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레슬러’ 유해진 “현장에서 느낌표 만들어갈 때 행복 느껴”
[NI인터뷰] ‘레슬러’ 유해진 “현장에서 느낌표 만들어갈 때 행복 느껴”
  • 승인 2018.05.0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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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공조’, ‘택시운전사’, ‘1987’ 등 쉼 없이 연기했고 최근 모든 작품이 성공을 거뒀다. 단역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걸어온 유해진은 어느새 대한민국 스크린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스타는 많고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많지만 유해진 같은 배우는 없다. 그는 화려함이 아닌 진정성으로 관객에게 다가갔고 신뢰를 쌓아왔다. 적당한 가벼움과 적당한 진지함, 현실이 그러하듯 유해진은 스크린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레슬러’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은 전체적으로 좋았어요. 유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부자나 모녀 사이의 과도기, 갈등을 짚어주는 것이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소소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유쾌했어요. 전작들은 특별한 의미와 시대가 있는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가벼우면서 감동이 있어요. 저는 보면서 눈물이 찔끔했어요. 어느 부모든 자식을 그렇게 키웠을 테고, 자식으로 행복하다가 갈등이 생기는 모습까지 오게 되는 게 참 짠했어요. 코미디에 관해서는 저는 대놓고 코믹을 강조하는 건 싫어하는 편인 것 같아요. 유쾌한 느낌, 유쾌한 드라마에 관해 제작진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레슬러’는 전직 레슬러 귀보(유해진 분)가 예기치 않은 인물들과 엮이기 시작, 평화롭던 일상이 유쾌하게 뒤집히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귀보는 일찍이 아내를 떠나보낸 후 레슬러 유망주 아들 성웅(김민재 분)만 바라보고 사는 인물이다. 사이좋던 부자는 성웅이 좋아하던 소꿉친구 가영(이성경 분)이 귀보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유해진은 다 큰 아들이 있는 아버지 역을 위해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했다. 아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상황을 이해한 후 아버지로 몰입을 확장했다. 영화는 자식의 성장과 동시에 부모의 성장을 그린다. 서로를 이해하고 여물어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만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설정도 추가했다. 극 중 귀보는 레슬링 체육관을 운영하지만 돈벌이가 부족해 주부들을 대상으로 에어로빅 수업도 함께 진행한다. 유해진은 제작진과 함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고 추가하며 캐릭터와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주부들에게 에어로빅을 가르치다 힘들어서 몰래 물을 마시고 숨 돌리는 모습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없던 장면이에요. 그만큼 귀보가 열심히 성웅을 키웠고 그래서 나중에 더욱 배신감을 느끼는 걸 강조하기 위한 거였죠. 어느 부모든 그런 게 있잖아요. 자식에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넣은 거고 유쾌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복합적으로 들어간 거죠. 작지만 이런 의견들이 모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유해진은 ‘레슬러’로 관록의 배우 나문희와 영화에 첫 도전한 김민재, 이성경과 동시에 호흡을 맞췄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에 이어 다시 만난 나문희에 관해 그는 “연습하시는 게 여전해서 놀랐다. 그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몇 번씩 맞춰보자고 그러신다. 여우주연상도 그렇고 그 에너지가 존경스럽다”며 존경을 표했다. 이와 함께 김민재, 이성경의 당돌한 도전은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성경 씨 같은 경우는 에너지가 좋아요. 밝은 에너지가 있어요. 그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우울한 것보다 현장에서 밝으면 힘도 나잖아요. 그리고 영화는 처음이라는데 순발력이 뛰어난 친구라는 걸 느꼈어요. 민재 씨도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든든한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그 또래 같지 않은 듬직함이 있어요. 촬영장 밖에서는 형 동생 같은 느낌이 있어요. 물론 걔한테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웃음). 궁합이 잘 맞아요. 친한 친구는 오랜만에 봐도 호들갑떨지 않잖아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친구 같은 느낌이 있어요.”

영화는 귀보와 성웅 부자 외에 귀보와 귀보 엄마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부모와 자식 관계를 묘사한다. 귀보는 자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과 반발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과 성웅의 관계를 돌아보고 이해하게 된다. 유해진도 이번 작품을 통해 실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됐다. 지금이야 대중에게 사랑받고 신뢰를 주는 배우지만 유해진 역시 과거 연극을 한다며 부모에게 반항하고 상처 주는 말을 했다. 알면서도 반항이 더 크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반항하면서 시작한 연기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역할의 한계가 있었고 생활고도 따라왔다. 유해진은 서른이 지나서야 좀 더 중심을 잡고 성장할 수 있었고 회상했다.

“서른 초 중반 정도에 예전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생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죠. 그때 선생님이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하셨는데 큰 힘이 됐어요. 선생님이 ‘평생 연기할 것 같은데 한 두 작품으로 왜 그러냐’고 하시면서 ‘가장 후회하는 게 하고 싶은 걸 안한 것’이라고 했어요. 그 말이 크게 다가왔죠.” 

유해진은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고 있다. 천천히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존재감을 드러낸 유해진은 사람 냄새가 나는 배우가 됐다. 그는 현장에서 느낌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행복을 느낀다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좋아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는 물음표잖아요. 끝나고 나서도 개봉을 앞두고 다시 물음표이고.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느낌표일 때가 가장 좋아요. 현장에서 손발이 잘 맞고 무언가 만들어 내면 그런 날은 기분 좋으니까 한 잔하기도 해요. 그럴 때면 다들 현장이 행복하다고 말해요. 안 풀릴 때는 힘들지만 잘 맞춰가고 쉬는 시간에 수다 떨면서 밥차에서 식사하면 문득 행복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