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 인터뷰] ‘미옥’ 김혜수 “여성 중심의 영화, 유의미한 시도”
[NI 인터뷰] ‘미옥’ 김혜수 “여성 중심의 영화, 유의미한 시도”
  • 승인 2017.11.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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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의 움직임은 보이지만 아직은 남성 중심의 영화가 범람하는 충무로에서 김혜수는 독보적인 존재다. ‘타짜’, ‘도둑들’, ‘관상’, ‘차이나타운’, ‘굿바이 싱글’ 등 그녀는 분량과 역할에 상관없이 진한 인장을 남긴다.

가을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진 ‘미옥’도 마찬가지다. ‘차이나타운’을 통해 강력한 느와르 연기를 선보인바있는 김혜수는 ‘미옥’에서도 대체불가의 존재감을 발휘한다. 비록 영화는 전개나 표현 방식에 있어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녀만의 아우라를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미옥’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관계의 밀도가 촘촘히 쌓여서 전달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리고 김여사나 웨이의 연대가 있는데 그런 관계들에 힘이 실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도 있고요. 연기하는 사람과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는 감독님과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어느 한 쪽이 옳고 그른 건 아니죠.”

‘미옥’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픈 조직의 언더보스 나현정(김혜수 분)과 조직의 해결사 임상훈(이선균 분), 검사 최대식(이희준 분) 세 사람의 욕망과 전쟁을 그린 느와르다. 영화는 시작부터 높은 수위의 정사신이 펼쳐진다. 현정이 조직을 강화하고 방해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다소 자극적이고 여성 느와르를 표방하는 영화치곤 여성에게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이에 관해 김혜수는 “현정이 하는 일을 소개하는 장면이라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를 표현하고 다루는 건 연출자의 몫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영화는 모성애로 귀결되는 다소 진부한 전개로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혜수는 “연기할 때 ‘엄마’라는 건 전제하지 않았다. 모성애를 의식하는 순간 그런 연기를 준비하게 돼서 연상되지 않게 의도적으로 배재했다”고 선을 그었다. 김혜수는 몇 차례 ‘미옥’은 모성이 아닌 욕망과 관계의 이야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전형적인 느와르의 장점과 미덕이 느껴졌어요. 관계에 있어 밀도가 느껴졌고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는 것들, 배신과 오해, 복수들이 얽혀 파국으로 치닫는 게 있었죠. 그들의 욕망을 보면 우선 상훈의 욕망은 현정이에요. 현정은 모든 걸 버리고 떠나고 싶은 욕망이 있죠. 그러한 지점들이 마음에 끌렸어요. 현정이 모든 걸 떠나고 싶어 하는 욕망에 모성애가 대전제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이 사람의 욕망에는 모성이 개입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를 학습할 기회도 없고요.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 속에 아이가 들어온 것으로 저는 받아들였어요.”

   
 

조직을 위해 직접적으로 몸을 부딪치며 싸우는 건 상훈이지만 후반부에는 현정의 액션도 몰아친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본격적인 액션에 도전한 김혜수는 짧은 백금발에 화려한 코트를 입고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액션은 팀이 워낙 훌륭해서 잘 따라갔어요. 액션에 대한 만족도를 보자면 스스로 걱정했던 것에 비해 무난하게 한 것 같아요. 좋았던 장면은 최검사를 두고 수조에서 한마디 하는 게 있는데 쾌감이 있어요. 현장에 여성 스태프들이 많은데 좋아했어요. 실제 여성들이 쉽게 표출할 수 없는 것이니 카타르시스가 분명 있죠.”

영화는 현정, 상훈, 최검사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됐지만 현정에게는 조력자 김여사(안소영 분)와 웨이(오하늬 분)의 연대도 그녀의 캐릭터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982년 영화 ‘애마부인’으로 데뷔한 안소영은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존재감을 뽐낸다.

“안소영 선배를 만나서 굉장히 반가웠어요. 모니터를 통해 볼 때 떨림이 있었어요. 선배님을 못 본 사이에 흘러간 세월이 느껴짐과 동시에 눈은 너무 깨끗해서 좋았어요. 배우들이 다들 감탄하면서 봤어요. 선배님도 영화하면서 행복해 하셨어요. 굉장히 순수하신 분이에요. 다른 영화에서도 자주 뵙고 싶어요. 실제로 김여사와 현정, 웨이 간의 관계가 있어요. 동일선상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조력자이고 내밀한 애정이 있죠. 서로를 지켜주고 싶다는 건 본인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투영된 거예요. 웨이 캐릭터는 시나리오 상으로는 더 많은 게 있어요. 오하늬가 못했다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 좀 더 부각시켰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는 거예요. 김여사, 웨이와 현정, 세 여성들과의 끈끈함과 애환, 연대감이 있어요. 인물들이 더 드러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죠. 이를 테면 ‘여성이 총질하고 액션하고 담배를 피우는 것만이 느와르가 아닐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미옥’이 여성 느와르의 성공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는 영화계의 흐름에는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 김혜수는 남성 중심의 영화가 상업적으로 유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시도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체감할 정도의 변화는 아니지만 시도가 느껴지는 건 분명 있어요. 예를 들면 ‘미씽: 사라진 여자’ 같은 영화처럼 여성이 주체가 되는 작품이 있었고. ‘용순’이라는 영화도 잘 봤는데 작고 평범한 첫사랑을 디테일하게 잘 다루고 저변에 깔린 감정도 잘 살렸어요. 주목하고 응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계속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른 방식의 목소리를 내는 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도에서 그치지 않고 화두로써 이야기할 만한 성과들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유의미하죠.”

그동안 거쳐 온 작품과 미디어에 노출된 그녀의 모습에는 항상 ‘당당함’과 ‘카리스마’가 따라 붙는다. 김혜수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이미지에 관해 그는 “그런 이미지는 어쨌든 순간적이고 시각적인 거다. 하는 일이 배우라서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거나 최근 작품들 때문에 강화됐을 수 있다. 그런데 초지일관 사람이 그럴 순 없다”며 따뜻한 웃음을 보였다.

한편 ‘미옥’을 개봉한 김혜수는 차기작으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협상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준비 중이다.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강영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