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그것만이 내 세상’ 이병헌 “전략적으로 작품한 적 없어”…마음을 따르는 배우
[NI인터뷰] ‘그것만이 내 세상’ 이병헌 “전략적으로 작품한 적 없어”…마음을 따르는 배우
  • 승인 2018.01.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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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BH엔터테인먼트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공감 가는 장면들이 너무 많았어요. 우리가 겪거나 봐왔던 일상의 모습과 감정들이 모여 있는 작품이에요.”

‘내부자들’, ‘마스터’, ‘남한산성’ 등으로 묵직한 대체불가 연기를 펼쳐온 이병헌이 무게감을 한 층 덜어낸 편안한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한물간 전직 복서와 엄마만 믿고 살아온 서번트증후군 동생의 이야기를 담은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이병헌은 전직 복서 조하 역을 맡았다.

어정쩡한 헤어스타일과 트레이닝복 차림은 언뜻 봐서는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 이병헌은 오히려 이런 편안하고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 실제 자신과 닮아있다고 털어놨다. 이병헌은 “아이 같은 느낌이 닮아있다. 실생활에서는 덜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지인들이 이 영화를 보면 저 같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거다”라며 영화 속 조하와 자신을 비교했다.

그의 말처럼 이병헌은 영화 속 조하에 완벽히 녹아있었다. 이병헌은 작품이 지닌 현실적인 이야기와 꾸밈없는 감정에 끌렸다. 그는 상상이 아닌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캐릭터를 만들고 연기했다. 

“많이 듣는 질문이 선택에 관한 건데 전작들이나 필모그래피를 큰 전략으로 쌓아올린 적은 없어요. 그때그때 이야기가 제 마음을 움직인 작품을 선택해요. 이번에는 아무래도 현실에 붙어있는 이야기고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 경험한 현실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상상에 의존하고 감정을 극대화시켜야하는 작품들에 비해 편할 수 있었어요. 영화가 많은 웃음을 주는 만큼 촬영장에서도 캐릭터로서 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고 어떤 현장보다 즐겁게 웃으면서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이병헌은 드라마와 텍스트의 무게감이 중요할 때와 가벼운 애드리브와 순발력을 요하는 장면을 구분할 줄 아는 배우다. ‘남한산성’이 전자였고 “모히또가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내부자들’이 후자에 속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이병헌은 영화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의견을 제시하며 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애드리브에 관해 말하자면 ‘비행기 편도’ 대사나 진태를 업고 침대에 눕힐 때 하는 대사가 있어요. 상황적인 거로는 진태가 버스에 내려서 대변을 볼 때 보조출연자를 감독님께 제안했어요. 진태에게 권투를 가르치는 장면도 원래는 몽타주 시퀀스였어요. 조하가 집에 스며드는 느낌을 주는 것이 의도였는데 한 신이 된 거죠. 웃음을 주는 역을 하는 배우들은 아이디어를 갖고 많이 대화를 나누고 대본에 애드리브를 첨가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 사진= BH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전반적으로 유쾌하게 흘러가지만 조하의 정서에는 외로움이 깔려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조하는 반항심과 무기력함을 오간다. 상황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진태는 모든 현대인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쓸쓸함이나 외로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살다가 누군가의 ‘많이 외로우시죠’라는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그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같아요. 이 영화에서 조하의 정서를 표현하자면 쓸쓸함이에요. 외로움이 해결이 안 되잖아요. 조하는 엄마가 버린 순간 정신적으로 멈췄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병헌은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박정민과 첫 호흡을 맞췄다. 이병헌이 ‘내부자들’로 남우주연상을 싹쓸이 할 때 박정민은 ‘동주’로 신인상을 휩쓸었다. 충무로 차세대 배우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박정민은 이번 작품에서 서번트 증후군 캐릭터에 피아노 연주까지 두 가지 숙제를 떠안았다. 이병헌은 쉽지 않은 선택을 한 박정민에게 응원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택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연기일 테고 피아노 장면에 CG를 쓰지 않겠다는 감독님의 제안도 해내는 걸 봤어요. 재능과 노력이 함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모두 겸비한 아주 대단한 후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연히 초반에는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그려내는 서번트 증후군이 어떨지 걱정도 했어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롤인데 가짜처럼 보이면 어쩌나 싶었죠. 해내는 걸 보면서 같이 참여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안도가 되고 칭찬해주고 싶었어요.”

지난해 다양한 장르와 계층의 영화가 사랑받으며 한국 영화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장르의 획일화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병헌 역시 ‘싱글라이더’를 통해 다양화에 앞장섰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신과함께’와 같이 대규모 CG가 들어간 판타지 영화가 높은 완성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오가며 활약을 펼쳐온 이병헌은 이와 같은 변화에 관해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신과함께’ 뿐만 아니라 그 전부터 느끼고 있었어요. 10년 전에 할리우드 시스템을 경험하고 한국 작품을 하면서 느낀 건 그들이 가진 시스템, 장비, 근무환경 등을 굉장히 빨리 따라왔어요. 거의 비교될 만한 것들이 없어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다른 점은 트레일러 시스템이 있는데 그건 미국은 땅이 넓어서 그런 거예요. 지역적 특성에 맞춘 거니 어쩌면 우리나라에선 도입이 앞으로도 안 될 수 있어요. 그런 걸 제외하곤 우리나라에 다 있어요. ‘신과함께’의 기술력이나 그린매트에서 촬영하는 것들이 이제 놀랍지 않고 당연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