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황제'로 불렸던 정치깡패, 임화수...4.19혁명으로 어떻게 '몰락'?
'연예계 황제'로 불렸던 정치깡패, 임화수...4.19혁명으로 어떻게 '몰락'?
  • 승인 2020.04.1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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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임화수로 분한 최준용/ 사진='야인시대' 캡처.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임화수로 분한 최준용/ 사진='야인시대' 캡처.

 

4.19혁명 기념일을 맞이해 이승만 정권 시절 정치깡패로 유명했던 임화수가 화제다. 그는 제1공화국 시절에 여러 정치인의 후원을 받으며, 연예계 황제로 군림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몰락했다. 이후 박정희 신군부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임화수는 당시 연예인들을 선거 및 정치 행사에 동원시키며 정권과 여당인 자유당을 선전하고 표심을 얻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는 자유당 정권 말기에 이승만의 '대통령 4선 성공'과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해 '반공예술인단'을 조직, 연예인들을 자유당 선거운동에 동원했다.

임화수의 일화는 '야인시대' 등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영화 제작에 관여하며 연예인들을 자주 폭행하고 괴롭히곤 했다. 그가 1959년 11월, '합죽이'라는 별명을 가진 배우 김희갑을 폭행해 갈비뼈를 세 군데나 부러뜨린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그는 또 권력과의 유착을 위해 연예인들을 '성상납'에 이용하는 부정적 선례를 처음 만든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배우들이 정치 깡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참한 현실을 당시 신문들은 ‘권력의 폭력 앞에 떠는 영화계’라는 머리 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임화수가 곽영주 경무대 경호실장의 주선으로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다짜고짜 큰절을 올리면서 "마치 돌아가신 아버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각하, 아버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라고 눈물을 펑펑 쏟자 이 대통령이 임화수를 아들이라면서 총애했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임화수가 저지른 유명한 정치 테러는 1960년 4월 18일에 일어난 '고려대학교 학생 습격 사건'이다. 그는 다음날인 4월 19일에 발생한 4·19 혁명 이후 정치 테러 혐의로 체포돼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61년 5월 16일에 발생한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부의 '연예계 정화사업' 과정에서 척결 대상으로 꼽혀 체포됐다. 이후 재판에 회부돼 사형 선고를 받았고, 같은 해 12월 21일에 교수형이 집행됐다. 그는 당시 정치 깡패로 유명했던 이정재,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업고 온갖 비리를 저지른 경무대 경호실장 곽영주와 함께 사형을 당했다.

[뉴스인사이드 민가영 기자 news@newsinsid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