째 기도는 중국의 민주화, 자유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아까 필요성을 말씀 드렸따. 중국이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한 나라가 됐다. 이런 식으로 지금 식으로 가면 조선반도 한반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까 중국의 자유화, 민주화가 있고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져야 된다.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지면 우리나라 통일은 자연히 되고 중국의 민주화도 자연히 이루어진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중국을 기도해야 된다.

다섯번째 제일 중요하다. 우리 좋은 지도자를 좀 주십시오. 좋은 지도자. 중요한 시점이다. 저는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 조지 워싱톤, 제퍼슨, 존 아담스, 해밀턴. 1976년 미국이 독립을 차지했을 때의 그 미국의 무수한 좋은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의 독립이 가능했다. 그사람들은 그당시 월급을 안 받으려고 했다. 나라 일을 하는데 월급을 받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하면서 안받으려 했던 사람들이다.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링컨은 너무 잘 아니까 얘기할 필요가 없다. 링컨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다 기도하면서 했다. 링컨이 공부를 못 한 사람이다. 켄터키 옛집에서 그냥 책보고 학교도 못가봤다. 그런데 어떻게 링컨이 명연설을 하냐.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극민의 정부를 세우겠다.' 그런 명연설은 어떻게 나오냐. 이사람은 자기가 중요한 연설이 잇을 때는 요즘 우리나라는 다 밑에 사람이 써온다. 자긴 그런거 안했다. 성경책 미국 헌법 하나 딱 두개만 들고 자기가 혼자 멀리 백악관을 떠나 혼자 가는 거다. 가서 성경을 읽으면서 미국 헌법을 읽으면서 내가 백성들한테 이 미국시민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야 되겠나 하는 것을 1주일 동안 기도하면서 연설문을 썼다. 그래서 링컨의 연설문이 그렇게 명연설문이 된 것이다. 우리 지도자들이 저는 그런 지도자가 좀 나와야 된다고 봐요. 지도자가 중요하다. 우린 지금 지도자에 너무 기근이 들렸다.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우리가 과거 미국 파운딩 파더같은 그런 지도자를 우리한테 주십시오. 그런 정치 지도자를 주셔가지고 이나라를 좀 살리게 해주십시오. 하고 전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이다. 우리 크리스천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한국에 1000만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크리스천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며칠 전에 인요한이라고 연대 세브란스 병원 교수 선교사 아드님이신데 그 분이 어느 신문에 기고를 했다. 만일 지금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며칠 목욕을 안하고 허름한 넝마를 걸치고 한국 교회에 들어설 때 그걸 받아줄 한국 교회가 어디 있겠느냐. 하고 기고를 했다. 우리가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된다. 다른 사람 손가락질 할 것 없다. 우리가 먼저 각성 해야 한다. 영국이 그렇게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은 뭐냐 그리고 망한 이유가 윌버 포스나 감리교 요한 웨슬레나 이런 성령 운동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영국에서 상인들이 제일 정직했다. 영국 상인들은 다 믿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했다 .왜 믿을 수 있냐. 그당시 크리스챤 개혁운동을 했다. 우리 크리스챤이 개혁 운동에 앞장 서야 된다.

준비한 건 많았지만 시간이 다 돼서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개인적으로 더 말씀을 드리겠다. 하여튼 우리가 크리스챤이 먼저 정신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다. 옛날에 우리나라 국민소득 아프리카 기니하고 같은 80불의 나라였다. 불과 50년 전에. 그런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주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괜히 이렇게 만들어 주신 것 아니다. 미국이 기회의 나라가 됐듯이 우리나라도 기회의 나라가 돼야 한다. 소망의 나라가 돼야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기도)

졍리 = SSTV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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