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머니백’ 김무열, 고이지 않고 흐르는 ‘수질 좋은 배우’
[NI인터뷰] ‘머니백’ 김무열, 고이지 않고 흐르는 ‘수질 좋은 배우’
  • 승인 2018.04.1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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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에게 맞아 부은 눈 때문에 시종일관 억울해 보인다. 허름한 정장을 입고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은 절박함을 넘어 모든 걸 체념한 듯하다. ‘최종병기 활’, ‘은교’, ‘연평해전’, ‘대립군’, ‘기억의 밤’ 등을 통해 끊임없이 변신해온 김무열은 또 다시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냈다.

영화 ‘머니백’은 하나의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일곱 명이 뺏고, 달리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다양한 캐릭터가 빠른 템포로 교차하는 영화에서 김무열은 빚에 허덕이는 취준생 민재를 연기했다. 극 중 민재는 집에는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하고, 매일 정장을 입고 편의점으로 출근하는 인물이다.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는 안 웃겨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 있어서 블랙코미디 정도로 가볍게 넘어가도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막상 시사회 때 극장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안 웃을까봐 걱정되더라고요(웃음). 다행히 웃으셔서 큰 위로를 받았죠. 처음에 제안을 받고 희순이 형도 출연 제의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형과 작전을 많이 세웠어요. 우리는 무게를 잡는 쪽이었죠. 감정선을 최대한 살리고 진실 된 연기를 하자는 거였죠.”

블랙코미디의 외형을 갖춘 ‘머니백’은 블랙코미디, 케이퍼 무비의 정통적인 배치와 전개 방식을 따른다. 취준생, 택배기사, 형사, 사채업자, 정치인, 킬러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뒤섞인 영화는 캐릭터 플레이가 돋보인다. 제각기 목적을 지닌 인물들 사이에서 민재는 가장 보통의 존재이며 관객들로 하여금 ‘짠내’를 유발한다. 김무열은 코믹을 위한 연기를 절제하고 인물의 감정선을 지켜가며 중심을 지켰다. 민재 캐릭터가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중심을 지킨 덕분에 나머지 캐릭터는 다양한 웃음을 유발하며 개성을 살릴 수 있었다.

“민재 캐릭터를 처음에 봤을 땐 답답했어요. 수술비로 200만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오락을 하러 가는 모습이나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확실하게 어필해서 돈을 얻어내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답답했죠. 작품에 들어가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생각하니까 이해가 됐어요. 예를 들면 민재는 집에는 취직이 됐다고 거짓말하고 양복을 입고 편의점으로 출근해요.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어떤 존재이고, 매일 집에서 나갈 때 어떤 생각을 할지 떠올리며 공감을 넓혀갔어요. 특히 어머니에 대한 부분이 많이 공감됐어요. 아픈 부모를 위해서 뭐든지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의 톤은 다소 유쾌하게 흘러가지만 그 상황들은 가볍지 않다. 영화 초반 민재가 어머니의 수술비를 구하지 못하고 사채업자에게 돈을 뺏긴 뒤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그렇다. 해당 신은 총과 돈 가방을 추격전 선상에 본격적으로 올리기 위한 장면임과 동시에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영화의 블랙코미디적 성격을 관객들에게 인식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

“자살 시도 전에 술을 마시는 건 제가 제안을 드렸어요. 술의 힘에 의한 일종의 실수로 의견을 냈죠. 그러면서 편의점에서 잘리고 나갈 때 소주를 들고 가는 게 추가가 됐죠. 장치적으로 봤을 때 자살 시도는 전체적인 전개가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했어요. 블랙코미디의 특성이 희극과 비극의 교차점인데 이를 위한 장치적인 감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중요한 지점이었죠. 그 결심 이후 총을 당길 용기가 생긴 거니까요. 민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의 발단을 만드는 인물이에요. 이 사람의 사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시간을 할애하면서 공감을 일으키죠. 그래서 자살 시도 장면도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었는지 그 포인트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벨트가 풀리는 장면부터 관객들이 영화를 블랙코미디로 인지하고 웃기 시작했어요.” 

영화 속 민재와 김무열의 20대는 비슷한 지점들이 많다. 20대 초반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며 가세가 기울었고 김무열은 가장의 역할을 했어야 했다. 누구보다 돈의 무서움과 절박함을 잘 알고 있는 김무열은 배우로서 돈의 가치가 행복을 잠식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실체도 없는 사회적 약속일뿐인데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죠. 영화에서도 돈이 없으면 사람 목숨도 살릴 수 없고 죽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실체가 없는 돈의 가치는 삶이나 행복의 가치와 견줄 수 없는 것인데 어느 순간 돈이 이를 잡아 삼키고 있어요. 저도 그랬던 적이 많고요. 청년실업률이 몇 퍼센트라는 기사를 볼 때 이제는 기시감이 들 정도예요. 문제의식은 항상 갖고 있어요. 우리 작품의 주제가 기시감이 들어도 배우로서 한 번씩은 상기시켜 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꼭 그것 때문에 작품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우리 영화를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상큼한 영화가 됐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웃음).”

김무열에게 민재의 ‘머니백’처럼 절망의 돌파구가 된 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지하철 1호선’으로 대학로에 정식 데뷔를 하게 된 김무열은 이후 뮤지컬 ‘쓰릴 미’를 통해 영화, 드라마 출연 제의를 동시에 받으며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처음 배우로서 얼굴을 알리게 된 뮤지컬부터 영화, 드라마까지 김무열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배우로서 그의 가장 첫 번째 고민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그는 “고이면 썩진 않아도 수질은 안 좋아지는 것 같다. 계속 흘러야 수질이 좋아지지 않을까”라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도전을 예고했다.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리틀빅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