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공작’ 이성민 “촬영 때 겪은 고통보다 좋게 나와”…베테랑 배우의 고행
[NI인터뷰] ‘공작’ 이성민 “촬영 때 겪은 고통보다 좋게 나와”…베테랑 배우의 고행
  • 승인 2018.08.0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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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시나리오를 두고 감독님이 ‘구강액션’이라는 말을 했어요. 대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촬영에 들어갔는데 연기로 표현이 잘 안돼서 힘들었어요. 생각보다 많이 잘 안됐어요.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말 속에 서로의 긴장감도 표현돼야 하고 리듬감과 밀도도 있어야 했는데 구현이 안돼서 힘들었어요. 감독님이 잘 요리해줘서 촬영 때 겪은 고통보다 좋게 나와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참여한 것이 영광스럽고 스스로 놀라워요.”

1990년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을 지닌 안기부 스파이의 이야기를 그린 첩보영화 ‘공작’이 마침내 공개됐다. ‘공작’은 화려한 액션과 첨단 무기가 등장하는 기존의 스파이 영화에서 벗어나 치밀한 전개와 배우들의 완벽한 정극 연기로 관객들을 깊은 몰입에 빠뜨린다. 이성민은 극중 흑금성(황정민 분)의 카운터 파트인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으로 분해 전에 없던 연기를 펼친다. 그는 절제된 눈빛 연기만으로 냉철한 카리스마부터 따뜻한 인간적 면모까지 세밀하게 인물을 그려냈다.

“흑금성이 최학성을 만나 리명운에 관해 ‘속내를 알 수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첫 특징이에요. 감독님이 리명운이라는 인물의 속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흑금성이 리명운을 통해 김정일을 만나고 나란히 가기 전까지 긴장감을 주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게 첫 목표였고요. 그 뒤에는 리명운이 국가의 이념 안에서 개인의 신념을 위해 어떻게 달려가는지 보여주는 게 중요했죠. 그러면서도 리명운은 조심스럽고 예민하게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걸 표현해야했고. 그 지점이 연기할 때 힘들었어요. 그리고 촬영하면서 리명운은 냉철하면서도 뜨거운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기존의 북한 캐릭터보다 휴머니즘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런 면도 신경 썼어요. 감독님께 좋은 캐릭터를 선물 받은 것 같아요.”

   
 

누구보다 대중에게 신뢰받는 연기를 해온 이성민은 ‘공작’에서 계속해서 한계에 부딪혔다고 털어놨다. 북한 사투리 억양, 서있는 자세, 걸음걸이부터 시작해 인물의 심리상태, 호흡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 부었지만 생각처럼 매끄럽게 신이 구현되지 않았다. 이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같은 고민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성민은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시 힘을 모았다.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이성민은 강인한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모두 갖춘 리명운을 만들어냈다. 이성민은 “모두가 헤매고 힘든 과정이 있어 조금은 다른 영화가 나온 것 같다”며 인고의 과정을 회상했다.

배우들의 열연에 사실성은 더한 건 완벽하게 구현된 시대의 공간이다.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는 안기부 스파이의 이야기를 그리는 만큼 영화는 북한 장면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제작진은 전국 각지와 대만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90년대 남과 북을 구현했다. 

“우리 영화 속 장치들이 너무 리얼해서 신고가 많이 들어왔다고 들었어요. 심지어 안동에서 촬영할 때는 인민복을 입은 보조출연자들을 보고 주민 분들이 무슨 일이냐고 놀라서 프로듀서님이 일일이 방문해서 영화라고 설명했어요. 저도 촬영하면서 너무 북한 같아서 놀라기만 했어요. 매 장면 새롭게 감탄했죠. 심지어 대만에서 촬영할 때도 보조출연자를 전부 오디션으로 뽑았어요. 현지 분들이었는데 한복을 입혀놓으니 전부 북한 분들 같았어요. 한국인인줄 알고 말 걸면 다들 대만인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감독의 완벽함이 보였어요. 김정일 위원장 특수 분장도 엄청 공 들였어요. 미국에서 유명한 분장팀이 왔어요. 정말 우리 영화에 김정일이 실제로 등장하리라 상상도 못했고, 놀라움을 줄 거라 생각했어요. 분장하고 세트장 들어오시는데 완전 압도당했어요.”

   
 

‘흑금성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작’이 제작되던 당시 국내 상황과 남북의 관계는 현재와는 달랐다. 문화계에는 블랙리스트가 암암리에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공작’이 정치 영화로 카테고리 화되지 않고 희망을 말하는 작품이 되길 바라고 있다.

“‘공작’을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고 이를 재구성한 영화일 뿐이죠. 그리고 한 정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칸에서 외국 기자들이 우려하던데 저는 괜찮다고 했어요. 물론 30년 전이라면 위협을 느꼈을 수도 있죠. 당시에 연극할 때 연극 대본을 구청에 신청해서 검열도장을 받았어야 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죠. 투자의 문제면 몰라도 배우 입장에선 걱정은 없었어요. 꿈같은 이야기지만 판문점에서 남북이 모여 ‘공작’을 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우리 영화는 지금 남북이 가고자하는 방향과 비슷한 맥락으로 희망을 갖는 영화니까. 남북정상이 만날 당시 뉴스를 보며 놀라웠는데 우리 영화에도 비슷한 그림들이 많아서 뿌듯했어요.”

1985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베테랑 배우에게 ‘공작’은 한계를 느끼고 배우인생을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끝으로 이성민에게 ‘공작’의 의미를 묻자 셰익스피어를 언급했다. 

“황정민이 올해 셰익스피어 희곡 ‘리차드 3세’를 했는데 저도 셰익스피어 연극을 한 적이 있어요.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대본이 굉장히 존중받아요. 그 의미를 잘 전달해야 하는 대본의 품격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공작’은 굉장히 품위 있는 작품이고, 멋진 배우들의 정극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