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범죄와의 전쟁' 김혜은, "언젠가 '여자 최민식'으로 불리고 싶어요"
[SS인터뷰] '범죄와의 전쟁' 김혜은, "언젠가 '여자 최민식'으로 불리고 싶어요"
  • 승인 2012.02.0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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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최민식'을 꿈꾼다는 김혜은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유수경 기자] "어디 식순이 앞에서 행주 짜노?"

경상도 사투리에 생소한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하다. 직역하자면 '어디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나'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렇듯 쉽게 알아듣기도 힘든 걸출한 경상도식 욕설을 서슴없이 내 뱉는 김혜은은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감독 윤종빈, 이하 범죄와의 전쟁) 속에서 기센 나이트클럽 여사장 그 자체다.

최민식, 하정우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범죄와의 전쟁'은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1990년대를 배경으로 부산의 넘버원이 되고자 하는 나쁜 놈들이 벌이는 한판 승부를 통쾌하게 그린 영화다.

◆영화 속에서 '나'를 버리다

서울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8년간 MBC 간판 기상캐스터로 활약한 김혜은은 이러한 그의 이력이 무색할 만큼 이번 영화에서 자신을 온전히 버렸다. 산전수전 다 겪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여사장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번뜩이는 눈빛과 악에 받친 욕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대선배 최민식을 향해 재떨이를 집어들고 달려드는 김혜은에게서 "갑작스런 비를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라"고 상냥한 조언을 하던 기상캐스터의 모습은 온데 간데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사실 저는 제 안에 섹시코드가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알게 됐어요. 제 스스로 끼가 정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엔 너무나 큰 두려움을 느꼈죠. 남자배우들 앞에서 '난 하나도 섹시하지 않다'면서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무(無)에서 시작한 여사장 역할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큰 것을 얻게 된 기회이기도 했죠."

   
'여자 최민식'을 꿈꾼다는 김혜은 ⓒ SSTV 고대현 기자

◆실제 '여사장'과의 보석같은 만남

음악을 공부하던 '얌전한 아이' 김혜은은 보도국에 들어가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삶이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8년을 살고 나니 사회와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이번 여사장 연기를 위해 역할과 닮아있는 현실의 인물을 찾아나서야 했다. 실제 인물과의 진실된 소통을 통해 김혜은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많은 것을 얻었다.

"사실 영화에는 여사장의 삶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지인을 통해 제일 비슷한 실물의 아는 언니를 만났죠. 담배나 부끄러운 부분까지도 다 그 언니에게서 배웠습니다. 4~5개월 동안 실제로 속담배를 폈어요. 연기는 실제여야 하고 여사장이 입담배를 피우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요. 제가 극중 남자들 앞에서 다리 벌리는 장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그 언니는 남자들이 더러운 짓을 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벗고 몸에다 술을 붓는다고 하더라고요. '나 건드리지마'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거죠. 육체를 초월해서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그런 삶이 한편으로는 멋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김혜은은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전해준 실제 여사장과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시사회에도 초대해 영화가 끝난 후 "언니의 삶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그는 "아니다. 너는 내가 안 갖고 있는 귀여움까지 갖고 있더라. 영화 보면서 너 때문에 행복했다"는 답장을 해왔다. 김혜은의 마음이 실로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어떤 기사를 보니 이 영화가 낮은 자들의 삶을 그렸다고 하던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집중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훌륭한 언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 영화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소중한 인연들과 진실된 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자 최민식'을 꿈꾼다는 김혜은 ⓒ SSTV 고대현 기자

◆'롤모델' 최민식과의 환상적인 호흡

'소통'을 최고의 가치로 꼽은 김혜은은 영화 속에서 대선배 최민식과 격투신에 이어 베드신까지 호흡을 맞춰야 했기에 다소 부담스럽고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최민식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너무나 인간적이고 호탕한 성격 덕분에 더 좋은 연기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됐다고.

"사실 베드신에서 뒷부분에 딥키스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이 돼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NG는 많이 안 났지만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느낌으로 찍어야 했기 때문에 여러 번 촬영을 했죠. 특히 때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최대한 NG를 내지 않고 한 방에 가려고 노력했어요. 네 번 정도 시도 끝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습니다. 순조롭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최민식 씨의 힘이 컸습니다."

자신의 꿈이 '여자 최민식'이라고 밝힌 김혜은은 1973년 생으로 남편과의 사이에서 여섯 살배기 딸까지 두고 있다. 그는 동안의 미모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 자신의 얼굴에 콤플렉스가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배우는 얼굴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느끼게 됐다고.

"나이가 들면 결코 얼굴이 중요한 게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한 때는 큰돈을 들여 관리도 받았었고 원래 볼 살이 많았던 터라 제 인생을 볼 살을 빼는데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웃음) 그런데 막상 나이가 들고 나니까 미모로는 더 이상 승부가 안 되는 것을 느끼게 됐죠. 물론 어느 정도의 관리는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는 그런 면에서 참 공정한 것 같아요. 결국은 아무리 젊고 예쁘다 해도 연기력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철퇴 당하게 되니까요."

   
'여자 최민식'을 꿈꾼다는 김혜은 ⓒ SSTV 고대현 기자

◆'배우'에 대한 열렬한 사랑

김혜은이 배우라는 직업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유는 단지 공정함 때문만은 아니다. 연기를 시작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는 입이 닳도록 배우에 대한 예찬론을 펼쳤다.

"배우라는 직업은 참으로 신성하고 겸허한 것 같습니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혹은 지위가 높을수록 더 두껍게 자신만의 갑옷을 입으려고 하잖아요. 예를 들어 아나운서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지적인 행세를 할 수 있고 정치인 역시 허세를 부릴 수가 있어요. 하지만 연기자는 계속해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배우는 천민도 되어야 하고 왕도 되어야 하니까요. 그렇기에 인생의 세파를 겪어야 하고 실제로 그 삶을 살아야합니다. 가식을 떨고 거짓말을 하면서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다 숨기면 관객들과 결코 소통할 수 없거든요."

큰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낸 김혜은. 그는 비록 조금 늦은 나이에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지만 그래서 더욱 많은 것을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기자가 만나본 김혜은은 새침한 인상과는 달리 누구보다도 진솔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확실한 변신을 선보인 그의 바램처럼 관객들이 언젠가 김혜은의 이름 앞에 '여자 최민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날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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