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이승환 “인디와 오버 사이 유일한 사람, 자랑스럽다”
[SS인터뷰] 이승환 “인디와 오버 사이 유일한 사람, 자랑스럽다”
  • 승인 2014.03.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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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팩토리

[SSTV l 장민혜 기자] “좋은 음악의 정의는 없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히트곡도 있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음악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좋은 음악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수준이 낮은 음악도, 나쁜 음악도 없다. 하지만 오래 불리고 기억되는 음악은 분명 있다. 그런 노래들은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승환이 자신의 앨범을 소개하며 덧붙인 말이다.

이승환은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기준을 세웠던 가수 중 단연 넘치는 의욕으로 한발 앞서 이를 실현했던 뮤지션이다. 1995년 ‘휴먼’ 앨범부터 미국 현지에서 데이비트 켐벨과 같은 세계 최정상급 뮤지션과 작업하고, 드림팩토리를 설립해 세계 최고 수준의 녹음실을 꾸렸다. 이 모든 과정이 한국 대중음악의 ‘기준’이 되고자 한 신념에서 비롯한 결과물이다.

이승환의 정규 11집 ‘폴 투 플라이(Fall to fly)’는 세월이 지나도 변해서는 안 되는 대중음악 뮤지션의 기준이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오롯이 투영된 대작이다. 이번 앨범은 3년간 꼬박 1,820시간의 녹음 시간 동안 작업한 결과물로써, 이승환은 이번 11집 앨범을 통해 그를 포함한 한국 뮤지션들이 세운 음악적 기준을 스스로 확장하고 정교하게 재구성했다. 이승환이 앨범에 큰 비용을 들이게 된 건 2010년도 앨범을 통해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벼랑 끝에 선 기분”이라며 당시를 회상한 이승환은 앨범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이게 과연 경제 활동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2년쯤 지나니 앨범을 만들고 싶어서 주체할 수 없었죠. 벼랑 끝에 선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음반을 예전보다 대중적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완성도 면에서 흠 잡히지 않으려고 마스터링도 6번 했죠. 믹싱도 곡당 2번씩요. 녹음도 미국 가서 했던 걸 엎고, 한국 와서 다시 재편곡해서 한 것도 있어요.”

이번 앨범 ‘Fall to fly-前’은 개인적인 사정에 대한 느낌도 담겨 있다. 이승환은 자신의 ‘비상을 위한 추락’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많은 사람이 체념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제 깨어나라. 바닥을 치지 않았니?”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제 위기요? 하하. 97년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고, 급속한 위기는 없었지만 10집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음악 차트에서 하루, 이틀 만에 사라져서 심각하다고 생각했죠.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들었어요. 25년 차 제작자인데 제 휴대폰에 방송국 PD 이름이 세 명 밖에 없다는 건 큰 문제지 않나요?”

앨범명에 ‘前’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후편까지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승환은 후편으로 낼 곡도 작업이 끝나며 전편에서는 대중 친화적이고 편한 곡 위주였다면 후편에서는 록을 통해 거친 느낌을 자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건 전편, 후편 모두 ‘꽉 찬’ 앨범이라는 것이다. 싱글 앨범, 미니 앨범으로 음악 활동을 펼치는 게 대부분인 요즘 이승환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싱글 앨범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왔죠. 앨범 전체를 듣지 않는 시대에 앨범을 내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했죠. 하지만 자존심인 것 같았습니다. 싱어송라이터는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서 삶을 그려내죠. 그 삶을 한 곡에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가사를 썼다면 최근 4년간 이승환의 삶은 평탄했다. 그는 아픔과 흔적이 담긴 가사 대신 밝은 가사를 쓰고자 했다. 애절한 가사를 못 쓰겠다는 것. 결국 수록곡이자 선공개곡 ‘내게만 일어나는 일’은 전설의 밴드 퀸을 연상시키면서도 신파인데 신파 같지 않은 느낌으로 완성됐다.

“옹알이 창법에서 벗어나서 가사를 잘 들을 수 있게 노래하죠. 또 보컬 능력에 대해서 폄하되거나 실제로 자신 없었던 점이 있었어요. 그런 걸 없애고 싶었죠. 노래 스킬이나 감정, 기본기가 잘 보일 수 있는 음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승환이 바꾼 건 노래 창법, 발음 등이 아니다. 이전까지 10시간 혹은 그 이상 노래를 주야장천 불렀다면 나이 때문에 힘들어서 오래 서 있는 게 어렵다며 일정 시간 노래 부르고, 쉬고 집 가서 모니터링해본다고.

“이번에는 앉아서 많이 불렀거든요. 서서 부를 땐 몰랐는데 앉아서 부르니까 이소라가 왜 그렇게 의자에 집착하는지 알게 됐어요. 최근에는 공연에서도 앉아서 해요.”

   
ⓒ 드림팩토리

◆ “앨범 마지막 곡,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바치는 곡”

이승환은 타이틀곡 ‘너에게만 반응해’를 통해 자신이 키운 후배 가수이자 현재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이소은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소은을 섭외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타이틀곡 ‘너에게만 반응해’ 앞 네 마디에 예쁜 목소리가 필요할 것 같았어요. 많은 여배우를 떠올리다가 소은이가 떠올랐어요. 중학교 때 처음 발탁해서 1, 2집 작업을 함께했었죠. 스마트폰 메신저로 노래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단박에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소은뿐만 아니라 가리온의 MC 메타, 바우터 하멜, 유성은, 러시, 이보영, 김예림 등이 이승환의 이번 앨범에 힘을 보탰다. 특히 배우 이보영을 섭외한 점이 눈에 띈다. 이승환은 이보영이 자신의 팬임을 알고 하겠느냐고 제안했고, 흔쾌히 수락하며 독특한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오다가다 한 번 본 적 있는 사이거든요. 오래전 보고 이번에 녹음하게 됐어요. 사실 녹음은 10분만 하고 밥 먹으러 갔죠. 그 사이에 지성 씨도 왔어요. 작업하고 나서 이보영 씨 전화번호는 모르고 지성 씨와 메신저 주고받는 사이가 됐죠.”

재즈 아티스트부터 배우까지 이승환의 앨범은 꽉 찬 느낌이 풍긴다. 여기에 시인 도종환이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라는 곡의 작사를 맡았다. 이승환과 도종환은 이 곡을 통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냈다. “이런 노래 내도 괜찮을까요?”라며 잠시 머뭇거리던 이승환은 도종환과 작업하게 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도종환 시인은 친노 계열이죠. 도종환 시인은 딱히 그분을 위해 시를 쓴 게 아닌데 자꾸 그분이 생각났어요. 봉하마을 음악회에 가서 그분 생각하며 노래 불러도 되느냐고 하니 된다시더라고요.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적은 처음이었죠. 처음에는 가사를 제가 많이 쓰니까 쓰려고 했는데 멜로디 자체가 진중한 느낌이었죠. 처음에는 어떤 의도 없이 말씀드렸지만, 그분이 생각나더라고요. 헌가 같은 느낌이죠.”

유명인의 정치적 신념은 밝히기 어렵고, 밝힌다더라도 비난을 사기 쉽다. 이승환은 지난해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바탕으로 한 영화 ‘변호인’을 팬, 스태프들과 단관해서 관람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콘서트를 마친 후에야 영화를 보게 된 그는 “‘변호인’ 보고 안 울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을 꺼낸 뒤 “소신보다는 취향”이라고 설명했다.

“‘소신’이라는 말까지 쓸 필요 없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는 다음에 발표될 뮤직비디오예요. 쇼케이스 때 공개하려고 했는데 비가 와서 촬영이 조금 지연됐어요. 만화가 강풀, 캘리그라피 하는 분, ‘마당을 나온 암탉’ 오성윤 감독이 참여하죠. 오성윤 감독은 지난해 문재인 후보 대선 광고를 촬영하셨던 분이더라고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만나게 됐네요.(웃음) ‘아버지의 등’을 주제로 삼았어요. 직접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어요. 그분은 굉장히 서민적이셨고, 권위적이지 않으셨기에 아버지의 등을 통해 투영해보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취향과 성향을 드러내려니 두렵기도 하지만 선배 한 명이 뒷받침해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 드림팩토리

◆ “이승환에게 앞으로의 25년이란…”

“요즘 같은 상황에서 데뷔했다면 인디를 택하지 않았을까요? 10cm나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특출한 음악을 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겠죠. 살아남기 위해 본능에 따라 그런 음악에 접근하는 느낌. 저 스스로 젊은 감각을 잃지 않고 산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는 환경이 좋아졌죠. 그런 걸 섞어서 새로운 걸 창조하며 잘해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이미지나 나이에 얽매여서 못할 때가 있어요. 사실 홍대에서 몰래 19금 콘서트 같은 걸 하기도 했고요.”

본인 스스로 ‘젊게 산다’고 표현해서일까. 한참 나이 어린 후배들까지 아우르는 이승환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이승환의 모습은 요즘 20대와 비교해봐도 거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술값과 밥값의 80~90%는 후배들에게 산 것이죠. 지난해 10월에 톡식 드러머와 단 둘이 일본 여행을 갔거든요. 27년 차이 나도 소통의 어려움은 느끼지 않는데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어요. 낮에는 따로 놀기로 했는데 계속 쫓아다녀서 귀찮았죠.(웃음)”

27년 차이에도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승환은 최근 취미 생활을 ‘짤방 모으기’라고 밝혔다. ‘짤방’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갤러리에서 ‘잘림 방지’용으로 올리던 걸 줄여 부르던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글에 첨부된 이미지 등을 통칭하기도 하며, 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대화의 상황에 어울리는 그림 등을 뜻하기도 한다. 온라인을 쉽게 접하는 젊은 세대의 소통 방식을 이용하고 있는 이승환은 이를 통해 마케팅도 펼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너에게만 반응해’라는 곡을 통해 ‘짤방 만들기’ 이벤트를 했어요. 강풀, 김양수 등 웹툰 작가 등이 보내주기도 했죠. 아, ‘짤방 만들기’ 대회를 열 계획이에요.”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젊음’을 유지하는 듯한 이승환. 그에게 가수로서, 제작자로서, 연예계의 한 사람으로서 그 시간은 ‘벼랑 끝에 있는 듯한’ 시간이었다.

“앙탈 부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산전수전을 겪었고, 순탄하지 않았던 가수 생활을 했죠. 신인 가수가 자기 앨범을 최초로 제작한 사람이기도 했고, 언론의 안 좋은 관행을 마주친 스물다섯 살 어린애였죠. 제 CD를 집어던지는 PD를 본 적도 있어요. 정직과 정의를 모토로 살았는데 ‘애원’ 뮤직비디오에 귀신이 조작됐다는 몰아붙임을 당하기도 했죠. 음악 활동을 하면서 피해의식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도 행운아였던 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공연도 지금까지 계속해올 수 있었고, 인디와 오버 사이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이승환은 본인이 말한 것처럼 인디와 오버를 아우르는 유일한 사람이다. 나이가 먹으며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다른 음악에 관심이 늘어나는 게 전체적인 현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그는 인디씬에 대한 걱정도 드러냈다.

“인디그라운드가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서 오버그라운드 시스템을 교부시키는 느낌이에요. 통기타 위주의 음악이 유행하니 홍대에서도 통기타 위주의 음악만 나오는 것 같아요. 페스티벌하는 친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작은 출연료에도 무대에 서요. 어느 록 페스티벌은 대기실도 주어지지 않죠. 다들 싸우고, 분리되고. 어른들의 세계처럼 변해가고 있어요.”

이렇듯 짧다면 짧을 수 있지만 한 아이가 성장해 완전한 성인으로 자라날 시간인 25년을 보낸 이승환은 오버그라운드와 인디그라운드 모두에 대한 걱정을 놓지 않았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남다른 성찰도 고백했다. 젊게 살려고 노력하고, 날이 갈수록 한층 젊어가는 듯한 이승환. 그는 가수 혹은 제작자로서 앞으로의 25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을까.

“앞으로의 25년요? 50살 되자마자 힘들어졌어요. 안경원 갔더니 다초점 렌즈 맞추라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처음 미세먼지라는 걸 봤어요. 49년 만에 처음 봤죠. 촉수가 생기지 않고 25년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하하. 2년 전이었나, 믹 재거가 스키니진을 입고 그래미 시상식에 나온 걸 봤거든요. 일흔이 넘었는데 스키니진 입고 하는 걸 보니 믹 재거처럼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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