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유연석, 11년 차 배우와 ‘인간 안연석’을 엿보다 ②
[SS인터뷰] 유연석, 11년 차 배우와 ‘인간 안연석’을 엿보다 ②
  • 승인 2014.01.0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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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김숙현 기자]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94’(연출 신원호 | 극본 이우정) 칠봉이로 소위 말하는 스타 대열에 오른 유연석은 2003년 영화 ‘올드보이’(감독 박찬욱)로 데뷔한 후 누가 보던, 보지 않던 끊임없이 다양한 작품을 거쳤다.

특히 ‘응답하라 1994’에 출연한 동안에는 쏟아지는 화보와 그룹 씨스타 효린의 솔로 앨범 타이틀 곡 ‘너밖에 몰라’ 뮤직비디오 출연, 세종대 대학원 워크숍 공연 연극 ‘쥐’에 조명디자이너로 참여하는 등 부지런하게도 움직였다. 2014년 첫 주말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연석은 ‘소처럼 일한다’는 말에 웃음을 터뜨린 후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게 아깝다”며 “마냥 집에 있는 것보다 뭔가 배우고 도전하고 경험하는 데 재미를 느낀다. 그런 경험이 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공백이라는 걸 모르는 듯 작은 역, 큰 역 개의치 않고 꾸준히 새 캐릭터로 변신하는 유연석의 행보가 결코 쉽지 않음을 안다. 유연석은 몇 십 명의 인물에 집중하고 그를 떠나보내는 데 도움이 된 방법으로 ‘정서를 순화할 수 있는 취미’를 꼽았다.

“개인적으로 정서 순화를 할 수 있는, 몰입할 수 있는 취미가 많아요. 제일 즐겨하는 건 사진 촬영이고, 계속 필름 카메라를 쓰다가 디지털 카메라를 장만한 지 얼마 안 됐어요. 현상이나 인화도 해보고 싶어서 장비를 구입하려고 했었는데 시간상 어렵더라고요. 여행도 좋아하고 야외에서 경치 보면서 낚시하면 생각할 것도 많아서 여가가 돼요. 가구 만드는 취미도 있고, 악기 다루는 것도 좋고 운동도 좋아하고요. 그런 것들이 도움을 많이 줘요.”

유연석은 ‘응답하라 1994’에 이어 영화 ‘은밀한 유혹’(감독 윤재구)과 ‘상의원’(감독 이원석, 가제) 출연을 확정하고 칠봉이를 벗어나가는 단계다. “다행히 한 작품이 끝나기 전에 새로운 캐릭터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그는 새 캐릭터 연구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레 전 캐릭터를 지워가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작품과 새 작품 사이에 서 있는 현재의 유연석에게 칠봉이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묻자 잠시 고민하더니 “절반?”이라고 고개를 갸웃한다.

“새로운 영화를 하고 있어서 조금씩 그 캐릭터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계속 칠봉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죠.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칠봉이도 끝난 게 아닌 것 같아요.”

   
유연석 ⓒ SSTV 고대현 기자

◆ “어떤 캐릭터든 간절함과 진정성이 중점”

유연석이 여심을 훔치는 데 성공한 요소에는 풋풋한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칠봉이를 순수한 목소리에 어눌한 발음으로 그려낸 덕도 있었다. 반면 그를 ‘국민 나쁜 놈’으로 불리게 한 영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늑대소년’(감독 조성희)이나 살벌한 광기를 보인 ‘무서운 이야기’(감독 정범식 임대웅 홍지영 김곡),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감독 장준환, 이하 화이) 등에서는 오싹하도록 차갑거나 격앙된 모습으로 “쟤가 칠봉이라고?”라는 말을 들을 만큼 다른 연기를 선보였다. 그의 진짜 목소리는 무엇일까.

“칠봉이가 오히려 제가 크게 의도하지 않고 한 캐릭터예요. 굉장히 긍정적이고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캐릭터니까 밝은 말투와 맑은 톤으로 대사를 했죠. 감독님도 ‘실제 너처럼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많이 꾸미지 않았어요. 지금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실제로 저 다소 어눌해요. 그런 부분이 여과 없이 나갔던 것 같아요.”

그래프로 그려 본다면 앞선 전작들과 ‘응답하라 1994’ 칠봉이는 평생 평행선 양끝을 지킬 만한 극과 극 캐릭터다. 특히 칠봉이가 되기 직전 유연석이라는 배우를 대중에 각인시킨 역할들은 더욱 그렇다.

“제 장점 중 하나인데 눈매가 어떻게 보면 선하고 어떻게 보면 매서워 보여서 그런 걸 잘 살리고 싶었어요. 나쁜 놈 같지 않은 사람이 나쁜 놈처럼 할 때의 재미들이요. 다행히 그런 역할들을 했던 게 잘 살아서 지금 칠봉이처럼 착한 캐릭터가 인상 깊게 남은 것 같아요. 앞선 캐릭터의 레이어가 쌓이니까 착한 역할이 더 부각된 거죠. 일부러 악역을 해야겠다기보다 그 작품이 좋았고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한 건데 공교롭게 악역한 작품이 잘 되다 보니까 그 기억이 많이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이어 유연석은 선한 캐릭터와 악한 캐릭터에 개의치 않고 늘 지키려는 소신으로 ‘간절함과 진정성’을 꼽았다. 어떤 캐릭터든 접근하는 과정은 비슷하다는 그는 고민 끝에 “악역도 그 친구가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간절한 동기가 있다. 그 마음이 진정성 있게 다가갔을 때 악해 보일 수도, 선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간절함과 진정성을 잘 표현하려 노력했었다”고 털어놨다.

유연석은 3일 방송된 ‘응답하라 1994 에필로그’ 1편에서 제작진과 첫 미팅 당시 “상처받은 캐릭터나 핸디캡 있는 역할에 동정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위치에서 행복하고 멋진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는 범위도 분명히 있었을 터. 한 마디만으로는 끝내기 아쉬운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 영화 했을 때 ‘혜화, 동’(감독 민용근) 한수라는 친구도 동정이 갔고, ‘늑대소년’ 지태도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아이라고 생각하니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렇지 순이(박보영 분)를 사랑하는 마음은 굉장히 간절한 걸로 봤는데 오해가 쌓이면서 결국 죽음까지 맞고. 안타까웠어요 저는. 또 시청자 분들, 관객 분들도 핸디캡 있는 캐릭터에 동정과 연민을 느끼는 것 같아요. 칠봉이도 가족의 부재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음에도 긍정적으로 행동하려 하고 항상 웃으려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아이가 힘들어하고 사랑에 아픔을 느끼는 데 감정이입해서 응원하시는 분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멋지고 위화감 느껴질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완벽한 캐릭터들보다 뭔가 결핍이 있고 핸디캡이 있어서 측은하게 바라봐지고 동정이 가는, 그런 캐릭터에 제가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아요.”

캐릭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화이’ 이야기를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화이’에서 박지원(유연석 분)은 창호(박용우 분)의 입에 총구를 밀어넣고 무시무시한 러시안 룰렛을 벌인다.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박지원의 대사는 ‘막발’ ‘빠이빠이’ ‘빵빵’ 등 다양한 표현을 연상하게 했다. 이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묻자 들어본 적 있는 듯 “마지막 대사요? ‘빠이빠이’예요, ‘빠이빠이’”라고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원래 제시됐던 대사가 아니라 애드리브여서 그래요. 나중에 대사로 정리되긴 했는데 제가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는 없던 대사였어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박지원이 장난을 하는 상황이니까, 쏘기 전에 진짜 마지막 발이 있는 건지 창호는 모르잖아요. ‘빠이빠이’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이제는 진짜 당신을 죽인다’는 메시지처럼 들릴 것 같아서 더 겁주고 장난치려고 ‘빠이빠이’란 얘길 한 거죠. 사실 박지원은 지금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안 나가는 걸 알고 있음에도요. 그래서 집어넣은 거 같아요. 극적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

   
유연석 ⓒ SSTV 고대현 기자

◆ “시간이 걸려도 아날로그의 기다림이 좋아요”

‘응답하라 1994’의 배경인 1994년 당시를 묻자 유연석은 자신이 국민학생이었는지 초등학생이었는지를 고심하며 “5학년 때 바뀌었나? 4학년 때였나?” 자문자답을 거듭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기억만은 분명하니 배우 유연석 전의 어린이 안연석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친구들이랑 노는 거 좋아하고 활달한 아이였는데 당시에 학예회를 하다가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처음 갖게 됐어요. 그 이후에는 친구들 앞에서 뭔가 보여주려고 하고, 더 활달해지고 액티브하게 바뀌었어요. 어린 나이에 꿈이 확실하게 잡혔죠.”

안연석 어린이가 자라면서 겪어 온 것들 중 생각만 해도 화색이 돌게 만든 키워드는 삐삐와 모토로라 구형 휴대전화 모델인 스타택이었다. 삐삐 이야기에 반가워하고 손으로 스타택을 여는 시늉을 하며 ‘딸깍’ 소리를 재연하는 목소리에서 추억의 즐거움이 잔뜩 묻어났다.

“저도 삐삐 세대였기 때문에 삐삐 에피소드에 굉장히 공감했어요. 메시지가 들어오면 ‘이게 무슨 내용일까?’ 하는 궁금함과 설렘이 참 좋았거든요. 지금은 메시지들이 바로 확인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잠깐의 기다림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한테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다 보니까. 또 칠봉이가 미국에 가서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스타택이더라고요. ‘딸깍!’ 하는 거요. 남자들이 스타택에 굉장히 열광했었거든요. 보면서 ‘이야~’ 하는데 그 소품이 지금도 실제로 작동하는 거예요! ‘우와, 미술팀 대단하다’ 하고 감탄하면서 저도 예전 생각 많이 나서 추억하고 그랬죠.”

유연석은 2011년 SSTV와의 인터뷰에서 식혜를 정말 좋아해 어릴 적 별명이 ‘식혜 먹고 자빠져’였다고 밝힌 바 있다. 쉬어가는 타이밍에 문득 생각나 지나가듯 던진 이야기인데 의외로 진지한 대답이 돌아온다.

“아날로그적인 것, 그런 삶을 좋아하나 봐요 제가. 시간이 걸려도 아날로그의 기다림들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인스턴트보다 전통 음식이 좋고 입맛에 맞고요. 결정적으로 제가 바쁘게 살게 되면서 먹는 것까지 그러면 몸이 축나더라고요. 아무리 바빠도 먹는 것만큼은 바쁘지 않았으면 하다 보니 그런 식성에 길들여진 것 같아요. 햄버거 같은 것보다는 비빔밥이나 찌개 좋아하고. 음료도 콜라, 사이다보다 식혜 맛있잖아요(웃음) 사실 ‘식혜 먹고 자빠져’는 제가 식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릴 적 가족들이랑 인디언 이름 짓기 놀이를 하다가 만들어진 거예요. 당시 형이 발목을 다쳐서 깁스 중이었는데 형은 ‘목발 짚고 일어나’였고(웃음) 그런 얘기였는데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유연석은 인터뷰가 진행된 날에도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식사를 했다고 했다. 연일 이어지는 스케줄 사이 때우는 끼니에 비빔밥이나 찌개처럼 제대로 된 식사가 가능한지 의문스럽다. 그런 반응을 캐치하고는 “웬만해서 인스턴트 먹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눈동자를 굴리며 말한다.

“촬영 팀에서 야식으로 햄버거를 준비했다거나 하면 그럴 때나 먹는 정도? 사실 요즘 도시락도 간편히 잘 나와요. 비빔밥으로 된 것도 있고, 한식 도시락이 정말 잘 돼 있거든요. 잠깐 시간 났을 때 도시락 먹으나 햄버거 먹으나 큰 시간 차이가 없어서 밥을 챙겨 먹죠. 진짜 안 되면 김밥이라도 먹어요. 쌀이 포인트냐고요? 그런 것도 있죠. 밥심에 살아야 되니까, 한국 사람은.”

   
유연석 ⓒ SSTV 고대현 기자

◆ “배우 유연석, 인간 안연석 모두 후회 없이 살고파”

2013년은 유연석에게 ‘응답하라 1994’의 인기 이외에도 뜻깊은 한해였다. 30대가 됐고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앞자리가 바뀌니 동안이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고 웃어 보인 그는 30대의 첫 해를 ‘응답하라 1994’와 칠봉이로 알차게 보낸 덕에 더욱 의미 있었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20대 때 했던 대로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여러 가지로. 나이가 들어서 뭐가 달라진다거나, ‘응답하라 1994’가 잘 됐다고 변화한다거나 하지 않고 20대 때 했던 방식 그대로 30대, 40대 그대로 살아나가면, 어떻게 보면 젊게 살아가는 걸수도 있고 사람이 변치 않고 초심을 이어나가는 측면에서도 중요할 것 같고요. 초등학교 때 배우가 돼야겠다 생각하고 20살 때 ‘올드보이’를 촬영한 후부터는 배우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왔고 그 과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20대 때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 않고 알차게 보냈기 때문에 했던 대로 지내면 발전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해요.”

‘올드보이’부터 ‘응답하라 1994’까지 자신이 걸어온 배우의 길 10년에 대해 유연석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많은 것을 경험하려고 노력했고 그만큼 경험을 쌓았으며 후회 없이 살아왔다. 20대의 마지막을 보낼 때도 30대, 40대가 돼서 돌이켰을 때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좌우명이기도 한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 열심히 달려온 20대는 스스로 평가하기에 “다행이었던 것 같다”는 긍정이 남았다.

‘응답하라 1994’를 만나기 전에도 유연석을 응원해온 팬들은 항상 존재했다. 아이돌 못지않은 대스타가 된 현재 인기를 전하자 손사래를 치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유연석의 오래된 팬들은 알 만한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던 진흙 속의 진주 유연석이 잘 되자 판이하게 뒤바뀐 판도에 기쁨만큼 아쉬움이 남을 만도 하다.

“그런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신 분들도 결국엔 응원해 주세요. ‘얘는 나만 알고 있어’라는 것이 깨질 순 있겠지만 제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다 아시기 때문에 ‘응답하라 1994’가 잘 됐을 때 시기나 우려보다 응원과 칭찬을 전해주신 분이 많아서 감사함이 커요.”

10년을 배우로 살아온 유연석은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로 살아갈 날을 앞두고 있다. 31살이 된 2014년, 안연석의 인생 3분의 1을 차지한 유연석이 채워 나갈 길은 멀고도 멀다. 유연석과 함께 걸어나갈 안연석 역시 마찬가지다. 안연석이 유연석일 때, 유연석은 안연석이지 않을 때가 없었다. 유연석과 안연석이 애초에 한 인물인 만큼 떼놓을 수 없는 인생의 동반자인 셈이다. 배우 유연석과 인간 안연석의 앞날을 묻자 깊은 고민 끝에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문을 연다.

“배우 유연석으로서는 특별한 것보다 지금까지처럼 변치 않고 했던 대로 배우 활동을 이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연인 안연석으로서는… 글쎄요. 배우라고 특별한 삶을 살기보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고 싶어요. ‘결혼을 아예 늦게 하겠다’거나 ‘나는 결혼 안 할 거야’, ‘난 사람들과 격리돼서 혼자만의 삶을 살 거야’ 이런 것 없이 인간 안연석도 보통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아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 결국 배우 유연석으로 연기 활동을 할 때 보통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불현듯 궁금해진다. 안연석은 왜 유연석이 되었을까. ‘연석’이라는 이름은 괜찮지만 ‘안연석’이라는 연음이 힘든 편이라 성만 바꿔보려고 찾던 중 어감이 부드럽고 이미지와 어울리는 ‘유연석’이 되었단다. 유연하고 릴렉스해야 하는 배우의 성향과 잘 맞아떨어지기도 했다고.

“처음엔 저도 어색했는데 지금은 그럴 때도 있어요. ‘나는 지금 안연석이야’ 하고 다 망각한 채 자연인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만끽하는 거예요. 또 유연석일 때는 배우로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줄 때라는 데 집중하죠. 괜찮은 것 같아요, 이름을 두 개 갖고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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