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삶에는 정답 없어…쉼을 두려워하지 않길”
[NI인터뷰]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삶에는 정답 없어…쉼을 두려워하지 않길”
  • 승인 2018.02.2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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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요즘 보기 드문 소탈한 이야기였고 원작 만화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기분 좋았어요. 사계절이 주는 느낌이 영화로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임순례 감독님이 영화를 잘 만들어주실 것 같아서 굉장히 빨리 선택한 것 같아요. 감독님이 일단 시골에 사시고 동식물을 좋아하세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리틀 포레스트’의 느낌과 다르지 않는 분이라는 걸 느꼈어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로 충무로 신데렐라가 된 김태리가 ‘1987’에 이어 ‘리틀 포레스트’로 관객을 만난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리틀 포레스트’는 ‘아가씨’ 이후 김태리가 선택한 첫 작품이다. 모든 회차에 출연하며 영화를 이끌어야 했던 김태리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개봉이 다가올수록 부담감이 더해진다”는 그녀는 “영화와는 결이 다른 생각이지만 흥행에 성공했으면 좋겠다”며 주연으로서 의욕을 내비쳐 웃음을 자아냈다. 

4번의 크랭크인과 크랭크업을 반복하며 한국의 사계절을 담은 영화에서 김태리는 관객들에게 휴식과도 같은 편안한 시간을 선사한다.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리틀 포레스트’는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 두 편으로 나뉘어 있지만 한국의 ‘리틀 포레스트’는 한 편에 사계절을 모두 그리며 한국적 정서를 담았다.

“워낙 마니아층이 두터우니까 원작과 비교가 안 될 순 없죠. 한국과 일본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정서적으로 추가되거나 생략된 부분이 있고 가장 큰 차이는 속도감이 붙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친구들의 비중이 늘어났어요. 일본 영화에서는 인물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방식을 택했는데 저희는 혜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설정되어 있어요. 관객의 입장에선 저희 영화가 더 편하고 쉽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국의 ‘리틀 포레스트’는 사계절의 변화,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함께 혜원의 감정과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해맑은 미소 속에 강한 심지를 숨겨둔 김태리의 모습과 영화 속 혜원은 닮은 구석이 있다. 김태리는 혜원의 성격과 성향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면밀히 살피며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혜원을 설명하려면 엄마가 중요한 매개체라고 생각했어요. 혜원의 성격이 형성되는 부분에 있어 엄마와의 과거가 숨어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을 고심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어요. 영화에서 은숙이 말했듯이 엄마와 딸이라서 자존심을 더 세우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어린 혜원에게 엄마는 항상 앞서있는 사람이에요. 지기 싫은 성격이 그래서 생긴 것 같고, 더 독립적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자란 김태리는 한국 시골의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했다. ‘리틀 포레스트’를 촬영하며 사계절을 모두 겪은 김태리는 각 계절의 매력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됐다. 

“겨울에는 눈이 제2의 주인공이었어요. 소중하게 촬영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번에 눈이 많이 안와서 눈이 와서 덮여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어요. 첫 촬영이기도 해서 남다른 기억이 있어요. 봄은 계절이 주는 에너지가 달라요. 새싹이 돋아나고 기온이 올라가면 사람들 표정에 큰 변화가 오더라고요. 봄에는 다들 싱글벙글하며 촬영했어요. 여름에 기억나는 건 평상에 누워있거나 냇가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게 생각나요. 가을은 개인적으로는 서운한 느낌이 있어요. 다 끝나고 추수를 하면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영화에서 혜원이 음식을 직접 만들고 먹는 장면은 영화의 묘미 중 하나다. 김태리는 미리 요리를 배우고 과정을 익히며 촬영을 준비했다. 직접 재배한 식재료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임순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현실과 잘 붙어있지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비주얼과 의미를 지닌 메뉴를 선정했다.

“조물조물 손으로 하는 걸 좋아해서 재밌었어요. 영화 들어가기 전에 푸드스타일리스트 실장님 사무실에서 미리 연습해서 촬영에는 무리 없었어요. 음식들은 다 너무 맛있을 것 같고 실제로 맛있게 먹었어요. 감독님께서 채식주의자인데 영화를 자세히 보면 고기가 없어요. 처음엔 걱정했는데 맛있게 잘 나와서 만족스러워요. 저는 오이 콩국수가 가장 맛있었어요. 오이도 좋아하고 콩물도 좋아하는데 둘 다 들어가니 너무 맛있더라고요. 먹으면서 일상적인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힘들었어요(웃음).”

도시 생활에 지친 혜원이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와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관객에게 정답을 주지 않는다. 김태리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관해 “삶은 계속 흘러가는 중이고 나 역시 그 삶이라는 나룻배를 타고 흘러가는 느낌이다”라며 “고민들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배를 타고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리는 ‘리틀 포레스트’가 관객들에게 ‘쉴 수 있는 용기’가 되길 바랐다.

“시간이 지나야 의미가 정리될 것 같아요. 제가 행복하다는 말을 남발하는 걸 안 좋아하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영화를 보면서 지난 모든 날들과 현장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외부 공간들이 확장돼서 다가왔는데 너무 좋았어요. 저마다의 삶이 있고 정답은 없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아요. 힘들고 지칠 때 생각에 갇혀있는 것보다 ‘아, 지금은 쉬어갈 타이밍이구나’라며 쉰다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혜원을 중심으로 그리지만 재하, 은숙, 엄마 저마다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아요. 관객 분들에게 다양한 삶을 보고 스스로의 삶도 한번쯤 돌아볼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제이와이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