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귓속말’ 권율, 매 순간이 터닝 포인트다
[SS인터뷰] ‘귓속말’ 권율, 매 순간이 터닝 포인트다
  • 승인 2017.05.3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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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고 맑은 얼굴인줄 만 알았는데 악역도 꽤 잘 어울린다. 권율은 최근 종영한 SBS ‘귓속말’에서 금수저에 타고난 엘리트지만 방해가 된다면 법을 위반하는 것은 물론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강정일 역을 맡았다.

권율은 극 초반 냉철한 판단력과 차가운 카리스마를 가진 강정일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아버지의 죽음, 사랑, 우정 등을 잃고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는 강정일을 만들어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권율 개인적인 호평 뿐 아니라 ‘귓속말’은 동시간 대 1위를 유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배우들이 시청률 수치에 대해 일희일비하면 안 되니까 의식을 안 하려고 해요. 어찌됐건 함께한 작가, 감독, 스태프에게 수치상으로나마 마음의 보상 위안 받아서 감사하고 행복해요. 모두 고생했다고 해주고 싶어요. 행복했어요.”

   
 

이번엔 금수저 출신 악역을 했지만 악역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작인 ‘싸우자 귀신아’에서는 악귀가 들린 교수, 단막극에서는 악마적 성향을 가진 일류 지상주의자로 분했다. 선한 인상 속에서도 악역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역으로 ‘저런 얼굴을 한 친구가 저런 걸 하네’라면서 칭찬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어요.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절실하게 절박하게 강한 에너지를 가지려고 노력을 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비주얼적으로 어떻게 나오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흉한 얼굴을 원한 건 아니지만 두려움 없이 마음껏 압도감, 긴장감을 끌고 갈 수 있게 모든 것을 몰아세웠죠. 감독님한테도 오른쪽 얼굴을 찍어 달라고 했어요. 오른쪽 얼굴은 익숙하지 않지만 두렵지 않았어요. 전에는 머리를 올린 적도 없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콤플렉스를 과감히 드러내고 낯섬, 강력한 에너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쁘지 않은 얼굴이 드러나는 것은 가벼운 콤플렉스고 감출 수 있던 부분을 가감 없이 드러냈어요.”

박경수 작가 드라마 속 인물들은 착하거나, 나쁘거나로 나뉘어있지 않다. 선과 악이 공존한다. 권율이 분석한 강정일 역시 나쁘기만한 단순한 악역은 아니었다. 스스로도 강정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1~16부까지 입체적 역할이었는데 제게는 훨씬 많은 걸 표현하는 자양분이 됐어요. 강정일의 목표에 돌진하면서 강정일 나름 대응을 해요. 의도적으로 먼저 가만히 있는 사람 때리는 것은 아니죠. 누굴 괴롭히기 위해 탄생한 역할이 아니니까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스스로 이해한 후에 시청자에게 자신 있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의심하고 연기하는 순간 관객은 더 쉽게 눈치 채니까요. 100의 이해도가 필요할 때 제가 200~300을 해야 관객들은 97이라도 봐줘요. 300~400까지 가기 위해 다른 작품보다 쉽지 않았어요. 허구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한 부분이잖아요. 오죽했으면 저랬겠나? 생각하면서 연기하는 게 의무이고 직업정신이란 생각이 들어요.”

여러 사람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지만 권율은 기사나 댓글은 많이 확인하는 편이 아니란다. 좋은 말만 듣고 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지인, 가족들을 통해 반응을 확인한다고. 악역을 연기하는 아들을 둔 부모님은 강정일의 편이었을지도 궁금했다.

“안 좋은 글을 보면 사람인지라 속상하기도 해요. 일희일비 하지 않아요. 반응도 신경 쓰지 않고요. 대신 집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면 반응을 알 수 있어요. 좋아하세요. 많은 분들이 아들 잘 보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다른 작품보다 더 좋아하신 것 같아요. 부모님이 강정일 편이었냐고요? 어머니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빠져나오니까 박수를 치시던데요. 아버지가 ‘그러면 안 된다. 좋아하면 안 된다’고 하세요(웃음). 강정일 빠져 나와서 좋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드라마니까요. 실제 강정일이 궁지에 빠져 나오면 좋아하실 분들은 아니에요.”

   
 

2008년 영화 ‘비스티 보이즈’를 시작으로 여러 편의 영화,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렇게 연기를 한 게 어느덧 10년이 됐다. 그 사이 모두가 알 법한 히트작에 출연하고 또 인상깊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의 사무관님 이상우 ‘싸우자 귀신아’ 악귀 주혜성 영화 ‘명량’의 이회, ‘최악의 하루’ 찌질 남친 현오 등을 연기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어요. 배우는 누군가에게 선택, 평가 받는 직업이잖아요. 선택 평가 받을 기회가 없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 시간이 괴롭고 없었으면 좋겠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이 제게는 가장 든든한 무기이면서 큰 칼이 됐죠. 마치 훈장처럼 남아있어요. 저보다 힘든 사람과 비교하는 게 아닌, 제 나름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감사하고 소중한 거죠. 계속 일한 시간도 소중하지만 더 소중하다. 지난 10년이 어떤 가능성이 있는 배우인지 봐달라는 시간이라면 앞으로 10년은 제게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할 배우인지 봐달라, 마음을 봐달라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요. 수십번, 수백번의 오디션을 보고 떨어진 것도 많아요. 못한 것도 많고요. 안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작품 인연이란 것은 내가 발버둥 친다고 되는 게 아니고요. 이 배역을 만나려고 다른 작품이 안됐구나 생각이 들어요.”

몇 개월 간 강정일을 만나 공부를 하고 성장했다. 강정일 뿐 아니라 그동안 작품을 해온 그 시간이 권율에게는 어떻게 남아있을까?

“끝난 후에 돌아보면 성장통이 느껴져요. 제가 가는, 만들어 가는 필모그래피가 만족스러워요. 앞으로도 더 절실하게 절박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내가 열심히 하면 필모그래피는 예뻐지고 허투로 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예뻐지지 않는 거예요. 의도적으로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지금 이 시간을 잘 삼아서 다음에 찾아올 새로운 모습도 기대해주세요. 저는 언제나 이 작품이 가장 큰 기회고 터닝 포인트, 캐릭터 작품이라고 매순간 임해요. 다음 작품에서도 터닝 포인트가 되고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게 준비할래요.”

[스타서울TV 이현지 기자/사진=사람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