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증인’ 정우성 “좋은 소통은 표현보다 수용”
[NI인터뷰] ‘증인’ 정우성 “좋은 소통은 표현보다 수용”
  • 승인 2019.02.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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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더 킹’, ‘강철비’, ‘인랑’ 등 최근 남자의 향이 물씬 풍기는 강렬한 작품들로 관객들을 만나온 정우성이 오랜만에 무게를 덜어낸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돌아왔다. 

‘증인’은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정우성 분)가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 분)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정우성이 연기한 변호사 순호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이 가서 정하게 됐어요. 상대적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숨 막히는 캐릭터를 해서인지 오히려 해가 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증인’을 읽고는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치유를 받았다고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 일상적인 캐릭터의 교감 안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을 덮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어요.”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를 받았다는 그는 극중 순호가 지우에게 그러했듯 마음을 열고 캐릭터에 접근하고 현장을 대했다. 일상의 감정을 표현하는 만큼 캐릭터성이 강한 인물보다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고, 감정에 도취돼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항상 경계했다. 특히 그는 각 캐릭터와의 교감에 집중했다. 실제로는 무뚝뚝한 아들이라 고백한 정우성은 “순호와 순호 아버지의 장면이 어쩌면 아들로서 아버지와 해보고 싶었던 시간들을 대리만족한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장면일 수밖에 없다”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의 교감, 의도치 않은 감정의 표출이 굉장히 풍성하잖아요. 우리는 일상 안에서 드러나는 감정이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늘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서 버릇처럼 일상의 특별함, 일상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사소하지만 특별한 감정을 연기할 수 있는 시간이 행복했어요. 지우와의 교감도 그렇고 아버지(박근형 분)와는 비슷한 부분도 있었고 실제 제가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갖지 못한 친근함을 대리만족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박근형 선배님이 하신다고 해서 반가웠어요. 현장에서 뵈면 정말 넘치는 에너지로 작업에 임하세요. 그리고 선배라고 위해주는 것도 불편해하시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영화의 큰 줄기는 순호가 자폐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지우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과정에 있다. 정우성은 한참 어린 후배인 김향기에 대해서도 선배의 시선으로 보기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고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다가가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어떤 배우인지 사람인지 가만히 보고 느끼려고 했어요. 향기 씨가 말수가 적은 사람이거든요. 쓸데없이 말을 붙이려고 하지 않고 가만히 함께 앉아 있어도 교감이 될 수 있으니 옆자리가 비어있으면 괜히 앉아있고 사소하게 농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그러기도 했어요. 향기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논의보다는 어떻게 지우를 바라보고 표현하는지를 바라봤어요. 자신을 표현하려는 것보다 상대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게 더 좋은 방법의 소통 같아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배우의 길을 걸으며 일찍이 편견의 대상이 되어온 그는 소통을 위해서는 각자의 다름을 이해하고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영화 속에서 그려내는 소통에 과정에 공감한 정우성은 “이한 감독의 기본 성향이 그러하다. 앞으로도 무거운 주제일 수 있지만 무겁게 보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하는 작업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어떤 계층이나 집단을 규정지으려 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경력이 많고 나이가 많다는 게 절대적인 삶의 지혜나 이해의 축적이 될 수 없어요. 각자 다른 시간대의 삶에서 각자 다른 인생을 살고 경험이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어린 친구들도 그 친구의 온전한 경험이 있고 이해와 갈등은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조언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증인’에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려는 순호에게 지우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 짧은 한마디의 물음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좋은 배우이자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목소리를 낸 정우성은 끝으로 배우로서의 가져야할 책임의식에 관해 언급했다.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 배우의 파급력에 대한 인지는 분명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자주 했던 이야기인데 ‘비트’는 저에게 많은 걸 준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걸 알려준 작품이에요. ‘똥개’라는 영화를 밀양의 한 고등학교에서 촬영하는데 잠시 담배를 피우려고 밖에 나와서 불을 붙이는데 어두운 구석에서 학생 무리들이 ‘오, 멋있어’라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담배를 어디에 감춰야할지 모르겠고 손이 민망해졌어요. 직업이 지닌 의도치 않은 파급력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향기양의 생각이 멋진 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폐아를 연기하는데 있어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나 그 가족들이 이 영화를 보고 오히려 상처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고. 그 말을 할 때 멋지고 큰 배우처럼 느껴졌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