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이범수 “‘출국’, 세상 밖으로 나오길 응원했다”…뜨거운 부성애 완성
[NI인터뷰] 이범수 “‘출국’, 세상 밖으로 나오길 응원했다”…뜨거운 부성애 완성
  • 승인 2018.11.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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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수가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스크린 앞에 섰다. 개봉 전부터 원작, 화이트리스트 논란 등 잡음이 있었지만 공개된 ‘출국’은 묵직한 드라마로 러닝타임을 충실히 채웠다. 혼란의 시대, 가족을 되찾기 위한 가슴 저린 아버지의 사투는 이념을 넘어선 뜨거운 눈물을 자아냈고 이제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출국’은 1986년 분단의 도시 베를린, 서로 다른 목표를 쫒는 이들 속 가족을 되찾기 위한 한 남자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극중 오영민은 서독으로 망명해 유학 중 북한 공작원에 말에 속아 북한으로 넘어가고 이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가족과 이별하게 된다. 이범수는 그가 연기한 오영민에 깊은 연민을 느꼈고 이야기의 힘을 믿었다.

“욕심이 났어요. 근래는 자극적인 작품의 흐름이 있는데 물론 그런 역을 해왔고 좋아했기도 했지만 영원히 그것만 할 수는 없잖아요. ‘출국’은 배우의 연기로 작품을 끌어가는 구조와 시나리오였고 분노와 슬픔, 애환이 다 들어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배우로서 저의 성장 측면에서도 욕심이 났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보면 뭐랄까 등장인물이 안쓰럽다고 할까요. 저희를 길러온 아버지들은 그때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지금 아버지니 이런 부성애가 남이야기 같지 않은 공감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욕심이 났죠.”

연출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인 감독의 작품이지만 이범수는 탄탄한 시나리오의 힘을 믿었다. 흥행 공식에 편승하지 않고 열악한 영화계 환경에 도움이 되고자하는 소신도 작품 선택에 힘을 더했다.

“흥행하는 작품을 고르는 것도 배우의 좋은 능력중 하나죠. 그걸 뒤집어 말하자면 흥행공식만 따르는 영화에 편승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잖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배우는 세상에 화두를 던지는 것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감독이야말로 세상과 소통하고자하는 철학적 코드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요. 거창하게 말하긴 그렇지만 배우로서 그런 소신이 있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시나리오를 접하고 감독님을 만났을 때 힘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저에게도 신인, 무명의 시절이 있었고 제가 알기론 점점 신인 감독이 데뷔할 수 있는 환경이 척박해지고 있어요. 안전 위주로 투자하는 게 많아졌죠. 이 시나리오가 세상 밖으로 나오길 응원했어요.” 

   
 

영화는 오길남 박사의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이란 에세이를 모티브로 한다. 원작이 있고 오길남 박사의 월북에 대한 진실 공방이 존재하지만 이범수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인물에만 집중했다.

“제 스타일인데 원작의 유무와 상관없이 오로지 시나리오에 전념합니다. 우리 작품의 설계도가 시나리오인데 원작을 참고했을 때 설계도인 시나리오에 없는 것들이 나올까봐 그렇게 해요. 원작을 참고하면 더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작이 없는 작품도 많잖아요. 어차피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하는 거니까 그 설계도를 가지고 올곧이 가보자는 거였죠.”

이범수가 ‘출국’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건 이념이 아닌 부성애다. 1980년대에 진한 향수가 있는 이범수는 그때의 우리네 아버지를 떠올렸다. 실제 두 아이를 둔 아버지기도 한 이범수는 그때의 본인의 아버지와 지금의 자신을 교차시키며 진정성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 부성애를 녹여낼 수 잇었다. 

“저에게 80년대라는 건 무척 친근하더라고요. 저는 80년대가 초·중·고·대학교까지 걸쳐있더라고요. 그래서 고향 같고 친근해서 더 진짜 같이 묘사하고 싶었어요. 그런 것 중 하나가 아버지의 마음이었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본능적으로 제가 청소년일 때 저희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봤죠. 당시 우리의 아버지들은 참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했어요. ‘자상한 아빠’라는 게 어색했죠. 작품 속 오영민이라는 인물도 그렇게 무뚝뚝합니다. 공부밖에 모르고 교수로서 인정받는 것이 자식과 가정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죠. 그때의 아버지는 그렇잖아요. 열심히 야근하고 승잔하고 자기 몸도 안 돌보고 무조건 자신을 따르라고 하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잔정이 있고. 그런 모습이 오영민에게도 담겨서 리얼하게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출국’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혼란에 시대에 휩쓸린 아버지를 그린다. 대한민국, 북한, 독일, 미국 등 다양한 세력과 부딪히며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세련된 스파이물이나 블록버스터 액션과는 거리가 멀다. 이범수는 오영민의 분투를 두고 운동회 때 자식을 업고 뛰는 아버지의 모습에 비유했다.

“이 영화는 세상과 아빠의 구도예요. 그 세상 속에는 대한민국도 있고 북한, 독일, 미국도 있는 거죠. 각국의 첩보원들, 이득을 취하고자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맹꽁이처럼 공부밖에 모르는 아빠가 단순히 논문을 발표하고 생활을 넉넉하게 하고자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일에 가담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가 가족을 되찾겠다고 싸우고 총도 들게 돼요. 그래서 오영민은 ‘테이큰’처럼 잘 싸우면 안됐어요. 너무 못 싸워서 고문관 같아도 안 되지만 잘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웃음). 운동회 때 자식을 업고 뛰는 아빠들이 다들 슈퍼맨처럼 멋지고 몸짱은 아니잖아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마음과 현실이 따로 놀지만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모습인 거예요. 스파이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 종합해보면 그러면 이야기가 너무 커지고 포커스도 부성애에 다른 것들이 들어올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감독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기도 해요.” 

이제 영화는 공개됐고 관객과 소통할 순간이 왔다. 이야기의 힘에 끌려 시작한 작품인 만큼 이범수는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관객에게 닿길 기원했다.

“오해를 풀자는 게 영화를 처음 참여할 때 초심은 아니었잖아요.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알려졌으면 하는 게 초심이었어요. 신인감독에 조명, 촬영 등 스태프도 신인이었어요. 흥행공식에 상당히 벗어나는 거죠. 저도 배우로서 전작의 흥행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대중예술로서 많은 관객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흥행이 안 될 것 같다고 피하는 건 와 닿지 않았어요. 이런 작품이 나오고 건강한 신인 배우, 제작진이 나와야 영화인 층도 두꺼워지는 거죠.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되고 싶었고 앞장서고 싶었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부끄럽지 않구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사회를 마치고 감독님 손잡으면서 수고했다고 말했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디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