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고 정원섭의 아들 "아버지를 감옥에..용서 안돼"
'꼬꼬무'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고 정원섭의 아들 "아버지를 감옥에..용서 안돼"
  • 승인 2021.04.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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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사진=꼬꼬무 방송 캡쳐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제 주인공 고 정원섭이 국가 배상을 받지 못한 이유는 단 열흘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경찰의 고문으로 인해 거짓자백을 한 후 15년 2개월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 정원섭의 이야기가 29일 방송된 SBS 예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이하 '꼬꼬무2') 8회에서 소개됐다. 

해당 방송은 '조작된 살인의 밤, 연필과 빗 그리고 야간비행'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제 주인공 정원섭 씨의 억울한 사연을 다뤘다.

1972년 당시 관내 파출소장의 초등학생 딸 윤소미(가명) 양이 논둑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자 경찰은 동네 웬만한 남자들을 다 조사했다 이 때 첫 번째로 연행된, 당시 동네에서 만화방을 운영하던 정원섭은 곧 무사히 풀려났으나 당시 내무부장관이던 김현옥이 단 열흘이라는 시한부 검거령을 내리며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후 경찰은 "재호(정원섭 씨의 아들) 아빠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며 정원섭을 다시 체포해갔고 이틀 뒤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 범인은 만화가게 주인 정원섭으로 밝혀졌다"며 대대적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그 증인으로 정원섭 씨의 아내 출산을 도우며 정원섭의 속옷 빨래를 했다는 옆집 아줌마와 만화가게 두 미성년자 여종업원, 그리고 정원섭의 어린 아들 재호를 제시했다.

옆집 아줌마가 정원섭의 속옷에서 수상한 핏자국을 발견했으며, 두 여종업원이 내내 정원섭 씨에게 성폭행을 당해왔고 재호가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증거품 하늘색 연필이 아버지가 자주 빌려 쓰던 자신의 연필이라고 밝혔다고 경찰은 주장했다. 심지어 정원섭조차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며 모든 수사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원섭이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진실들이 밝혀졌다. 정원섭은 재판 때부터 자신은 당일 윤소미 양을 본 적도, 그 누구를 강간한 적도 없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이어 정원섭은 한 출소 재소자에게 자신이 몰래 작성한 수감일기를 비밀리에 부탁, 아내에게 전했는데. 그 안엔 경찰 조사 동안 경찰로부터 가혹한 고문을 당해 거짓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후 정원섭은 모범수를 목표로 감옥에서 재소자에게 음악, 한글을 가르치며 열심히 노력했고 결국 성탄절 특사로 석방됐다.

그러나 이미 15년 2개월이라는 세월이 억울하게 흐른 뒤였고 이후 그는 암 투병 중에도 23년 간 수기 사건 기록을 보관해 온 자신의 유일한 편 이범렬 변호사와, 1999년 도움의 손길을 내민 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들에 의하면 당시 경찰은 열흘 내에 범인을 체포하라는 시한부 검거령에 쫓겨 증거를 조작했을 뿐만 아니라 증인들을 협박해 거짓 증언들도 받아냈다.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아들 재호가 봤다는 하늘색 연필 역시 경찰이 조작한 것으로, 원래 현장에 떨어져 있던 것은 노란색 몽당 연필이었다. 이제 성인이 된 재호는 "세상에 자기 아버지를 감옥 보내는데 일등공신으로 만들어준 이 나라. 나는 용서가 안 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재심을 맡은 재판부는 30년 만에 진술을 번복한 증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원섭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정원섭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최후의 도움을 요청했고, 2008년 무죄를 선고 받았다.

힘들게 받은 무죄였지만 그를 고문하고 증거를 조작해 강간살인마로 만든 경찰들은 7년의 공소시효가 끝난 탓에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정원섭이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 보상금(억울한 옥살이의 대가) 9억 5천만 원은 전부 그동안 진 빚을 갚는데 쓰였으며 이마저도 국가가 돈이 없다며 4번의 분할 지급을 한 상황이었다.

이후 정원섭은 본인과 가족들이 받은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다.

이에 1심에서는 26억 원 배상 판결이 났지만, 그 다음. 항소심에서는 형사 소송 확정일로부터 6개월 안에 소송을 걸었어야 했는데 10일이 지났기 때문에 배상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판결이 났다.

1심 진행 당시까지만 해도 3년 이내였던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갑자기 6개월로 줄었다는 설명은 모두에게 황당함을 안겼다.

결국 정원섭은 끝내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한 채 뇌출혈로 쓰러졌고 치매 탓에 점점 기억을 잃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무죄를 받았을 때의 기분, 고문에 대한 기억만큼은 또렷하게 남아있었고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답해 눈물을 자아냈다. 

한편 정원섭은 고문 후유증으로 지병을 앓던 중 향년 87세로 지난 3월 28일 별세했다. 

[뉴스인사이드 박유진 기자 news@newsinsid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