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염력’ 심은경 “‘여백의 미’라는 단어 좋아져…비워낼 수 있는 사람 되고파”
[NI인터뷰] ‘염력’ 심은경 “‘여백의 미’라는 단어 좋아져…비워낼 수 있는 사람 되고파”
  • 승인 2018.02.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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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매니지먼트AND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써니’, ‘수상한 그녀’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최연소 흥행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심은경은 또래 배우들과는 확연히 다른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왔다. 로봇 목소리, 멀미증후군 여고생, 해커, 선거캠프 청년혁신위원장 등 다양한 캐릭터 연기를 펼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심은경은 스크린 속 모습과 달리 실제로는 걱정이 많고 긴장도 많이 한다. 매 작품 치열하게 고민하다 한동안 ‘새로움’이라는 강박에 갇혀 있던 심은경은 ‘연기를 위한 연기’가 아닌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역할에 갈증을 느꼈다.

평소 연상호 감독의 팬이던 심은경은 감독을 향한 믿음으로 ‘염력’의 여정에 참여했다. ‘부산행’, ‘서울역’에 이어 연상호 감독의 세 작품을 연달아 출연하게 된 셈. 초능력이 생긴 아빠 석헌(류승룡 분)과 위기에 빠진 딸 루미(심은경 분)의 이야기를 그리는 ‘염력’에서 심은경은 캐릭터성을 지우고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촬영 당시를 떠올리던 심은경은 “이렇게 즐기면서 촬영해도 될까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염력’에 와서야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무게를 내려놓고 순수하게 연기를 즐겼다.

“‘부산행’ 촬영할 때 감독님께 ‘저도 다음 작품에 기회가 되면 꼭 같이 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신배우님 주연작이 있어요’라고 했어요. 아빠와 딸이 나오는 초능력이야기라고 해서 저도 초능력을 쓰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루미는 드라마의 축을 담당했기 때문에 영화에 동화되어 가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어요. 캐릭터성을 부각시키는 것보다 함께 흘러가며 전체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어요.”

   
▲ 사진= 매니지먼트AND

‘염력’에서 심은경이 연기한 루미는 젊은 치킨집 사장으로 앞장서서 재개발에 항의하는 당찬 인물이다. 심은경은 루미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스며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감독과 함께 루미의 색을 만들어갔다.

“캐릭터가 가진 강인함과 주체적인 모습이 좋았어요. 이를 염두에 두고 촬영에 임했고요. 감독님과 협업해서 만든 게 많았던 영화였어요. 이렇게 애드리브를 많이 한 영화도 처음이에요. 배우가 애드리브를 하는 게 어색하면 스스로 위화감이 들어요. 저는 다른 작품에서는 자제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현장에서의 분위기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나온 것들이 잘 녹아들었어요. 루미는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인물이라고 느꼈고 그렇게 느껴지길 원했어요. 캐릭터적으로 특별하거나 독특한 면모가 두드러지는 것보다 영화 안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길 원했고, 그래서 사실감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전부터 그런 연기에 대한 갈증도 있었어요. 평범함을 연기한다는 말 자체가 미묘하고 안이하게 들릴 수 있는데 실제로 생활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다큐멘터리에서 사람을 담는 느낌이에요. 감독님과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추천해주신 영화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톤 앤 매너를 맞춰갔어요.”

심은경은 연상호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연상호 월드’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는 심은경은 “모니터링을 하는데 기존 다른 작품에서 짓지 않았던 표정들이 보였다. 많이 놀랐고 ‘내가 이런 표정이 나올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눈을 반짝였다. ‘불신지옥’, ‘퀴즈왕’,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에 이어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 류승룡을 통해서는 연륜과 포용력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하게 됐다.

“감독님은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와 배우를 이끌어가야 하잖아요. 감독님의 공감능력을 많이 느꼈어요. 힘든 부분도 많고 촬영이 쉽지 않았을 텐데 스태프 노고를 하나하나 이해해주고 배려해주시는 모습을 봤어요. 승룡선배님과는 ‘불신지옥’부터 함께 연기를 해왔는데 그전까지는 극중에서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었어요. 이번에 함께 하면서 선배의 연륜과 포용력을 많이 느꼈어요. 특별히 연기에 대한 대화가 없이도 호흡이 잘 맞았어요. 선배님의 연륜 덕분에 가능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오래 연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됐습니다.”

   
▲ 사진= 매니지먼트AND

2003년 드라마 ‘대장금’으로 데뷔해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성인 연기자로 넘어오며 성장통을 겪었고 숱한 고민에 빠졌다. 그런 심은경이 생각하는 배우는 ‘배우는 직업’이다. 표현을 위해서는 사람을 알아야 하고, 책도 읽으며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야 했다. 매년 촬영장에서 달라지는 자신을 느낀다는 심은경은 ‘염력’이라는 작품으로 여백을 배웠다.

“‘염력’을 촬영하면서 승룡선배님께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 일을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제 생각을 많이 바꾸게 된 것 같아요. ‘염력’ 이후에 여행도 다니고 제가 갖고 있던 욕심과 갈증을 내려놓게 됐어요. ‘여백의 미’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됐어요. 인생에 있어서도 여백의 미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비워낼 수 있고 새롭게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됐죠.”

올해 심은경은 ‘염력’과 함께 ‘궁합’으로 관객을 찾는다. 한층 가벼운 걸음을 내딛는 심은경은 관객들에게 ‘염력’이 좋은 기운을 불러오는 작품이 되길 기원했다.

“염력은 ‘평범한 시민이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예요. 관객분들이 통쾌함을 느꼈으면 좋겠고, 그 안에 들어있는 블랙코미디적인 장르도 함께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로 좋은 기운을 얻고 즐거운 일도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그리고 올해는 ‘염력’이 많이 사랑받고 개인적으로는 작은 것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