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영화판' 두 감독-여배우 윤진서의 '유쾌한 수다' 한 판
[SS인터뷰] '영화판' 두 감독-여배우 윤진서의 '유쾌한 수다' 한 판
  • 승인 2013.01.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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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허철 감독, 윤진서, 정지영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유수경 기자] 국내 영화계의 현실을 되짚어보는 영화 '영화판'의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기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새파랗게 젊은 여배우가 노장 감독의 멱살을 잡다니.

그런데 좀 이상했다. 참으로 '예의 없는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두 사람의 모습은 귀엽고 유쾌해 보였다.

'영화판'을 연출한 허철 감독과 주연 배우(?)인 정지영 감독, 윤진서를 만났을 때 포스터 얘기를 꺼냈더니 모두 크게 웃었다. 그런데 이 멱살잡이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란다. '놀랄 노(字) 자'였다.

"현장 스틸 컷이죠. 윤진서 씨가 원래 편집본에서는 제작진과의 갈등이 나와요. 줄이면서 다 털어낸 거예요. 나랑 서먹했어요. 둘이 인터뷰 하러 다니는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 그런 상황이었죠. 하하."(정지영 감독)

윤진서와 정지영 감독은 실제로 '영화판' 촬영 도중 갈등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쫑파티 날 선술집에서 묵은 감정을 털어냈고, 이때 찍은 사진이 포스터로 만들어 진 것이란다.

   
정지영 감독의 이야기를 경청 중인 허철 감독과 윤진서 ⓒ SSTV 고대현 기자

◆ 세 사람의 '즐거웠던 첫 만남'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매우 돈독해진 그들의 첫 만남은 어땠을 지 궁금했다.

"처음에 감독님들 만나서 고려대학교가 있는 안암동에 가서 막걸리를 먹었어요. 고대 막사(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어서 먹는 문화)를 배우며 즐거웠죠. 고대 나온 친구들이 주위에 없었거든요. 감독님이 '이렇게 즐겁게 한 3일정도 나와서 얘기하면 된다' 하더라고요. 뛸 듯이 기뻤죠. 처음엔."(윤진서)

술을 마시며 편하게 감독들을 만나 궁금한 점을 묻고 서로 의견을 나누면 되는 줄 알았다는 윤진서. 사실 촬영에 들어가니까 그게 아니었다며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너무 공부할 게 많고 신경 써야 할 게 많았어요. 아는 게 없으니까 질문할 거도 없더라고요. '내가 영화인이었나?' 싶었어요. 학교에서 영화 역사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실제 그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때 한국 영화 상황은 어땠는지 알 길이 없었죠."(윤진서)

촬영이 시작되고 난 후 윤진서의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이 영화에서 본인의 역할은 뭘까 고민을 하는 시기도 있었단다.

"나는 뭘 하는 거예요? 하고 되묻게 되더라고요. 감독님이 정확하게 뭘 찍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요."(윤진서)

곁에 있던 허철 감독이 한마디 거든다. "그래서 정지영 감독님이랑 둘이 싸웠어요."

세 사람이 함께 큰소리로 웃었다.

   
정지영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 '영화판'이 탄생하기까지

'영화판'의 연출을 맡은 허철 감독은 지난 1992년 감독이 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학생도 가르치고 한국 영화제를 꾸준히 열었다. 그때 가져간 게 정우성이 출연한 '비트'와 정지영 감독의 '까' 등이었다고.

그가 영화제 운동을 할 때는 축제가 아니라 소수 문화 운동이었다. 항상 참석하는 이들은 한국에서 성공한 감독들이었다. 겉으로 볼 때는 한국 영화가 화려했고 정말 자랑스럽게 여겨졌단다.

"그런데 박찬욱 봉준호 정지영 감독님이 영화계의 실상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작현장에 가보니 정말 열악했어요. 영화계 일하는 분들이 극소수 빼고는 다 생활고를 안고 영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신기하고 놀라웠죠."(허철 감독)

어쩌면 그때 허철 감독은 '영화판'이라는 영화를 만들어낼 결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영화에는 많은 배우, 감독, 평론가 등 영화계 인사들이 출연한다.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접촉했고 일단 '오케이'(OK) 하는 순서대로 참여하게 됐단다.

매니지먼트사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을 통해 윤진서도 만나게 됐다. 임수정 이나영 배두나 등도 거론됐었지만 최종적으로 윤진서를 추천하더란다. 이유는 '지적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었다고.

영화는 총 200시간 동안 찍었고 110~115명 정도를 인터뷰 했다. 한 사람당 평균 세 시간이고 짧게는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기본적으로 이건 소중한 자료에요. 앞으로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죠. 책으로 치면 서문이에요. 이 책은 이런 식으로 갈 거라고 맛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2탄, 3탄이 나오게 되면 굉장히 구체적으로 갈 겁니다. 작가별 감독별 테마별 진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죠. 어마어마한 분량이 나올 거예요."(정지영 감독)

   
강단있는 배우 윤진서 ⓒ SSTV 고대현 기자

◆ 여배우 그리고 노출

'영화판'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접근하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여배우의 노출 문제다. 우리 사회는 아직 노출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연기를 위해서는 벗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여배우의 입장에서 노출은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시선이 결국 여배우를 소극적으로 만들죠. 그러면서 '우리나라 애들은 왜 못해?'라고 얘기해요. 결국은 선택이에요. 무시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회 구색에 맞게 스펙에 맞춘 여배우가 될 것인가. 멍청한 배우가 아니라면 영화에 (노출이) 필요한가 아닌가를 스스로 판단을 내릴 거고요."(윤진서)

영화 '올드보이'를 통해 연기를 위한 노출을 선보였던 그. 뜻하지 않게 연기보다도 노출로서 더욱 대중에게 깊게 각인된 바 있는 윤진서는 할 말이 많아보였다.

"스트레스는 당연히 있어요. 모든 배우들이 가지고 있을 거고요. (노출 연기를 한 뒤) '난 잘못했어'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연기 문제가 노출 문제로 얘기가 되니까 문제인 거죠. 저는 끌려 다니고 싶진 않아요. 제가 만약 남에게 맞춰서 살려고 했다면 배우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윤진서)

   
정지영 감독 ⓒ SSTV 고대현 기자

◆ '영진위 사태' 두 주인공의 재회

영화에서 또 한 가지 재밌는 지점은 정지영 감독과 원로배우 김지미의 만남이다. 지난 1998년, 김지미 이사장이 이끄는 영화인협회는 문성근, 명계남 등 젊은 영화인들의 구성체인 충무로포럼과 대립했다.

충무로포럼은 영화인회의로 이어졌고, 영화인협회와 영화인회의의 충돌에서 영화인회의가 우세하게 되면서 협회는 영향력을 거의 잃게 됐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 인선과 관련해 갈등이 심화되자 김지미는 모든 진흙탕을 뒤로하고 2000년 6월, LA로 떠났다. 많은 이들이 '영진위 사태'로 이 일을 기억하고 있다.

영화에서 만난 정지영 감독과 김지미는 결국 완벽하게 소통은 안됐다. 그래도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고민 있는 걸 얘기하고 나면 구체적인 해결은 아니더라도 꿍했던 게 풀리잖아요. 우린 과거에 대한 기억이 서로 달라요. 예를 들어 '그때 커피 마시지 않았냐' 하는데 상대방은 '언제 커피 마셨나, 홍차 마셨지' 하는 식이죠. 그래서 적당히 마무리 하자고 해서 얘기를 끝낸 거예요. 영화계 공적 문제로 다툰 이후에 (김지미와) 접촉이 없었어요."(정지영 감독)

촬영 당시 심경과 더불어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세 사람. 끝으로 영화를 연출한 허철 감독은 당부했다.

"결국은 구조적인 문제를 얘기하는 거죠. 한국영화가 발전했다고들 하는데 뭐가 문젠지 돌아보고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한국 영화를 다루는 이 영화를 보고 다른 감독들이 불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러 버전의 한국 영화에 대한 해석들이 나왔으면 좋겠고요. 그게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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