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역적’ 이하늬 “인생연기? 감사하지만 의연하고 꿋꿋하게 갈래요”
[SS인터뷰] ‘역적’ 이하늬 “인생연기? 감사하지만 의연하고 꿋꿋하게 갈래요”
  • 승인 2017.05.29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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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몇 마디 말에도 깊이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이하늬가 그랬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만큼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인터뷰 분위기를 유연하게 이끌어나간 이하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연기에 대한 열정, 자신이 진정 추구하는 삶 등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과 치열한 고민들이 묻어났다.

2006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되며 연예계에 발을 들인 이하늬는 2009년 드라마 ‘파트너’로 본격적인 연기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어느덧 연기 생활 9년차인 이하늬는 대부분 작품에서 주연을 도맡아 왔지만 그 흔한 연기력 논란 한 번 없이 안정적인 연기를 이어오며 최근 종영한 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을 통해 드디어 ‘인생 연기’라는 시청자들의 극찬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호평을 해주실 때도 의연하게 지나가야 하는 것 같고, 혹평을 해주실 때도 의연하게 지나가야 할 것 같아요. 배우는 늘 두 가지 반응이 교차할 수 밖에 없는 것 같거든요. 언제나 잘할 수 없고, 언제나 못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삶을 사는 것도 똑같잖아요.(웃음) 제 안에서의 순수한 열정, 배우로서 뭘 하고 싶고, 뭘 말하고 싶고, 뭘 말해야 하는 지 같은 본질적인 것에 다가가려고 노력해요. 처음부터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보다는 본질적인 것을 놓치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많이 생각했었어요. 본질을 흐트리는 것에는 귀 기울지 않겠다는 생각이요. 그래서 의연하게, ‘인생연기’라는 칭찬에는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지만 꿋꿋하게 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약 6개월 여의 시간 동안 ‘역적’ 속 장녹수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이하늬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떠나보냄에 대한 아쉬운 마음 등을 털어놨다.

“녹수는 굉장히 진취적인 캐릭터였어요. 표면적으로 보면 욕심이 많다고 하지만 단면적이지 않거든요. 정말 열정이 많고, 물론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 욕심이 많은 사람이기도하지만 못지 않게 사람에 대한 사랑도 많은 인물이에요. 그래서 저는 녹수가 연산에게 가졌던 감정이 단면적으로 욕망, 자신의 입신양명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연산을 바라보는 녹수의 마음 안에 사랑도 있었을 것 같고, 처음에는 권력욕으로 시작했지만 끝으로 갈수록 빛깔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아요. 이처럼 녹수라는 인물이 복합적이라서 연기 할 때는 어려웠어요. 어떻게 보면 뭉뚱그린 감정이 많았기 때문에 깊이가 필요했었고 감정, 감성의 스펙트럼이 필요했었어요. 많이 고민했었죠.”

역대 드라마에서 장녹수는 이미연, 박지영, 강수연 등 많은 여배우들이 거쳐갔던 역할이었다. 때문에 이하늬에게 자신만의 녹수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는지 물었지만, 이하늬의 대답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예인 장녹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에 대한 부담이 컸어요. 이미 어느정도 행보가 예상되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던 만큼, 어마무시한 전사를 가진 장녹수가 그걸 내려놓고 갈 만큼의 원동력이 뭘까. 관기 출신의 여자가 신분 상승을 했던 데에는 본인의 삶을 상승시키고자 하는 치열한 투쟁이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아주 깊은 슬픔의 감정부터 시작해서 울과 화를 가지고 많은 쟁취를 하고 살아갔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아야 했기 때문에 선배 분들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내 앞의 공화를 어떻게 표현할까가 화두였던 것 같아요. ‘예인의 장녹수를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춤, 음악과 합쳐져서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정말 컸었죠.”

   
 

‘역적’ 속 장녹수가 이하늬에게 ‘인생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하늬의 전공에 있다. 국악을 전공했던 덕분에 직접 가야금, 소리, 승무, 장구춤 등을 모두 깊은 내공으로 소화해 내며 진짜 ‘예인’의 모습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다양한 것들을 보여드리기 위해 굉장히 치열하게 준비했었어요. 제가 사실 성실함의 에너지가 많이 부족했는데, 악기를 하면서 그 에너지를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악기를 한다는 것은 혼자 하는 고독하고 치열한 성실함과의 투쟁이거든요. 이번 작품은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게 제가 ‘역적’ 미팅도 하기 전에 한국 무용과 판소리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로 선생님을 모셔서 배우고 있었거든요. 어떤 작품을 하면서도 조금씩 연습하고 배우면서 병행해 왔었는데 그 와중에 ‘역적’ 미팅을 하게 된거죠. 그런 식으로 우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마치 ‘역적’을 위해서 제가 모든 것을 준비해 왔던 것 처럼 됐어요.(웃음) 만약 작품에 들어가게 된 시점부터 부랴부랴 준비를 했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준비해왔던 덕분에 큰 도움이 됐었죠.”

고마운 것도, 배운 것도 많은 ‘역적’이었지만 한 가지, 체력적인 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하늬는 “괜찮지 않더라”고 미소를 지었다.

“끝에는 체력이 정말 괜찮지 않더라고요. 가채를 쓰고 연기를 했는데, 가채 때문에 어깨에 눈이 쌓이는 고통이었어요. 처음에는 괜찮다 싶었는데 이게 2~3달이 지나고 나니 가채를 얹기만 하면 목이 꺾일 지경인거에요. 극심한 두통과 근육통 때문에 잠이 안와서 진통제까지 먹으면서 연기를 했었어요. 요추까지 아팠어요. 특히 제가 가야금을 오래한 탓에 평소에도 자세 교정을 해야 하는 편인데 거기에다 무거운 가채를 얹다보니 새벽이 넘어가면 목을 부여잡으면서 촬영을 했었어요. 하지만 이걸 하면서 ‘bittersweet’의 의미를 알게됐어요. 힘들면서도 즐거운 감정이요. 그걸 이해하기 까지 오래 걸렸지만 그런 부분들이 역적을 통해서 많이 배운 부분인 것 같아요.”

이처럼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장녹수에서 이하늬는 아직 완벽하게 빠져나오진 못한 모습이었다. 이하늬는 녹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할머니와의 일화를 통해 설명했다.

“아직은 (역할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한 것 같아요. 이런 감정이 마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나다가도 안나는 것 같고 슬픈것 같다가도 안 슬픈 것 같은거에요. 그런데 어느날 낙엽이 떨어지는 걸 하나 보고 펑펑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울었던 것 같아요. ‘역적’도 마찬가지고  세트장에 가야 할 것 같고 하는 마음들이 앞으로 문득문득 생각이 계속 날 것 같아요. 지금도 같이 했던 배우들은 뭐하고 있을까 싶고, 정말 목숨을 바쳐서 이번 작품을 하셨다고 생각하는 감독님과 작가님은 이 빈공간을 뭘로 채우고 계실까 싶기도 해요.”

   
 

작품을 마친 지금은 가족과 함께하는 가야금 합동 공연 준비로 또 다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하늬는 연기면 연기, 음악이면 음악, MC면 MC 등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은 면이 없어보이는 배우다. 이같은 말에 이하늬는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서 가능한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

“양면이 항상 공존하는 것 같아요.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할 수 없고, 완벽한게 좋은가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요. 완벽해도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고, 연기도 나무랄 것 없는데 매력이 없을 수도 있는거죠. 저는 투박하고 완벽하지 않음에서 오는 매력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예민하게 하고 싶어도 잘 안되고요.(웃음) 내려 놓는 데에서 오는 만족과 치열함이 공존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절대로 모든 면에서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게 바로 완벽하지 못할 때도 쿨하게 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그래야지 살겠더라고요.(웃음) 안그러면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 갈 때 쯤 조심스럽게 연인 윤계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2013년 이후 공개연애를 이어오고 있는 5년차 커플인 두 사람인만큼, 결혼에 대한 질문은 피해갈 수 없었다.

“저는 사실 사람에게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에 제가 공부가 늦게라도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데데 마음도 잘 안잡히고 몸도 그렇고 생업도 그렇고 관계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서 어렵더라고요. 그것처럼 부모님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또래 집단과의 관계, 이성과의 사랑까지 모두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 때가 아직은 일하고 연기하는 것에 많은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결혼보다는 연기할 때 인것 같아서 집중하고 있는데, 때가 오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때가 되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열어두고 있어요.”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이하늬는 30대 여배우들의 역할 축소 등에 대한 고충을 묻는 질문엔 “저는 원래 좁았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체감되진 않는다”는 농담 섞인 대답을 내놨다.

“특히나 요즘에는 여배우 작품들이 없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꿋꿋하게 버티는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시간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지만 배우는 기다리는게 일이니까요. 제 모든 걸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작품을 만날 때 까지 저를 잘 비우고 잘 채우는 것도 화두인 것 같아요.”

이제 막 ‘역적’을 끝낸 이하늬는 오는 6월 부터 약 한달 간의 꿀같은 휴식을 보내며 차기작을 준비한다. 이하늬가 앞으로 또 어떤 모습, 어떤 캐릭터로 우리 곁을 찾을지. 그녀의 팔색조 변화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제 당분간은 온전히 저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려고요. 여행을 가보려고 해요. 일 때문에 런던에 가게 됐는데 겸사겸사 그 곳에서 휴식을 하다 오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완전한 외국인, 이방인으로서의 시간을 보내면서 익숨함을 털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오려고요.”

[스타서울TV 홍혜민 기자/사진=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