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황정민 “‘공작’, 바닥과 직면하게 된 작품”…관성 이겨낸 근성
[NI인터뷰] 황정민 “‘공작’, 바닥과 직면하게 된 작품”…관성 이겨낸 근성
  • 승인 2018.08.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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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감독님이 모든 대사신이 액션신처럼 다이내믹하고 긴장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구강액션’이라고 했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런 긴장감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관객들이 이걸 보고 긴장감을 가질까도 싶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믿고 보는 배우 황정민에게 영화의 소감을 묻자 힘든 소리부터 늘어놨다. 괜한 너스레인가 싶다가도 계속 들어보니 진지한 고충이었다. ‘신세계’, ‘국제시장’, ‘베테랑’, ‘곡성’ 등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흥행작을 보유한 충무로 대표 배우 황정민이 ‘공작’에서 호되게 당했다.

“이 땅에 살고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몰랐다는 것에 ‘헐’이라는 말이 나온 게 시작이었어요. 첩보원이고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1인2역으로 가면 되겠다고 쉽게 생각했다가 뒤통수 맞았죠. 대사를 고민하고 생각하고 외우고 현장에 가서 연기를 하는데 잘 쌓아지지 않고 긴장감이 안 생기는 거예요. 뭘 잘못했나 싶었죠. 큰일 났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솔직히 털어놨죠. 보통 배우들이 작품 이야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해요. 그런데 이건 그렇게 해선 안 되겠다 싶은 거죠. 모든 걸 털어놓으면서 쌓이기 시작했어요.”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는 안기부 스파이 흑금성. 그동안 사랑받아온 여느 스파이 영화들을 떠올렸던 황정민은 각 인물이 자아내는 긴장감의 무게를 조금은 간과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작품에 깊게 빠져들고 세밀하게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그이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액션이 배제된 상황에서 오롯이 대사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가야 했던 그는 ‘황정민의 맛’을 줄이고 작품의 문법에 충실했다.

“저의 모자람으로 바닥을 치는 걸 스스로 보게 되는 시점이 오니까 허투루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왜 쉽게 생각했는지 자괴감에 빠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성민이 형도 힘들어 하는 걸 알게 됐고 서로 공유하게 됐어요. 그전 작업들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발산했다면 이번에는 그런 에너지를 배재하고 역할의 레시피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어요. 저에겐 큰 공부가 됐죠. 매번 작업을 하면서 관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늘 열심히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관성이 있었던 거죠. 그런 것들을 정말 내려놓고 아주 정확한 레시피에 맞춰 하다 보니 그 동안 놓치고 간 게 많았다는 걸 알게 된 계기가 됐어요.”

   
 

남과 북의 긴장을 그리는 ‘공작’은 북한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넘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생전 모습까지 구현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해외 특수 분장팀을 섭외하며 준비한 김정일 등장 신은 이전 한국영화에 없던 생경한 풍경에서 오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대사들이 제법 많아서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갔어요. 촬영 기간이 3일 밖에 없었어요. 분장해주시는 분들이 외국 분들이라 돌아가야 했어요. 혹시나 잘못되면 다 뒤집어쓸까봐 열흘 전부터 준비했어요(웃음). 근데 막상 촬영할 때 얼마나 틀렸는지. 세트에서 오는 중압감에 김정일까지 들어오니 한마디로 ‘쫄았’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성민이 형도 얼마나 헤맸는지 몰라요. 차렷 자세로 대사만 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밧줄로 묶인 기분이었죠.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는 이게 가능하냐고 되물었어요. 그때만 해도 관계가 안 좋았어요. 감독은 무조건 해야 한다며 의지가 있었죠. 어떻게 김정일과 똑같은 모습을 만들지 싶었는데 현장에서 보고 너무 놀란 거죠. 그래서 더 긴장한 것 같아요. 다음날 지훈이가 왔는데 너무 힘들다고 조심하라고 충고했는데 깨는 너무 뻔뻔하게 잘해서 부러웠죠(웃음).”

올해도 여름 성수기에 황정민의 작품이 극장에 걸렸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작품의 중심에 있는 배우로서 중압감이 크지만 황정민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텐트폴 영화로서 오락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저는 자신 있다고 봐요. 관객 분들은 실화를 좋아하고 황정민을 좋아해요(웃음).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좋은 시기에 제 작품이 걸리는 건 행복한 거예요. 못 올리는 영화도 태반인데 저를 필두로 해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복 받을 일이잖아요. 처음에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이야기를 저만 아는 게 아까워서였어요. 관객들도 분명 같은 감정을 느낄 거라는 거죠.”

   
 

“관객들은 황정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힘든 시기를 극복한 사람의 묘한 미소가 엿보였다. 두 편의 천만영화를 연달아 탄생시킨 황정민은 이후에도 흥행에 중심에 있었지만 이와 동시에 ‘또 황정민’이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공작’ 촬영 이후 황정민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연극 무대에 올랐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감을 충전한 그는 ‘믿고 보는 황정민’으로 돌아와 다시 한국 영화의 최전방을 달린다.

“오래전에 찍었던 작품들이 개봉 시기가 맞물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다작배우로서 말이 많았죠. 그 당시에는 조금 힘들었어요. 저는 잘 하고 싶었죠. 안될 때 마음 추스르기가 힘들었어요. 작년에 ‘공작’ 촬영을 마치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그 전에는 바닥이 보여도 할 수 있다고 채찍질을 했는데 ‘공작’ 때는 바닥과 직면하니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1년 넘게 쉬면서 처음에는 ‘내 직업이 배우인데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 편으로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내 영화만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작품만 재밌어서 계속 보다가 지겨워질 수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연기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 나누는 배우가 몇 없는데 그 중 제가 한 명이라고 생각하니 좋아지더라고요. 나쁜 생각을 하면 한없이 나빠지지만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니 괜찮아졌어요. 그래서 다시 다작의 대열로 들어갈 것 같아요(웃음). ‘귀환’이 12월에 촬영 들어갈 텐데 너무 기대돼요. ‘공작’ 때 느꼈던 좋은 감정을 지니고 새로운 작품을 해보려고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