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1987’ 김윤석 “발전하는 역사의 의미와 바뀌지 않은 것들의 아쉬움 공존”
[NI인터뷰] ‘1987’ 김윤석 “발전하는 역사의 의미와 바뀌지 않은 것들의 아쉬움 공존”
  • 승인 2017.12.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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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0년 전 우리는 광장에 나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지금의 우리는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영화 ‘1987’은 정부가 조작, 은폐하려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부터 민주항쟁까지 뜨거웠던 6개월의 여정을 담는다. 박종철 열사의 고등학교 후배인 김윤석은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의 상징인 대공수사처 박처장으로 분했다. 김윤석은 남다른 책임감을 갖고 실제 인물의 자료를 수집해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북한 사투리를 사용하고 아집이 가득 찬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마우스피스를 끼우고 몸에는 패드를 부착했다. 영화 속 그는 독재 권력과 뒤틀린 신념의 상징으로서 끊임없이 사건을 조작하고 저항하는 이를 짓밟았다. 어둠이 강할수록 그 빛이 찬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윤석은 ‘1987’을 ‘레미제라블’과 비교했다. 인터뷰에서 만난 그는 어느 때보다 영화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이 가득 했다.

Q. 영화적 재미와 메시지 모두를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A. 이 영화는 소중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또 다른 극영화로서의 재미를 주지 않으면 굉장한 낭패를 볼 거라 생각했어요. 유가족을 비롯해 실제 그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이 보고 있으니까 심적인 부담으로 크게 다가온 건 영화적 완성도였어요. 영화적 재미를 놓쳐선 절대 안 되는 상황이었죠.

Q. 1987년에 대학생이었는데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A. 당시 전국의 대학교들에 휴교령이 내려졌어요. 모이면 집회를 하니까 아예 교문을 막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죠. 일부 학생들에게는 불시에 학번을 외워보라고 시키기도 했어요. 전 연극 동아리였는데 연습하러 학교가려고 하는데 못 가게 했죠. 불심검문도 당해봤고, 그런 세대라서 영화 속에 저의 모습도 있는 거죠.

Q. 박처장 캐릭터를 위해 어떤 준비를 거쳤나.

A. 실존인물인데 자료가 별로 없어요. 대공기관 자체가 자료가 많이 삭제됐어요. 그렇다고 못 찾아낼 건 아니니까. 작가 선생이 방송국 PD 출신이라 방대한 자료 수집망이 있죠. 그 분은 평안도 사투리를 썼고 1950년에 월남했는데 30년이 지나도 사투리를 고집했다고 해요. 박처장이라는 캐릭터는 인물의 모습도 있지만 영화적으로 상징하는 게 있어요. 박차장은 그 당시 권력의 모습을 대변하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박처장의 모습으로 올백머리에 M자로 이마도 깎았죠. 하관이 두드러지는데 권력과 아집을 나타내기 위해서 마우스피스도 착용했어요. 실제 그 분이 거구라서 몸에 패드도 댔어요. 겨울에 좋은데 여름에 죽겠더라고요. 그리고 마우스피스 때문에 계속 침이 고여서 대사하고 닦고 다시 대사하고 그랬어요. 발음 연습도 많이 했어요.

Q. 장준환 감독과 ‘화이’ 이후에 만났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A. 장준환 감독이 또 나에게 어려운 역을 주는구나 싶었어요. ‘1987’은 구조가 특이하잖아요. 안타고니스트를 가운데 박아놓고 선한 역들이 하나 둘 붙는 구조예요. 계란을 던져서 바위를 깨듯이, 바위가 무너지고 주저앉는 구조가 특이했어요. 보통은 선량한 주인공이 악에 맞서는데 이 영화는 악을 가운데 두고 달려드니 영리한 장르적 구조라 생각해요. 그래서 이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충분히 이해했죠. 악이 강렬할수록 반작용이 크게 일어나고 빛의 사자가 돋보이니까. 구조적인 사건만 엮어놓은 초고를 보고 처음에는 갈등했는데 최종본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났어요. 다들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데 빈말이 아니에요. 이 시나리오에 장준환 감독의 연출이면 하겠다고 했죠. 올해 1월 14일이 박종철 열사 30주기였어요. 그때 전국에서 추모행사를 하는데 저와 감독님은 부산 행사를 찾아가 유가족을 뵙고 영화로 만들겠다고 허락받았어요. 흔쾌히 허락하셨고 잘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제가 박종철 열사 고등학교 후배잖아요. 가장 강력한 악역을 한다고 했더니 최선을 다해서 해달라고 하셨고 박종철 열사의 형님은 오히려 마음고생이 심하겠다며 걱정하시더라고요. 감사했죠.

   
 

Q. 무거운 시대적 소재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A. 소재의 무거움에 대한 부담은 결국 완성도였어요. 얼마나 좋은 영화로 만들어내느냐, 딱딱하기만 하고 극적인 재미가 없으면 누가 보겠어요. ‘1987’은 아주 영리한 구조적 선택을 잡았고 그 반응을 보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실제 당시 신문 1면에 실린 ‘탁 치니 억’이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톤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A. 첫 테이크에서 나온 게 가장 자연스러웠어요. ‘탁치니 억하고 죽었습니다’라는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어요. ‘탁치니 억’까지 말하고 동의를 구하는 듯 혹은 압박하듯이 바라보는 게 다들 좋다고 했어요. 웃기는 이야기죠. 난센스 중에 난센스였어요. 그 시대의 기가 찬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Q. 본인을 비롯해 실제 사건과 관계있는 배우들이 영화에 출연했다.

A. 박종철 열사의 후배인 오달수 씨는 크랭크인을 하고나서 어떻게든 작은 역이라도 하겠다고 했어요. 우현 씨 같은 경우는 당시 이한열 열사와 같은 현장에 있었어요. 시위가 끝나고 분실물을 찾아가는 시간이 있대요. 시위하다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고 당시를 추억하시더라고요.

Q. 영화를 촬영하면서 3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니 어떤가.

A. 잊고 있었던 소중함이 많았다는 걸 느꼈어요.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할 거예요. ‘저렇게 뜨거웠던 적도 있었지’라고 생각할 수 있고 미안함도 있고 만감이 교차하는데 지금의 20대들은 촛불을 겪었는데 30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면 의미가 있을 거예요. 저보다 윗세대는 더 많은 항쟁들을 겪었죠. 저는 20대에 그런 일을 겪었는데 우리나라 역사는 발전하고 있는 거죠. 동시에 바뀌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어요. 아직도 학생들은 대입에 목매달고 있고. 대학을 졸업한다고 직장이 구해진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저도 아이가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수능날은 항상 한파가 있고 이번에는 지진까지 있었잖아요.

Q.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A. 부하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마음에 들어요. 부하들 앞에서 ‘내래 니들 총알받이가 되갔어’라고 말하면 카메라가 쭉 빠지면서 촬영하는데 기술적으로 어려운 장면이었어요. 끊기지 않고 나와서 좋더라고요. 그리고 부하들이 ‘멸공’이라고 외치는데 사실 무서운 구호인데 지금 보면 웃기죠. 그리고 ‘받들겠습니다’라는 말도 하면서 웃겼어요. 박희순 씨가 그 대사를 자주하는데 현장에서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받들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무서운 말이었는데 지금은 아이러니하게 웃긴 말이 됐죠.

Q. 배우로서 캐릭터에 대한 사명감은 어떤 것이 있었나.

A. ‘타짜’나 ‘황해’ 속 캐릭터는 개인적이잖아요. 캐릭터를 어떻게 극대화 시키는지를 신경 쓴다면 이번에는 조직, 권력에 대한 상징이라서 개인의 캐릭터보다 이 인물을 통해 심어놓은 권력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뒤틀린 신념을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어 했고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Q. 김윤석은 관객들이 믿고 보는 배우다. 지금까지 신뢰를 쌓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장준환 감독의 말을 빌리면 ‘어떻게 항상 0부터 시작하느냐’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가고 경력이 쌓이면 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SF영화를 만들어 준다면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죠. 한국 영화의 장르가 풍성해질수록 우리 스스로도 더 많이 풍성해질 수밖에 없어요. 했던 것만 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 되는 거죠. 개인이 아니라 함께 발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다양성에 대한 목마름은 언제나 있죠. 아쉬운 건 외국의 배우들은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역할을 하시는데 우리도 이야기가 좀 더 확장돼서 멋진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해요. 저는 로맨틱 코미디를 의외로 좋아해요. ‘러브 액츄얼리’는 볼 때 마다 설레죠. 캐릭터가 파괴되고 몸을 웃기는 거 말고 일반적인 상황으로 주는 코미디를 좋아해요. 보고나면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작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