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박훈,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 배우
[NI인터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박훈,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 배우
  • 승인 2019.02.0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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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운이죠.”

십 여 년 간 무대에서 입지를 다지던 박훈이 브라운관에 발을 내딛은 지 3년. 그는 순식간에 주연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우뚝 섰다. KBS2 ‘맨몸의 소방관’에 이어 이번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도 차형석 역으로 주연 자리에 이름을 올린 박훈은 한 번도 도전해본 적 없는 새로운 장르임에도 어려움 없이 극에 녹아들었다. 숱한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속도는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개념이나 기준점에서 그것보다 느리거나 빠르다고 평가하는 건데, 일반적인 속도에서 봤을 때 저는 빠른 속도긴 하죠. 제 능력 보다는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 활동을 하는 것은 바닷가에서 빈 페트병을 던지는 것과 같아요. 분명 뭍으로 밀려나겠지만, 그래도 던지는 거죠. 그러다 운이 좋아서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게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냥 거기에 휩쓸려서 가는 것 같아요. 다만 배우가 하지 말아야할 것은, 뭍으로 밀려나온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되는 거죠. 계속 던져야 해요.”

그런 그에게 있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도전이었다. 게임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없었던 만큼 걱정이 많았던 박훈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것은, 온전히 ‘신뢰’ 때문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게임이라는 것을 통해 발전 시켜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아무나 할 수 없고,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지 않나. 해볼 수 있는 작업이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라며 “더군다나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 구현하는 작가님과 가장 현실적인 것 표현했던 감독님의 시너지가 궁금했고, 현빈씨와 박신혜씨에 대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함께하게 됐다”라고 출연 계기를 설명했다.

“현빈씨와 박신혜씨가 선배고, 훨씬 드라마 경험이 많다 보니 가감 없이 물어봤어요. 많이 배웠죠. 그 외에도 김용림 선생님, 김의성 선배님, 이승준 선배님, 박진우 선배님까지 선배님들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그를 통해 배우는 것이 굉장히 많았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김용림 선생님이 첫 촬영 하실 때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큰 대작에서 연기하는 게 처음이라 설레고 떨린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반성 많이 했죠. ‘내가 이 작품을 너무 내가 하는 한 작품으로만 생각한 게 아닐까? 수 십 년 연기를 한 사람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감히 나 따위가  그냥 차기작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았나’싶더라고요. 이레 배우는 첫 인사를 하면서 울었어요. 너무 좋아서. 인상 깊게 남았죠. ‘나는 내가 뭐라고 건방지게’ ‘정신 차려야겠다’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현장을 찾아다니고, 응원도 하고, 제가 해야 하는 역할들을 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극중 박훈이 맡은 차형석은 주인공 유진우(현빈 분)의 친구이자 공동 창업자. 공학박사로서 IT 기업 ‘뉴워드’의 대표를 도맡고 있는 차형석은 유진우를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과 다양한 갈등의 양상을 띠며 극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때문에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을 터. 실제로도 박훈은 “사연이 굉장히 짙다 보니 초반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너무 많았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복잡하잖아요. 친한 친구의 처와 결혼하게 되고, 아버지는 내가 아닌 친구 진우를 인정하고. 아버지한테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이라는, 일련의 과정들이 엄청 세요. 드라마 자체도 짙어서 어떻게 표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중에서도 마치 겁이 많은 강아지가 제일 크게 짖는 것처럼 질감을 거칠게 하려고 했죠. 세주(찬열 분)한테도 화내고 하는 것들이 사실 겁이 제일 많지 않았나 싶어요. 아버지한테 뺨맞고 청혼하는 게 비상식적인데, 형석이는 그렇게 아버지한테 상처를 받아야만 겨우 용기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가장 겁이 많고 절박한 상황에서 수진이(이시원 분)를 잡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진우보다 늦게 잡은 것도 그 때문 인거죠. 이런 것들을 함축하면서 연기하려고 애썼어요.”

특히 차형석은 극 초반에 게임 도중 죽음을 맞이한 이후, 그 당시 모습 그대로 게임 캐릭터로서 등장해 주인공을 거듭 위험에 빠트렸다. 이와 관련해 그는 “나중에 시청자분들이 걱정하시는 걸 보고 아직 세상에 정의 살아있구나 생각했다. 시청자분들의 감정 변화를 보는 게 재밌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에는 대사 없어서 땡큐겠다고 하더니, 그게 누적 되니까 걱정 됐나 봐요. 어느 순간 힘들겠다는 걱정을 하시더니 점점 큰 걱정을 돌려주시더라고요. 그런 시청자들의 감정 변화를 보면서 저도 즐거웠죠. 사실 저보다 그런 일을 하는 스태프 분들이 훨씬 고생을 많이 했어요. 시청자분들이 보는 죽는 신은 단편적이지만, 차형석이 한번 나오면 전 스태프들이 3, 4시간동안 작업하거든요. 비와 천둥을 동반하다보니 살수차 불러서 비 뿌리고, 천둥이랑 피 연결까지 다 맞춰야 돼요. 옷도 한 벌 인줄 아시는데 굉장히 여러 벌 있어요. 한 번에 스무 벌 가까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대역 분까지 비슷한 옷을 입었으니까요. 의상이 모자랄 때마다 제작하거든요. 많이 해 썼죠. 촬영팀도 매번 반복되면서 제 얼굴에 다양한 각도와 다른 의미를 표현 하는 걸 찾아야 했고. 모두 스태프들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형석이가 사랑받은 건 스태프들의 역할이 많이 기여했죠. 감사해요.”

   
 

이처럼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던 만큼 박훈은 드라마의 종영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뿐만 아니라, 그전에 가진 편견과 선입견을 많이 깨는 작품이었다고. 그는 “형석이 역할을 맡으며 많은 스태프들한테 신세를 지면서 이게 정확한 팀 작업이고,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내 역할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라면서도 “현빈씨와 박신혜씨가 많이 도와줬는데, 제가 오빠이자 형으로서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사람들이 다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한 명 한 명 다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그 것 만으로도 시간이 지나더라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분명 언젠가 다시 만나겠죠. 전작도 그랬지만 그 만남이 늘 즐거울 것 같아요. 그분들과 어디서 다시 작업하게 된다면 밝게 웃고 의지하면서 작업하지 않을까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비롯해 브라운관 데뷔 이후 주로 악역을 도맡으며 일찍이 ‘악역 전문 배우’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박훈. 이와 관련해 그는 “선이 굵은 외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기대치가 있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예전에는 무섭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라는 그는 “이것 도 다 운인 것 같다. 그런 배우 분들과 쉽게 작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엄청난 행운”이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앞으로 확장해나가야죠.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계속 하려고 해요. 연극에서는 망가지거나 코믹하고 가벼운 캐릭터도 많이 했거든요. 드라마에서도 일정부분 그런 시점이 온다면 그런 역할도 해야죠. 저라는 배우가 여러 면에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역할을 계속 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박훈은 “불리고 싶은 수식어가 있나”라는 질문에 “수식어 보다는 아직은 주어진 걸 잘 해내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는 “수식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닌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라며 “저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 배우라 담금질이 필요하다. 칭찬도 받지만 때로는 질책도 받아야 한다. 그런 시간이 지났을 때가 돼서야 평가 받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주어진 걸 잘 해내는데 최선을 다해야하지 않나 싶다”라고 자신만의 소신을 드러냈다.

“올 한해도 지금처럼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고요. 원래 하고자 했던 방향대로 집중해서 가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태양의 후예’에게 감사하죠. 그땐 경험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제 와서야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한 거였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받는 관심이 기분 좋지만,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제 것을 꾸준히 하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길게 연기하고 그 다음에 평가 받아도 되니 조급해하지 않으려고요.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하려고 마인드 컨트롤 중이에요. 감사하지만 흥분하지 않고 다음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죠.”

“작가님의 의도에 최대한 근접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 “배우라는 일은 마라톤 같은 작업이기 때문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작품을 임할 때 어떤 의도로 다가오고, 작가의 의도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고민한다”라는 박훈의 말에서 그가 자신의 작품을 얼마나 진중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애칭이 생긴 건 처음이라,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 이정도 반응이 나올 줄 잘 몰랐기 때문에 감사하기 그지없죠. 가장 고마웠던 건 저의 역사를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앞으로 더 많은 역사 만들 수 있는 배우가 돼야죠. 그래서 나중에 웃음 지을 수 있는, ‘저 사람이 이랬는데 참 잘 컸네’라는 말을 듣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같이 늙는 거죠.(웃음)”

[뉴스인사이드 김나연 기자/사진=제이스타즈 엔터테인먼트,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