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하루’ 김명민 “돌아가고 싶은 순간 없어…후회들 쌓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
[SS인터뷰] ‘하루’ 김명민 “돌아가고 싶은 순간 없어…후회들 쌓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
  • 승인 2017.06.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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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는 스타일은 아닌데 잘 풀어나간 것 같아요. 타임루프라는 소재는 시나리오가 잘 짜여도 영화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은데 잘 만든 것 같아요.”

의사, 마에스트로, 장군에 대통령까지 각기 다른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던 김명민이 이번에는 딸을 살리기 위해 지옥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아버지로 돌아왔다. ‘타임루프’라는 독특하면서도 흔한 소재를 이용한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의 완성본을 본 김명민은 나름의 만족을 표했다.

“지루하지 않다는 게 차별점이에요. 구성이 기가 막히게 잘 짜여있어요. 이전에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석연치 않은 부분들을 남겨놨다면 우리 영화는 왜 하루가 반복되는지 명확하고 인물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유기적으로 이어져있어 지루할 틈이 없죠. 분명 다를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하루’는 매일 눈을 뜨면 딸이 사고를 당하기 2시간 전을 반복하는 남자가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를 만나 비밀을 추적해 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기존에 숱하게 사용된 타임루프라는 장치를 이용하지만 짜임새 있는 전개에 명연기를 더해 관객들에게 쌓일 수 있는 지루함과 피로도를 제거했다. 비행기 안에서 깨어나며 하루를 반복하는 김명민은 눈을 뜨는 짧은 순간에도 다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촬영한 신이에요. 장소와 시간적인 한계도 있고 어차피 앉아서 촬영하는 건데 몇 번씩 와서 찍을 필요는 없었죠. 힘든 건 알지만 찍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 전날 계산 아닌 계산을 철저하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걱정됐어요. 불과 2~3초로 준영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니 고민이 많았죠.”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만큼 더욱 많은 계산이 필요했다. 현장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잡아갔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명민은 이번에도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 욕심이 들어가면 과장된 연기를 하게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는 작은 신을 보기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감정을 쌓아갔다.

“현장 모니터링을 잘 안 해요. 아예 안한다고 봐도 무방해요. 모니터를 보게 되면 딱 제가 찍은 컷만 보잖아요. 신도 아니고 내 컷, 내 장면. 그러면 욕심이 생겨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힘이 들어가고 연기를 과장하게 되죠. 전체적인 그림을 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안 봐요. ‘하루’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이에 맞춰 연기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특히 반복되는 장면이 많은 만큼 머릿속으로 철저하게 계산을 했죠. 예를 들면 타임루프마다 키워드를 정했어요. 첫 번째 타임루프 때는 ‘혼란’을 생각했어요. 눈을 뜨고 천천히 현실을 인지하죠. 다음에는 ‘절박하게’를 키워드로 생각했어요. 그 다음 타임루프는 ‘절망’이에요. 이후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전략을 짜죠. 그런 과정들을 키워드로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촬영에 들어갔죠. 그래서 몇 번째 타임루프를 촬영한다고 하면 키워드에 맞춰 감정을 끌어 올렸어요.”

김명민은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이어 영화 ‘하루’에서도 변요한과 호흡을 맞췄다. ‘육룡이 나르샤’ 촬영 중 김명민은 직접 변요한과 ‘하루’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김명민의 러브콜에 응한 변요한은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 민철 역으로 극을 함께 이끌어 간다.

“요한이에 관해서는 좋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 열정이 넘치고 힘이 장사예요. 멱살 잡히는 신은 힘든 신으로 손꼽히죠(웃음). 요한이의 패기와 열정이 영화에 보이니 좋아요. 당하는 입장에선 힘들지만 그게 맞는 거죠. 대충 잡고 흉내만 낸다면 다 티가 나요.”

   
 

변요한에게 열정이 넘친다며 한동안 칭찬을 이어가던 김명민은 자신을 향한 극찬에는 부담스러운 듯 몸서리를 쳤다. 오랜 기간 대중들에게 연기력을 검증받은 김명민은 발성과 발음은 배우의 기본이라며 지금도 매일 아침 발성 연습을 하고 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관해 묻는 말에 그는 안주하지 않고 창조적인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며 열정을 내비쳤다.

“창조를 안 하는 건 배우가 숙제를 안 하겠다는 거죠. 선배 배우들이 항상 그런 말씀하세요. 이순재 선배님께서 배우는 항상 창조를 하라며 창조 작업이 끝나면 배우는 끝이라고 하셨어요. 아직까지 저에게 그런 순수함은 남아있었어요. 작품을 볼 때 편한 것을 생각하는 건 없어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느냐는 물음에 김명민은 영화 속 준영과 달리 고개를 저었다. 김명민은 “후회되는 시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다”며 “과거를 바꾼다면 지금의 내가 더 건방지고 교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적당히 고생하고 돌고 꺾이면서 지금까지 왔다는 김명민은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며 소신을 밝혔다.

“저는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싫어요. 배우 생활을 시작할 때 많은 배우들에게 인정받고 대중에게 인정받는 자리에 갔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목표를 세울 때가 있었어요.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인데 언제까지 배우생활을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다칠 수도 있고 뜻하지 않는 일에 휩쓸릴 수도 있죠. 한순간에 사장되는 배우를 보면 안타까워요. 저도 같은 배우로서 항상 불안감이 있어요. 다른 직업의 사람들과 다르게 실수를 저지르면 곧바로 아웃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장 빛나고 인정받을 때 떠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대중들이 김명민을 찾지 않고 나라는 사람이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인지되기 전에 떠나겠다는 거죠.”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