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상류사회’ 박해일 “맨홀에 빠지듯 욕망에 빠지는 인물 그렸다”
[NI인터뷰] ‘상류사회’ 박해일 “맨홀에 빠지듯 욕망에 빠지는 인물 그렸다”
  • 승인 2018.08.2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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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봤을 때의 느낌이 결과물에도 담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기대한 부분은 시나리오의 밀도 있는 속도감이었는데 그런 부분이 살아있어서 인물도 썰매를 타듯 미끄러져 갈 수 있었어요. 장태준과 오수연 두 캐릭터가 같이 가는 느낌도 잘 살아있었고 각 인물들의 욕망이 형성되는 지점이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박해일이 다양한 군상들의 욕망이 뒤섞인 세상 ‘상류사회’에 뛰어들었다. 상류사회로 들어가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상류사회’(감독 변혁)에서 박해일은 존경받는 정치계에 입문하는 경제학 교수 장태준을 연기했다. 박해일은 아내 오수연 역의 수애와 함께 상류사회의 모순과 더 높은 곳을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을 과감하게 그려낸다. 이전에도 ‘돈의 맛’, ‘하녀’ 등 상류사회와 현대사회의 욕망을 그려낸 작품들이 있었지만 박해일은 ‘상류사회’ 만이 가진 차별성을 믿었고 배우로서 틀을 깰 수 있는 작품이라고 확신했다.

“‘상류사회’는 우선 욕망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갔다는 점이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예요. 그리고 ‘욕망’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단어인데 일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뭔가 획득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지점, 그런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욕망’을 멀리 있는 것이라고 여기기보다는 사람들이 취하고 싶은 가까운 곳에 있는 어떤 것이라 생각하며 다가갔어요. 장태준이라는 인물도 관객 분들에게 가깝게 다가갔으면 했어요. 태준이 나오는 장면에서 인간적인 면도 보이고 빈틈이 많은 구석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태준은 처음에 학자 기질이 있는 모습으로 출발하잖아요. 그리고 동선을 정치로 옮겨갈 때의 심리와 변화를 지켜봐주시길 바랐어요.”

   
 

‘상류사회’에서 각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욕망하는 것을 향해 달려간다. 박해일이 연기한 장태준은 유망한 경제학 교수에서 우연히 정치계에 입문하며 욕망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간다. 박해일은 이러한 장태준을 윤리적 가치와 상류사회 진입이라는 욕망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며 배우로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감독님과 장태준이라는 인물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교수 시절에는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시민은행이라는 것에 열정을 갖고 준비하는데 그 과정에서 유혹을 느끼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 있어 장태준이라는 인물은 크게 변화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조금씩 변화하는 사람인지에 관해 고민했어요. 쉽게 말하면 욕망의 기질을 크게 보여야할지, 아니면 안 그런 사람이 어떤 계기로 인해 훅 빠져드는지 이야기를 나눴죠. 비유하자면 맨홀에 빠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으면 했어요. 맨홀에 빠진다는 건 딴 짓을 하다가 빠지는 거예요. 조심하면 빠질 위험이 적죠. 장태준은 그런 인물이 아니에요. 감독님도 ‘장태준은 자로 재지 말자’고 했어요.” 

장태준은 우연히 분신을 시도하는 노인을 구한 뒤 정치계에 입문하게 된다. 병원에 입원한 노인을 찾아가며 한 차례 작은 양심을 외면한 그는 본격적으로 상류사회를 향한 길을 걷는다. 박해일은 이러한 미묘한 장태준의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하며 결을 잡아갔다.

“분신을 시도한 노인과 병원에서 만나는 장면이 장태준에게 중요한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캐릭터가 정해지는 장면이에요. 사회자처럼 매끄럽고 테크닉을 지닌 사람이라면 머뭇거림이 없었겠죠. 망설임을 과하지 않게 슬쩍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감정을 폭발하는 신도 어렵지만 이런 미묘한 장면도 어려워요. 반대로 요트 장면 같은 경우는 모든 걸 내려놓고 처절하게 감정을 토로하는 장면이라 힘들었어요. 추운 겨울이라 한파도 강했죠(웃음).”

   
 

인간의 욕망을 그린 만큼 영화는 돈과 정치, 치정이 담겨있다. 극 중 장태준은 비서인 박은지(김규선 분)와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불륜을 저지른다. 또한 상류사회의 최고점에 있는 미래그룹 회장(윤제문 분)의 추악한 민낯과 함께 강도 높은 노출신이 연출되기도 한다.

“장태준의 베드신에 관해서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연출가도 배우도 당위성을 찾았고 촬영할 때도 김규선 씨가 잘해줬어요. 장태준과 박은지의 전사를 생각해봤죠. 박은지는 장태준의 수업을 들었던 졸업생이에요. 대학교를 나와서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사회에 진출했고 빠르게 자리 잡고 싶은 욕망이 있는 인물이에요. 박은지 본인의 욕망이 겹치는 부분에서 태준을 만나게 된 거죠. 태준 역시 붕 떠있고 컨트롤이 안 될 때 유혹에 넘어간 그런 관계가 아닐까 싶어요. (한 회장 베드신 수위는) 연출에 있어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유가 없이 나온 장면은 아니고 추악함을 표현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와 권력의 정점에서 모든 선택과 행동을 컨트롤할 수 있는 인물이 예술 활동까지 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한 행태라고 봤어요.”

영화에는 현 시대를 관통하는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장태준은 “선은 넘지 말아야지”라며 거침없이 질주하는 욕망에 제동을 걸기도, “나쁜 돈도 좋게 쓰면 돼”라며 실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박해일은 ‘욕망의 선’을 명확히 정의내릴 수 없기에 여전히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러한 소재로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도덕적인 면을 지켜야 하는데 그 기준점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뉴스에도 나오고 영화나 다른 장르에서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다양한 것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죠. 그래서 제가 어떤 정의를 말하고 그 기준을 지키고 살 건지 묻는다면 모르겠어요. 사람은 정말 모르는 거 아닐까요.”

“항상 이전 필모그래피에서 반 보 앞서나간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참여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을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한 시점 같습니다.”

[정찬혁 기자/ 사진= 뉴스인사이드DB,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