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 ‘바람바람바람’, ‘공작’, ‘목격자’, ‘마약왕’ 등 최근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가며 관객을 만난 이성민이 깊은 감정의 늪에 빠졌다. 이정호 감독과의 세 번째 작품인 ‘비스트’에서 이성민은 희대의 살인마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한 형사 한수 역을 맡았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해온 이성민은 단순히 범인을 쫓는 형사물이 아닌 인물들의 대립과 충돌에서 오는 서스펜스에 매력을 느꼈고 이정호 감독을 향한 신뢰를 바탕으로 ‘비스트’ 출연을 결심했다. 

“기존 영화와 다르다는 생각은 크게 안했어요. 새로운 대본이고 캐릭터들이 워낙 돋보여서 끌렸고 무엇보다 이정호 감독이 연출한다는 것에 설렘도 있었어요. 범인을 추격하는 이야기와는 메시지가 다르니까 그런 점에서 기존 형사물과는 다르게 다가왔던 거 같아요. 감독님 작품은 ‘베스트셀러’에 잠깐 나왔고, ‘방황하는 칼날’에서 감독의 진중함, 익숙함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도 됐어요.”

관객이 믿고 보는 연기력을 갖춘 이성민이지만 한수라는 인물을 구현하는 건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 촬영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토로한 이성민은 후반부 클라이맥스 장면에선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까지 했다.

“원래 연기하면서 캐릭터에 잘 빠져나오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한수라는 캐릭터가 감정적으로 깊게 빠져있는 인물이라 촬영이 없을 때도 힘들었어요. 촬영할 때도 모니터 뒤에서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런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아쉽고 미안해요. 역할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게 잘 없는 경우인데 이번에는 많이 받았어요. 캐릭터 영향 같아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쉴 틈 없이 캐릭터를 괴롭히고 몰아친다. 라이벌 관계인 한수와 민태(유재명 분)가 그토록 서로를 경계하게 된 전사도 설명하지 않는다. 이성민과 유재명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눈빛만으로 그들의 관계를 관객에게 전달해야 했다. 이성민은 “유재명과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딱 시작하면 느껴지는 게 있다. 그게 너무 짜릿했다. 각자 뭘 해야 하는지 알았던 거 같다”고 유재명과 호흡을 맞춘 소감을 밝혔다.

“영화에는 생략됐는데 원래 시나리오에는 한수가 범죄를 대하는 생각과 행동에 관한 내용이 나와요. 한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있어 아쉬운 지점이죠. 아내에 대한 상황도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갔으면 좀 더 친절했겠지만 지금과는 다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비스트’에서 한수는 갈수록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다. 영화는 한수를 비롯해 각 인물들의 선택이 불러오는 상황들을 통해 누가 진짜 괴물인지, 우리 안에 숨어있는 괴물은 무엇인지 묻는다.

“감독님이 ‘방황하는 칼날’ 때도 화두를 던졌어요. 지금도 소년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평소에도 그런 ‘양면’에 관해 즐겨 말해요. 이번 영화도 여러 인물에게 다양한 입장을 열어두며 화두를 던졌죠. 누구나 속에 짐승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게 인간 본질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걸 건드린 것 같아요. 누가 진짜 괴물인지는 영화 보시면 알겠지만 다양한 입장이 있겠죠.”

지난해 이성민은 ‘공작’으로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배우 이성민에게 2018년은 대중과 평단, 자신을 모두 만족시킨 유의미한 한해였다. 그는 지난 시간들을 되짚으며 “지금이 저에게 어떤 시기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 오십 둘인데 솔직히 말씀드리며 인생의 앞날이 많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며 “배우로서 어쨌든 이성민이라는 사람의 흔적을 남기고 갈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년에 ‘공작’으로 수상하면서 꿈꾼 일을 해낸 시기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수많은 배우와 제작진을 만나 캐릭터에 매진하고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긴 여정을 거쳐 이성민이 생각하는 배우의 매력은 외롭지 않은 직업이라는 점이다. 배우가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은 단순히 캐릭터를 분석하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치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참 다행인 것 같아요. 요즘은 상대 배우, 동료, 감독, 스태프와 협업할 수 있는 직업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좋은 캐릭터가 있어야 연기가 빛나는 거고, 좋은 캐릭터는 좋은 시나리오 안에 있는 거죠. 그리고 좋은 연출자가 있어야 발현되는 거고.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좋은 조력자들의 아이디어와 의견으로 만들어지는 거라서 요즘은 배우란 외롭지 않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태어나면 배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전부터 말해 온 이성민이지만 속내를 들어보면 누구보다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다. 결국 그는 “그냥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두진 못할 것 같다”며 마지막까지 연기에 대한 애정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솔직히 돈 때문에 배우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해요. 그렇다고 그만두진 못할 것 같아요. 스무 살에 연극하고 군대 빼고는 연기를 안 한 적이 없어요. 다른 배우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연기할 때가 아프지도 않은 것 같아요. 적당한 긴장감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 ‘더킹 투하츠’를 찍을 때 이순재 선생님과 중국으로 촬영 갔는데 당시 선생님이 드라마와 연극을 동시에 했어요. 계속 연극 대본을 외우고 계시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선생님의 건강 비결이 저거구나’ 싶었어요. 끊임없이 작업하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저도 언젠가 체력이 안 되거나 연기가 안 돼서 쓰임이 없게 될 수도 있는데 그때는 처음 연극을 시작했던 고향 극단에 가서 놀고 싶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