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생각대로 모두 이뤄진 천우희…“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몰라요” (‘어느날’)
[SS인터뷰] 생각대로 모두 이뤄진 천우희…“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몰라요” (‘어느날’)
  • 승인 2017.04.0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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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한공주’, ‘카트’, ‘곡성’ 등 천우희가 그동안 스크린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하나같이 강렬했다. 하지만 천우희의 실제 모습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스크린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스크린을 벗어난 천우희는 작품에서 보는 것보다 가녀리고 털털하며 유쾌하다.

천우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밝은 역을 맡아 그녀의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하길 바라고 있었다. 본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바람은 ‘어느날’(감독 이윤기)을 통해 반쯤 이뤄졌다. ‘어느날’에서 천우희는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영혼이 된 미소 역을 맡았다. 시각장애인인 미소는 영혼이 되면서 세상을 보게 되며 유일하게 자신을 볼 수 있는 강수(김남길 분)를 만난다.

“처음에 미소 캐릭터를 접하고 식상한 표현이 될까봐 고민이 있었어요. 감독님도 만나 뵙고 남길 오빠와 대화도 나누다 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그려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연기를 할 때도 조금은 다르게 표현하고자 했어요. 관객 분들도 저도 캐릭터가 고루하다는 느낌이 들면 흥미가 생기지 않잖아요. 미소는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발랄하고 친근하게 연기하면서 만들어진 모습이에요.”

   
 

‘멋진 하루’, ‘남과 여’ 등 섬세한 멜로가 돋보이는 연출을 해온 이윤기 감독은 ‘어느날’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멜로가 아닌 서로의 아픔을 바라봐주는 힐링 관계로 설정했다. 그래서 영화 속 미소는 강수를 향해 ‘아저씨’라고 부른다.

“많은 분들이 남녀가 나오니 멜로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는 멜로의 감성이나 러브라인이 없어서 오히려 좋았어요.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톤의 영화가 됐을 거예요. 제작보고회 때도 말씀드렸는데 다양한 규모의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어요. 큰 영화, 큰 감독님만 쫓을 수는 없어요. ‘어느날’ 같은 경우는 남길 오빠가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가 없다’는 말을 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그리고 기존 작품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밝은 모습도 보여드릴 수 있고요. 예전에는 올곧이 저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선택했다면 이번에는 제 팬과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마음에 도전한 부분도 있어요.”

매번 독특한 캐릭터들을 도맡아 연기해 온 천우희는 이번에는 다소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웃는 얼굴로 메인 포스터에 등장한 것도 ‘어느날’이 거의 처음일 정도. 물론 마냥 밝지는 않다. 천우희의 밝은 모습은 극 중 영혼 상태인 미소에게 한정돼 있다. 천우희는 영혼 상태의 미소와 사고를 당해 병실에 누워있는 시각장애인 미소를 함께 연기한다. 천우희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이지만 시각장애인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시각장애인을 만나며 연기를 준비했다.

“예전에 송혜고 선배님이 시각장애인 연기를 할 때도 높은 굽이나 화장 문제로 말이 많았던 걸로 알아요. 사실 그런 모습이 더 일반적이고 당연할 수도 있어요. 저 역시 처음에 쉽게 생각했나 봐요. 누가 뭐라고 보여준 것도 아니었는데 선입견을 갖고 있었어요. 저는 열린 생각을 가졌다고 느껴왔는데 아니었던 거죠. 처음 연기를 도와주시는 분을 만났는데 너무 예쁜 모습을 하고 계셨어요.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생각도 그런데 ‘이런 건 못할 거야’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거죠. 그건 그저 제 기준이고 시선인 거잖아요. 그런 부분을 깨닫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에 관해 잘 아느냐고 물으면 잘 안다고 하지 않아요.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라고 쉽게 말하는데 본인이 아니면 정말로 알 수 없는 거죠.”

   
 

영화는 아픔을 지닌 두 인물을 그리지만 그리 어둡지 않다. 아내를 잃고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 강수도, 아픔을 겪고 의식불명으로 영혼이 되어버린 미소도 ‘아픈 사람은 이래야 해’라는 전형성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잔잔하게 진행되는 영화이니만큼 연기의 수위를 정하는 부분에 있어 감독과 배우 모두 고민이 있었다. 천우희는 진정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연기에 임했고 덕분에 억지스러운 주입식 신파를 피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시각장애인에 관해 분석을 많이 했어요. 공간인지나 오감에 관한 디테일한 묘사를 곳곳에 녹여두고 싶었어요. 물론 작품의 색이나 표현의 방향이 있어서 여의치는 않았어요. 그리고 결말에 관해서도 고민했던 부분이 많고요. 엄마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눈이 처음 보이는 것에 관해서도 표현하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을 생각날 때 마다 메모했던 것 같아요.”

천우희는 2014년 ‘한공주’로 그해 각종 상을 휩쓸며 충무로에 우뚝 섰지만 기다림을 짧지 않았다.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천우희는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한다’며 웃어 보였다. 그녀가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강렬한 캐릭터를 맡을 수 있던 것도 이러한 긍정적이며 대범한 성격 덕분일지도 모른다.

“저는 좀 낙천적이라고 할까요. 무한 긍정은 아니지만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어려운 것들도 좋게 생각하려는 편이에요. 주변에서 이제야 빛을 봐서 힘들지 않느냐고 하는데 저는 이전에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가 있어요. 연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도 받고요. 하지만 그런 건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도 계시고 신체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데요. 저는 작은 것부터 행복을 느끼는 편이에요. 주변을 보면 찍은 작품이 개봉을 안 하는 경우도 있고, 오디션조차 잘 안될 때가 있는데 저는 이렇게 제가 찍은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최근 천우희는 데뷔 첫 팬미팅을 열었다. ‘희소식’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팬미팅은 당초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려 한차례 연기 후 3월에 열렸다. 남성팬보다 여성팬이 훨씬 많은 그녀는 팬미팅에는 남성팬이 생각보다 많이 왔다며 기뻐했다.

“진짜 좋았어요. 팬미팅이 한 번 미뤄져서 긴장도 더 되고 부담도 있었어요. 처음 만나는 자리니까 제 모습에 낯설어하지는 않을까 싶었어요. 만족시켜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얻은 게 더 많았어요. 원래 여성팬이 많은데 팬미팅 때는 남성팬이 40% 정도로 비율이 비슷비슷했어요. 팬미팅 자리는 기분도 좋고 편해져서 장난도 많이 치고 잔망스럽게 굴었던 것 같아요.”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영화계에서 천우희는 그 나이대의 여배우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 자신 만의 영역을 확고히 한 배우 중 한명이다. 어느덧 영화계는 물론 대중에게 신뢰를 주는 배우로 성장한 천우희는 영화계에서 그녀가 가진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경력이 쌓이면 더 좋은 작품을 쉽게 선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적인 부분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여배우의 입지는 할리우드도 어렵다고 들었어요. 그렇다고 가만히 좋은 작품을 기다려야 하는 건지 찾아다녀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제가 조금이라도 미흡하게 보이는 걸 정말 싫어했어요. 마음에 들지 않고 성에 차지 않으면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 확고함이 있었는데 그게 옳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아무것도 안하면 변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배우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열심히 도와야겠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좋은 작품을 많이 찾아서 하고 싶어요. 여자 캐릭터가 소모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들이 많아서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게 기반을 만들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공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곡성’으로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많지 않은 나이에 배우로서 명예로운 기록을 남겼다. 안정적인 곡선을 그리고 있는 천우희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2017년 목표를 묻자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니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내겠다고 답했다. 앞으로 일어날 천우희의 ‘어떤 일’에 기대감을 표한다.

“예전에는 계획을 많이 세웠어요.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는 계획들을 세웠는데 잘 이뤄졌어요. 칸에 가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이뤄졌고 작품도 원하는 대로 잘됐어요. 운 좋게 막연한 것들이 모두 이뤄져서 ‘생각만 가지고 살면 다 이뤄지겠네’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지금은 하루하루 충실한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맡은 바 최선을 다하려고요. 괜히 계속 욕심 부리면 스스로 괴로울 수 있으니 요즘은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어요.”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