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김연경 "정상에 있을 때 은퇴하고파…IOC선수위원 도전하고파"
'유퀴즈' 김연경 "정상에 있을 때 은퇴하고파…IOC선수위원 도전하고파"
  • 승인 2023.05.3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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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캡처
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캡처

'배구여제' 김연경이 IOC위원에 도전할 뜻을 밝혔다.

31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모든 걸 걸고' 특집으로 김연경이 출연했다.

최근 정규리그 MVP를 수상한 김연경은 "좋긴 좋았다. 상 넣을 데가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받았는데 상을 받는다는 의미가 고생한 것들을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또 만장일치로 되는 게 쉽지 않은데 좋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최근 은퇴를 언급했던 그는 최근 현역 연장을 결정했다. 김연경은 "'은퇴를 언제쯤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다는 얘기를 하다 보니 기자분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런 질문을 받아서 생각은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말이 커졌다. 은퇴 시기를 항상 생각하고 있긴 하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셀 수 없는 기록과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는 런던 올림픽 MVP을 스스로도 놀란 기록이라고 말했다. 

김연경은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고 4등으로 마무리했는데 4위에서 MVP가 나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때 당시에는 크게 생각 안 했는데 올림픽을 몇 번 나가고 보니까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배구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큰언니가 먼저 배구를 하고 있었고 언니 배구하는 걸 보러 놀러 갔다. 놀다 보니 재미있어서 엄마한테 하고 싶다고 했다"며 "그때는 키가 별로 크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148cm,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165cm였다. 한 포지션만 하면 경기에 못 들어가니까 '땜빵' 같이 이것저것했다. 포지션이 따로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키가 너무 안 크니까 공격보다는 수비 쪽으로 많이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장이 큰 선수들이 주목을 받고 저는 배제돼서 현실을 직시했지만 뛰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많이 안 커서 다른 스포츠를 해야 되나 싶었다. 스포츠는 나에게 맞았는데 종목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서도 저를 원하는 학교가 없었다. 제가 실력은 좋지 않지만 뛸 수 있는 학교에 갈지, 팀이 명문이지만 시합을 못 뛰는 곳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김수지의 부친인 김동열 감독의 조언에 따라 명문 고등학교에 가게 됐다는 김연경은 "무조건 버티면 된다고 하는데 버텨도, 버텨도 못 뛰니까, 나한테 그 자리가 오지 않으니까 힘들었다. 실력보다도 신체 조건으로 제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실력적으로 더 좋은 거 같은데 신체 조건이 좋은 선수가 경기에 뛰고 있을 때면 '내가 더 잘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운동이 너무 좋아서, 배구가 너무 좋아서 힘든 시기를 그렇게 버텼던 거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김연경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20cm가 자랐다. 어느새 올려다봤던 김수지와도 눈높이를 맞추게 됐고 고등학교 3학년 선수의 빈 자리를 대신해 경기에 출전하게 됐다.

수비수에서 공격수가 된 김연경은 전천후 선수가 됐다. 막내로 프로팀에 입단한 그는 "쉽지 않았다. 규율도 심할 때여서 많이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며 "선배들은 세탁기를 쓰고 막내들은 손빨래를 했다. 언니들이 시킨 게 아니라 팀 자체에 그런 게 있었다. 연봉 협상할 때 배구하러 왔는지 빨래하러 왔는지 모르겠다고 얘기를 했다. 다행히 한 말을 구단이 받아들여줘서 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본격적으로 신기록을 써내려 가며 국내 리그를 평정한 김연경은 2009년 21세 나이에 일본 리그에 진출했다. 일본 진출 2년 뒤 전 세계 최고리그인 튀르키예에서 뛰게 됐다.

김연경은 "그 팀에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쟁쟁한 선수들이랑 같은 팀으로 뛰니까 너무 신기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고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었다"며 "처음에 갔을 땐 영어를 전혀 못해서 단어로만 말했다. 안 하면 안 되니까 호흡을 하려고 계속 말을 했다. 당시 브라질 대표팀 주장 선수가 처음으로 해외에 온 선수였다. 저랑 그 선수는 둘 다 영어를 못하는데 둘이 친해졌다. 한국어, 포르투갈어, 튀르키예어를 하면서 잘지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대화하는지 모르는데 맨날 붙어 다녔다"고 해 웃음을 안겼다.

물론 해외리그에서 뛴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않았다. 김연경은 "텃세 있었다. 토스를 안 해주고 제 탓을 했다.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열심히 항변했다"며 "실력으로 보여줬다. 나중에는 다들 인정해주더라. 튀르키예에서 뛰면서 전 세계 남녀 배구 선수 통틀어 연봉 1위를 기록했다. 나쁘지 않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그는 백지수표를 받은 경험도 털어놨다. 김연경은 "중국 리그에서 1년을 뛰고 나서 튀르키예로 다시 가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중국팀에서 나를 잡았다. 백지수표를 주면서 원하는 액수를 쓰라더라. 가끔 한 번씩 얘기한다. 그때 내가 백지수표에 금액 썼으면 어땠을까 하긴 하는데 중국보다는 조금 더 큰 리그에 가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소신을 밝혔다.

백지수표에 쓸 수 있는 금액에 대해 궁금해하는 유재석에게 "허용되는 범위가 컸다. OO억 이상"이라고 귓속말로 말해 놀라게 했다

김연경도 슬럼프가 있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하다 보니까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혼자 지낸다는 거 자체가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비인기 종목으로 여겨졌을 당시 느꼈던 비애도 밝혔다. 그는 "박지성 선수는 선발로 경기에 나가기만 해도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저는 선발에 나가서도 최고 득점을 하고 MVP를 받았는데도 한국에서 중계 자체도 안 했다. 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인데 왜 나는 몰라주고 관심이 없을까 그거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태극마크를 달고 16년 동안 4번의 올림픽과 4번의 아시안게임을 뛰었고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2020년 도쿄올림픽 4강이라는 역사를 썼다.

부상을 견디고 참가했던 도쿄올림픽을 떠올린 그는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나가고 싶었고 차곡차곡 우리가 싸워서 올라가는 것들이 행복하고 좋았다. 참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IOC선수위원에 도전할 뜻도 밝혔다. 그는 "원래부터 유소년에 관심이 많았다"며 재단 설립을 긍정하고는 "IOC 선수위원도 도전할 생각을 하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 대표가 돼야하고 파리올림픽에 가서 선수들에게 어필을 하고 홍보를 해서 뽑혀야한다. 많은 홍보와 응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뉴스인사이드 강하루 기자 news@newsinsid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