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설국열차’ 봉준호 답지 않다…“좋은 것 아냐?”
[SS인터뷰] ‘설국열차’ 봉준호 답지 않다…“좋은 것 아냐?”
  • 승인 2013.08.0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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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이현지 기자] 빙하기가 찾아온 세상은 꽁꽁 얼어있고 설국 17년 기차는 달리고 있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영화 ‘설국열차’ 안에서는. 기차에는 티켓의 값을 지불한 승객도, 무임승차를 한 승객도 있다. 17년을 달리는 동안 꼬리 칸에 타 있는 나는 햇빛도 보지 못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 꼬리 칸 승객들은 반란을 시작한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후 비참하게 살아온 꼬리 칸 사람들은 기차 앞으로 전진 할수록 조금 더 높은 계급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마주하게 된다.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하층민이 계급을 격파하기 위해 걷는다. 봉준호 감독은 “더 나은 삶은 위한 혁명, 폭동”이라고 설명했다.

“폭동을 일으키는 자와 그것에 맞서는 자의 이야기잖아요. 기차 속 꼬리 칸 사람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살고 있거든요.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니까 어떻게 보면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죠. 커티스는 혁명의 젊은 지도자이지만 체제의 유혹에 빠져요. 그러한 커티스의 모습이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의 현실적인 면이기도 하고요. 시스템을 부수거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준비가 돼 있는 거죠.”

체제에 넘어갈 준비가 돼 있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가 앞만 보고 직진 했다면 크로놀에 중독 된 열차의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분)는 ‘아무것도 아닌 척’을 하면서도 또 다른 문을 바라보는 인물이다.

“남궁민수는 향정신성 의약품에 집착해요. 하지만 비전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에는 눈빛이 바뀌거든요. 영화의 결말은 남궁민수에 의해 규정돼 있어요. 커티스의 여정은 내부로 수렴돼 슬픈 진실을 만나죠. 마지막 남궁민수가 자신의 바람을 말했을 때 커티스의 반응은 ‘미쳤어?’ 이런 반응이에요. 여전히 남궁민수를 바라보는 시야가 제한돼 있거든요. 기차에서 벗아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커티스의 한계에요. 그래서 커티스가 불쌍한 거죠. 미래, 밖을 보는 남궁민수와 달리 커티스는 자신만의 결말을 맞아요. 주변에서 이야이 구조가 독특하다고 했죠. 커티스는 슬픈 영웅이에요.”

   
봉준호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설국열차’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기차 하나하나의 칸은 ‘설국열차’ 속의 또 다른 장르다. 그리고 기차 칸마다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봉준호 감독은 그 이야기들을 커티스가 앞으로 나갈 때 마다 변화무쌍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곧 봉준호의 상상력이었다.

“예산이 많았다면 다양한 칸을 묘사했을 거 에요. 욕심은 끝도 없으니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야했거든요. 동물원 칸을 만들고 싶었지만 도살된 동물만 나왔어요. 새들도 날아 다니 게 하고 싶었어요. 아쿠아리움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 인줄 모르더라고요. 수족관 안의 물고기들은 내가 고른 거 에요. 정말 감쪽같이 잘했죠.”

모자는 머리에 쓰고, 신발은 발에 신어야 한다. 설국열차의 시스템은 체계적이다. 티켓을 정당하게 주고 구입한 가진 자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어느 계절이 돌아오면 초밥을 먹을 수도 있다. ‘특수 관광 열차’ 속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다. 봉준호 감독은 빙하기 ‘노아의 방주’로 보이는 이 열차를 백화점에 비유해 설명했다.

“백화점에 가면 고객들의 동선은 잘 손질이 돼있지만 직원들의 공간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거나 파이프 등이 그대로 노출돼 있잖아요. 설국열차 역시 식물 칸을 전후로 나뉘어져요. 그런 점에서 ‘물’이 식물 칸 옆에 있는 것은 합당한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또 험한 곳은 군인들이 쉬고 있을 거 에요. 회사원들이 정식 휴게실이 아니고 비상계단에서 쉬는 느낌이요. 설국열차 속은 신분, 계급에 따라 문이 열리고 닫힐 거 에요. 엔진도 아무나 가지 못하잖아요. 이동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했죠.”

   
봉준호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봉준호 감독이 신작을 공개할 때 마다 들리는 평가는 주로 “봉준호 답다” “봉준호 답지않다”로 엇갈린다. 글로벌 프로젝트, 대작이란 타이틀이 붙은 ‘설국열차’ 역시 많은 관심만큼 호평과 혹평이 나타났다. “왜 굳이 은유를 찾으려고 해?”라는 반문도 적지 않다.

“봉준호 답지 않다는 게 좋은 것 아닌가요? 봉준호스러움이 뭔지,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충동대로 느낌에 충실해서 촬영했어요. 그만큼 봉준호가 다양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해온 것들이 반복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 화면, 음악, 연기의 매력이 중요해요. 외관상 다르게 보일 거 에요. 외국배우들도 있고 설정도 독특하잖아요. 그런 설정 때문에 했어요. 달리는 기차안의 생존자, 송강호와 고아성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니까 새로울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이야기, 배경, 배우 등으로 ‘봉준호스러움’을 보여주지 않아도 봉준호 감독이 놓치지 않고 가져가고 싶은 부분에 대한 질문을 했다. 봉준호 감독은 “인간을 극한 상황에 몰아 넣는 버릇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도저히 잡아낼 수 없는 연쇄살인범을 무능한 형사가 추적했어요. 별 볼일 없는 가족들이 괴물을 쫓고, 엄마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형사가 된 것처럼 수사에 나죠. 꼬리 칸 사람들 역시 ‘맨손’으로 반란을 일으키고요. 힘의 충돌이 있고, 극단적인 상황이에요. 기차라는 공간인 만큼 숨어있으면서 기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힘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극한의 상황에 처해 있다면 몸부림치지 않을까요?”

   
봉준호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봉준호 감독도 영화를 찍을 때면 모니터 앞에 놓인 감독 의자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영화 만들 때 제일 힘든 것은 ‘차에서 내릴 때’란 스티븐 스필버그의 말을 인용했다. 세팅을 마치고 자신을 기다리는 현장을 생각하면 차에서 내리기도 싫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도망가고 싶은데도 계속 그 자리에 돌아온다.

“이상한 직업이에요. 아기자기한 상상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쓸 때는 재밌기도 하지만 힘들고 외로워요. 시나리오 작업이 끝나면 스태프들을 모으기 시작해요. 그때부터 어렵고, 지옥의 불구덩이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음향 작업인데 아이디어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있어요. 편집을 다 끝내고 완성된 그림을 가지고 음향으로 많은 것을 한다. 눈만 혹사시키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음향 효과를 넣잖아요. 결승점이 보이는 구나, 싶어요.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느낌이에요. 의자에서 뛰쳐나가고 싶어도 계속 변화하잖아요. 그래서 이 일을 계속 하는 거 같아요. 일부는 유지 되지만 작품은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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