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이제훈 “저런 게 어딨냐고? 보이지않는 것 설득하는 게 배우”
[SS인터뷰] 이제훈 “저런 게 어딨냐고? 보이지않는 것 설득하는 게 배우”
  • 승인 2012.06.1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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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이현지 기자] 이제훈은 지난 3월 스크린에서 무스도 바를 줄 모르고, 손목 때리기 하나에 의미 부여하는 어리 숙한 대학생 승민이 였다. 같은 시간 브라운관에서는 사랑과 성공에 집착하는 재벌 2세 정재혁을 연기했다.

'GEUSS' 티셔츠 입은 승민이에서 언제나 수트 차림으로 운전기사를 대동하는 정이사까지. 그런데 정이사, 호감 가는 재벌이 아니다. 최근 이제훈을 만나 ‘패션왕’의 '찌질이' 정재혁을 위한 ‘변(辯)’을 들어봤다.

   
이제훈 ⓒ SSTV 고대현 기자

◆ ‘패션왕’ 속 정재혁은 성장했다

찌질하다. 재벌이 이렇게 찌질할 수가 없다. 회장인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도 모자라 얻어맞는다. 술에 취해 파티장에 찾아와 좋아하는 여자 이름을 부르다 뒤로 넘어지기도 한다. 최근 종영한 SBS ‘패션왕’ 속 정재혁은 재벌임에도 찌질했다. 어떤 일이든 척척해내는 재벌 2세는 없었다.

“정재혁은 멋있기 어려운 캐릭터예요. 남을 배려하거나 아끼는 모습이 없어 호감은 아닌 인물이죠. 20부작이기 때문에 정재혁이란 인물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열려있었어요. 상황에 대한 기복이 심해 그걸 표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어요. 정재혁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큰 갈등에 높여있고 선택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공감하게끔 연기하고 싶었는데 다들 잘 지켜봐 주셨는지 저도 궁금해요”

이제훈의 정재혁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에서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이제훈의 말대로 드라마 속에서 정재혁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거다. 하지만 일반적인 ‘성장’보다는 점점 더 집착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정재혁의 성장, 이제훈은 만족할까?

“1회에서 정재혁과 중후반의 정재혁은 굉장히 다를 거예요. 그래야 캐릭터가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고 저도 연기하는데 의의가 있거든요. 정재혁같은 캐릭터는 무너지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게 맞아요. 차갑고 이지적인 모습들이 강영걸과의 대립으로 나타나면서도 가영이를 통해서는 조금씩 무너지고 오로지 사랑만을 쫓아 올인하는 모습이 보여요. 무너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살아왔던 과정이 옳지만은 않았잖아요. 그래서 정재혁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재혁은 ‘발리에서 생긴 일’의 정재민과 닮았다. 정재혁과 정재민 모두 패션업계 재벌 2세로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여자를 사랑했다. 주먹 쥐고 우는 제 2의 조인성으로 남지 않아야 했다. 조인성이 아닌 이제훈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느냐’고 물었다.

“현실이 많이 반영된 거 같아요. 오냐오냐 자라서 핏줄 하나로 그룹을 이끌어 갈수 인물은 아니에요. 뭔가를 이뤄내야 하고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재벌 2세의 존재가치가 사라지는 거예요. 잘하고 싶은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사랑에 있어 갈등을 느끼는 정재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버지한테 인정받기 위해 꾸지람을 듣고 얻어맞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저런 사람이 어딨어?’라며 의문을 가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있을 수도 있거든요. 경험하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거예요. 배우는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이 보지 않은 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훈 ⓒ SSTV 고대현 기자

◆ '가능성에 대한 도박 옳았다' 입증 위해 쉼없이 노력

사람들은 ‘뜬’ 배우를 보면 흥행작 이전부터 배우를 알았다고 강조한다. 이제훈의 경우라면 영화 ‘고지전’이다. 하지만 ‘고지전’부터라면 늦었다. 이제훈은 훨씬 전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지난 2007년 ‘밤은 그들의 시간’이란 단편영화로 데뷔해 ‘친구사이’ ‘미쓰커뮤니케이션’ 등의 단편영화에 출연한데 이어 ‘파수꾼’으로 얼굴을 알렸다. 인터뷰 내내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제훈은 그동안 ‘연기’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

“마냥 연기가 하고 싶었고 연기를 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었어요. 작품 속 캐릭터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남겠지만 또 다른 캐릭터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싶어요. 한계가 보인다거나 나태해진 모습이 보인다면 연기를 시작안한 것만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연기는 제 인생에서 굉장히 큰 일부분이에요. 연기를 빼고서는 저를 설명할 수 없게 됐으니까요. 제게 시나리오를 주신 감독님들은 제 작은 가능성을 보신 거 같아요. 가능성에 대한 도박이 옳았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열심히 했어요.”

오롯이 연기가 하고 싶었던 이제훈. 알다시피 이제훈은 명문대 생명공학도였다. 2학년까지 다니다 연기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중퇴를 했다. 멀쩡히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하셨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연기에 인생을 걸어보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어요. 당시 스물다섯이었어요. 부모님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봐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첫 영화가 나왔을 때, 뮤지컬에 출연했을 때도 부모님을 초대했어요. 안심시켜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기다려주신 시간동안 배우로 알려지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니까 많이 좋아하세요.”

   
이제훈 ⓒ SSTV 고대현 기자

◆ 캐릭터는 배우 안에서 창조된 인물

일주일에 두 번 이제훈을 볼 수 있던 ‘패션왕’이 끝났다. 시청자들도 아쉽지만 이제훈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제훈의 모습이 없으니 멍하다고. 하지만 이제훈은 또 다른 누군가로 대중들을 찾을 계획이다. 좋은 작품을 골라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단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제훈은 올 하반기 영화 ‘점쟁이들’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독특한 장르의 영화라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될거라고 확신해요. ‘점쟁이들’이 제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흥행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어요. 캐릭터들이 다 재미있어요. 한편으로는 달라진 제 모습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도 돼요. 앞으로 많은 작품을 하겠지만 ‘한 사람이 연기를 했었구나’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캐릭터는 배우 안에서 창조된 인물인 것 같아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영화 ‘고지전’을 시작으로 ‘건축학 개론’ ‘패션왕’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아직은 자신이 어떤 배우인지 모르겠다는 이제훈. 그는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를 꿈꾼다.

“제가 출연한 작품이 궁금하고 제가 출연했을 때 선택에 의심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포스터에 나오면 ‘보러가자’란 말이 나올 수 있게요. 끊임없이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거잖아요. 쉽지 않은 일이니만큼 더 열심히 해야죠. 그동안 해온 것에 대한 영광을 누리기보다는 앞으로 제가 만들어 낼 작품의 과정을 중시하고 싶어요.”

‘연기’ 게슈탈트 붕괴현상이 올 때 쯤 물었다.

“이제훈에게 손목 때리기란?”

“............ (30초 경과) 친한 친구 사이에서 하는 거죠.”

이제훈 씨, 저랑 손목 때리기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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