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군함도’ 이정현 “축복받은 경험, 촬영하며 입은 상처마저도 소중해”
[인터뷰] ‘군함도’ 이정현 “축복받은 경험, 촬영하며 입은 상처마저도 소중해”
  • 승인 2017.08.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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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가녀린 팔과 작은 어깨가 더욱 앙상하게 메말라있었다. 이정현은 영화 ‘군함도’에서 위안부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군함도까지 끌려가게 된 말년을 연기했다. 이정현은 위안부 여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체중을 36.5kg까지 감량했다.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말년은 눈에는 독기가 서려있다. 견디기 힘든 수모와 고초를 겪은 그녀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종로 최고의 주먹 최칠성(소지섭 분)에게도 밀리지 않는 강인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소녀들에게는 따뜻한 언니이자 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일본이 부정하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문제를 다루는 ‘군함도’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연기했다. 게다가 영화는 제작비 220억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어느 하나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정현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투혼을 발휘했다. ‘군함도’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소지섭의 말을 빌리자면 ‘포스’가 넘쳤다.

‘군함도’를 함께한 모든 배우와 제작진이 그렇겠지만 이정현은 특히 현장에 흠뻑 젖어있었다. 인터뷰에서 만난 이정현은 촬영하며 입은 다리의 상처를 훈장처럼 여기며 천천히 치료받을 만큼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Q. 말년의 입을 통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들이 나온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어땠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위안부 피해자 역이라고 했는데 역시나 류승완 감독님의 여성캐릭터는 강하더라고요. 그게 좋았어요. 항상 당하고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말년은 소희에게 엄마 같은 존재고 조선 소녀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예요. 큰 힘을 주는 맏언니 역이고 총도 쏘니 너무 멋있었어요. 그런 역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어요. 책임감 있게 연기하기 위해서 위안부 관련한 다큐는 다 섭렵했어요. 다이어트를 한 것도 사실 감독님은 남자배우들에게만 주문했는데 다큐멘터리를 보니 실제 피해자분들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수난을 당해 항상 말라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을 찾아가 갈비뼈가 보이면 어떨까 제안했어요. 감독님이 좋다고 하면서 미안해 하셨죠. 저도 배우로서 책임감을 다하고 사실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현장을 가보니 너무나 완벽한 세트장이 있고 조·단역까지 완벽하게 연기를 해서 자연스럽게 저도 말년이 될 수 있었어요. 다이어트를 위한 식사차량이 따로 있었어요. 다 같이 동참해서 자연스럽게 뺐죠. 현장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Q. 36.5kg까지 살을 빼면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다.

가끔 어지럽긴 하지만 워낙 식단이 잘 되어 있었어요. 야채와 단백질 위주로 탄수화물만 줄인 식단이에요. 그래서 신체적으로 무리는 없었어요. 다만 현장 에너지가 대단하고 힘들었어요. 다들 열정이 넘쳐서 본인 신이 아니라도 나와 있었어요. 저도 촬영 끝나고 안 돌아가서 감독님이 제발 가라고 할 정도였어요. 다들 하나가 되는 게 좋았어요. 황정민 선배님이 없었다면 이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을까 싶어요. 다들 촬영 마치면 영화 이야기만 했어요. 다들 영화에 미쳐있었죠. 현장에 집중하기 너무나 좋은 환경이었어요. 축복받았죠.

   
 

Q. 시나리오를 받아서 처음 읽었을 때와 촬영을 하면서 달라진 것들이 있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유곽에서 말년이 칠성에게 하는 대사가 너무 슬펐어요. 그 대사를 읽으면서 울었어요. 대본 리딩 때 제가 느낀 그대로 슬프게 표현했어요. 다들 보면서 울컥했다고 그랬어요. 이후 어느 날 감독님이 강혜정 대표와 다큐를 봤는데 너무 울면서 봤다며 보내주신 게 있어요. 북한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가 증언한 건데 너무 잔인한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담배피우면서 말하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감독님이 말년의 연기를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그러셨어요. 감독님의 디렉션 중에 좋았던 부분이 웬만하면 사실을 담으려고 노력하신 점이에요. 불편한 진실이지만 단순히 한국은 착하고 일본은 나쁜 게 아니라 그 안에서도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셨어요. 이분법으로 나눠 찍는다면 영화가 쉽고 다들 보며 눈물도 흘렸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건 용기 있는 선택 같아요.

Q. 말년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어떤 준비들을 했나.

의견을 다양하게 냈는데 가장 큰 건 체중감량이에요. 그 외에도 사투리도 제안했어요. 그리고 영화에는 편집됐지만 유곽에서 칠성과 대화 도중 노래를 읊조리는 부분이 있는데 곡을 함께 골랐어요. 촬영 내내 말년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힘겨운 현장에 매일 가고 싶었고 촬영 마쳐도 집에 가기 싫었어요. 현장이 너무 좋았어요. 모든 촬영을 마치고 다들 집에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 말이 슬펐어요. 저에게는 큰 선물이에요. 축복받은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었고 사람을 얻은 게 너무 행복해요.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강혜정 대표님 등 큰 선물이에요. 동지애가 이렇게 넘치는 현장은 없었을 거예요. 가장 큰 역할을 해준 건 황정민 선배님이죠. 현장에서 감독님은 100가지 이상을 결정한다고 해요. 촬영시간도 넘기면 안 되고 백 명, 이백 명되는 조·단역 카메라 워킹도 담아야 하고 미치셨을 거예요. 혼자 통솔하는데 한계가 있을 텐데 그때마다 정민 오빠가 나서서 정리했어요. 이래서 감독님이 황선배, 황선배 하는구나 생각했죠.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황정민 선배랑 하고 싶어요. 진짜 너무나 멋진 배우 같아요.

   
 

Q. 캐릭터에 몰입하는 힘이 남다른 것 같다.

책임감이에요. 저 때문에 망치는 게 너무 싫어요. 그게 너무 두려워서 집중했던 것 같아요. 경력이 쌓이면서 여유도 생긴 것 같아요. 조바심 같은 것도 이제 없고 정말 즐길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해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즐기면서 촬영했고 ‘군함도’ 같은 현장도 즐기지 않았다면 끔찍했을 거예요. 현장이 너무나 행복하고 좋았고 이는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했어요. 마음의 여유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화면에 잘 걸리지 않는 단역들의 연기도 좋았다. 모두가 한마음처럼 보였다.

감독님을 시작으로 다들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무사히 끝나지 않았나 싶어요. 무엇보다 조·단역 분들이 정말 대단하세요. 영화 보시면 알지만 저는 단역 분들밖에 안보이더라고요. 화면 구석에 걸려도 정말 열심히 연기하세요.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수백 명이 하나가 됐어요. 너무나 대단한 경험이었어요. 완벽한 현장에서 나오는 긴장감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현장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떠올리면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군함도’를 찍으면 생긴 몸의 상처들도 너무 뿌듯해요. 일부러 천천히 없애려고 치료도 띄엄띄엄 받았어요(웃음).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