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김고은 “‘변산’ 안 했으면 어쩔 뻔…너무나 행복했던 현장”
[NI인터뷰] 김고은 “‘변산’ 안 했으면 어쩔 뻔…너무나 행복했던 현장”
  • 승인 2018.07.0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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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 새로운 여배우가 등장할 때면 으레 ‘제2의 김고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2012년 영화 ‘은교’로 대중과 평단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김고은’이라는 이름은 20대 여배우가 선망하고 도달하려는 구체적인 목표가 됐다. 

영화 ‘몬스터’, ‘차이나타운’,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도깨비’ 등 새로운 캐릭터를 덧입히며 더욱더 존재감을 견고히 한 김고은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흑역사 가득한 고향 변산에 강제 소환된 학수(박정민 분)의 인생 최대 위기를 그린 ‘변산’(감독 이준익)에서 김고은은 ‘후지지 않은 청춘’의 미덕을 보여준다.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당시의 상태예요. 감정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부분들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할 수 있는 상황 안에서 선택하는 것 같아요. ‘변산’을 선택할 때는 즐겁고 유쾌한 역을 하고 싶었어요.”

‘변산’에서 김고은은 학수를 고향으로 불러들인 장본인 선미를 연기한다. 학창시절 학수를 짝사랑하던 선미는 어른이 된 후 변해버린 학수의 모습에 실망하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 순수했던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극 중 선미는 학수가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주옥같은 대사들이 선미에게 주어지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려고 했어요. ‘왜 이 친구가 이런 대사를 짊어지는가’를 생각하는 것부터 출발했던 거 같아요. 각자 ‘쉬운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표현하는 게 쉬운 반면 다른 누구는 참는 게 쉬울 수 있죠. 선미는 후자라고 생각했어요. 감정을 표출하고 행동하는 친구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이를 글로 적는 친구인데 학수에게 그런 말을 하기까지 굉장한 노력이 있었을 거예요. 그 노력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정리했겠어요. 그러면서 주옥같은 대사들이 나온 거죠. 느끼는 걸 바로 말했다면 배려하지 않은 말들이 나올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학수도 선미의 말을 듣고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 것 같아요.”

선미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선미가 학수의 마음을 움직였듯 김고은 역시 선미의 대사에 동했다. 

“저는 ‘값나가게 살진 못해도 후지게 살지는 말어’라는 대사가 현장에서 하기 전부터 와 닿았어요. 후지게 사는 것에 대한 정의는 많겠지만 어떤 걸 추구하고 이루고 싶을 때 맹목성을 띨 때가 있잖아요. 그 순간에 ‘후져지지 않은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어리지만 어려서부터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주변을 돌아보지 않을 때 후진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고은은 선미 역을 위해 8kg을 자발적으로 찌웠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선미의 이미지를 그려봤을 때 마른 느낌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 덕분에 영화 속 선미는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완만한 곡선의 느낌을 풍긴다. 김고은은 촬영 내내 마음껏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 지었다. 이후 촬영을 마치고 다시 시작된 다이어트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감독님이 시키셔서 한 건 아니에요. 작품을 하고 시나리오를 볼 때 막연하게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어요. ‘은교’ 때는 단발일 것 같았어요. 그런 막연한 이미지가 떠오를 때 선미는 마른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증량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하라고 하셔서 증량을 시작했어요(웃음). 사실 평상시에 절제를 잘 못하는데 이정도로 촬영 때 야식을 먹고 반주를 하진 않아요. 모든 게 허용돼서 행복했어요(웃음).”

‘변산’으로 첫 호흡을 맞춘 김고은과 박정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 사이다. 평소 친분이 있지만 한 작품에서 만나는 건 처음인 박정민을 두고 김고은은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래퍼 역을 맡아 1년 동안 랩에 몰두했던 박정민의 마지막 무대에선 실제 공연을 관람하듯 소리쳐 목이 쉬었을 정도라고.

“일로는 만난 적이 없어서 어떨까 생각은 했어요. 어쨌든 이 영화에서 학수가 짊어지는 롤이 엄청났기 때문에 개인적인 마음가짐은 ‘무조건 다 맞춰주자’였어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냥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어요. 관객으로서 이전 작품을 봤을 때 막연히 대단하고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이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증명이 된 느낌이에요. 원래도 그의 행보에 대한 존경이 있었는데 현장에서 선배의 태도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마지막 ‘쇼미더머니’ 무대 장면은 가사가 2~3일 전에 완성된 거예요. 본인이 쓰고 녹음도 했죠. 저는 중간에 랩 하는 걸 못 봤어요. 매번 혼자 방에서 연습하니까 처음 촬영 전에 단합모임에서 노래방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죠. ‘쇼미더머니’ 무대 촬영할 때 진짜 너무 놀랐어요. 뒤로 넘어갈 정도로 놀랐고 흥분해서 진짜 제 목이 쉬었어요. 진짜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지만 꼭 배우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영화 스태프나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우연한 계기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첫 무대에서 너무나 긴장해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두 번째 무대에 오르며 이전에 없던 황홀함을 느꼈다. 여전히 연기가 행복한 그녀는 단순히 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닌 영화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배우로서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배우로서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연기에 대한 열정과 꿈이 커서 배우가 되길 지원했고 운이 좋게 첫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어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게 다가왔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물론 배우가 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고, 시행착오는 데뷔부터 지금까지 계속 겪고 있어요. 요즘은 ‘프로란 무엇인가’에 관해 고민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20대 후반의 여성으로서 반복되는 고민에 빠지는 김고은에게 ‘변산’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는 ‘변산’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이준익 감독의 역할이 컸다. 권의를 내려놓고 모두와 열린 자세로 어우러지는 이준익 감독의 모습은 ‘변산’이 말하는 ‘후지지 않은 삶’과도 일맥상통했다.

“‘변산’을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어요. 제가 너무 행복하니까요. 물론 결과가 중요하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속상하고 제 책임 같은 게 있지만 과정이 저에겐 너무 중요하게 자리 잡았어요. ‘은교’ 때 배운 것 같아요. 저에게 너무 행복한 현장이었어요. 그때부터 현장은 행복해야 하고 그래야 제가 잘 해낼 것 같은 강박이 있었어요. 이번 현장은 행복하다는 표현 이상으로 좋았어요. 여러 측면이 있는데 어쨌든 일이라서 예민한 순간이 발생할 수 있어요. 이준익 감독님은 누군가 실수해서 예민할 수 있는 찰나에도 ‘와하하하’ 웃으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감독님을 잘 몰라서 ‘뭐지’ 싶었는데 ‘다 내 잘못이야’라면서 웃으시는 거예요. 예민한 상황이 발생할 수 없는 거죠. 누가 실수 했는지조차 궁금해 하시지 않고 그냥 덮으세요. 누군가 무안할 수 있는 상황에도 감독님은 본인을 무안하게 만들고 넘어가세요. 현장을 아우르는 감독님의 힘을 느꼈고 ‘이게 이준익 감독님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죠. 권의의식이 신기할 정도로 없으세요. 한참 어린 사람들과 친구처럼 대화하고 좋아하세요. 존경스러운 포인트가 너무 많아요. 많이 배웠어요.”

끝으로 그녀는 데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봤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묻는 말에 김고은은 변함없는 아이 같은 미소를 보였다. 

“저는 정말 같은 거 같아요. 달라진 게 있다면 사회생활이 유연해진 점(웃음). 정지우 감독님을 만나거나 초반부터 함께 해온 사람들을 만나면 ‘제가 달라졌나요? 잘못 가고 있다면 혼내주세요’라고 말하는데 다들 똑같다고 해요. 근본적인 성격은 그대로인 것 같고 좀 더 신중해졌어요. 그리고 낯가림이 없어졌어요. 예전엔 낯가림이 심해서 처음 보면 되게 얼어있고 말도 없었어요. 그리고 무표정일 때와 아닐 때 제가 갭이 좀 있어요. 사실 저랑 사석에서 만나면 배꼽 잡아요. 이건 팩트예요(웃음).”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