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보통사람’ 장혁 “의미부여보다는 먹먹한 감정 공감해주길”
[SS인터뷰] ‘보통사람’ 장혁 “의미부여보다는 먹먹한 감정 공감해주길”
  • 승인 2017.03.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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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배제하고 마치 벽처럼 서있다. 건조하고 느린 말투와 변화 없는 표정으로 인해 심중을 읽을 수 없다. ‘보통사람’에서 장혁은 그 동안 그가 보여주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거역할 수 없는 사회의 시스템을 대변했다.

동선이 거의 없는 최규남을 두고 장혁은 한 평을 벗어나지 않는다며 ‘한 평 연기’라고 말했다. 장혁은 “언론시사회 끝나고 관객들에게 맞을까봐 불이 켜지기 전에 나왔다”며 우스갯소리를 건네 영화 속 최규남과는 상반된 유쾌한 매력을 발산했다.

영화 ‘보통사람’은 1980년대, 보통의 삶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성진(손현주 분)이 나라가 주목하는 연쇄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당초 1970년대를 배경으로 기획된 영화는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1980년대로 배경을 바꿨다.

“전체적인 구성은 같지만 시나리오 느낌과 현장의 느낌은 달라질 수밖에 없죠. 장소가 주는 느낌이 다를 수 있고 상상과 실제로 구현된 것들에 대한 괴리도 있을 테고요. 시나리오는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가 있는데 영화는 그런 가운데에 밝은 모습들이 있었어요.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손현주 형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코미디적인 웃음들이 있었죠. 그런 가운데 마치 마개를 빼고 물이 빨려 들어갈 때와 같은 긴장감이 생기니 리듬감이 있는 것 같아요.”

   
 

장혁이 연기한 최규남은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엘리트 검사로 승승장구 하다 남산으로 넘어와 안기부의 실세가 된 인물이다. 최규남은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사건을 조작하며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강화한다. 그는 자신을 가르쳤던 교수가 시국선언을 하자 직접 찾아가 경고를 남기기도 한다.

“다른 장면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 교수를 찾아가는 신은 감정적으로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그 신마저도 감정이 없었어요. 그런데 바뀌었죠.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당연한 주관이고 신념이었는데 세상을 살다보니 아닌 거죠. 이 국가를 발전시키고 싶은데 힘은 없고, 그래서 힘을 응축시키기 위해 하나하나 쌓아온 것들이 그런 규남을 만든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시련도 있고 답답함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시국선언을 한 교수를 찾아가 ‘이거 교수님이 쓰셨더군요’라며 그 앞에 학생들을 두고 ‘세상을 나가보니 그렇지 않다. 교수가 바뀌셔야 한다’고 감정적으로 말한 것 같아요. 실제로 연영과에서 연기를 배우고 촬영장에 가면 뭔지 모를 벽을 만나게 돼요.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달라요. 예상과 다른 연기를 하는 선배도 연기를 받아주지 않는 선배도 있고 지적을 받기도 하죠. 현장과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어떤 걸 선택하고 어떤 배우가 되느냐는 각자의 몫이죠. 영화 속 규남은 검찰에 들어가고 안기부에 들어가면서 스스로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버린 거죠.”

영화에서는 서로 대립하지만 실제 장혁과 손현주는 송중기, 샤이니 민호, 유해진, 마동석 등이 속한 연예계 사모임 ‘낯가림’의 멤버다. 오랜 기간 곁에서 손현주를 지켜본 장혁은 숱하게 자신의 롤모델로 손현주를 꼽으며 존경을 표해왔다.

“그런 선배가 되고 싶어요. 지금 제가 중간나이가 됐어요. 제가 현주 형을 근 십년 넘게 보면서 느낀 점인데 형 주변에는 저를 포함해서 후배가 많이 따라요. 눈높이를 맞춰주더라고요. 항상 기다려주고 들어줘요. 사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좋아하지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잘 없어요. 특히 배우는 무언가 표현하고 싶어서 배우가 된 사람들인데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잘 들어줘요. 사람으로서 닮고 싶은 롤모델이에요.”

이전까지 장혁은 다양한 작품에서 화려한 액션들을 선보여 왔다. 절권도를 응용한 날렵한 동작들은 그의 시그니처 액션이 됐다. 하지만 장혁은 스스로를 액션 배우라고 말하지 않았다. 액션을 잘하는 건 분명한 자신의 장점이지만 이에 국한되거나 액션을 강조해 캐릭터를 왜곡시키는 일을 지양한다며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도 계속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인데 액션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액션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심지어 액션을 하기 위해서 전문적으로 오래 배워왔어요. 분명 장점이지만 어느 순간 이를 강조하다보면 캐릭터를 없애는 느낌이 들 수 있어요. 예전에는 절권도를 잘해서 이를 보여주기 위한 액팅들이 있었는데 반복되면 캐릭터를 깎아먹는 행동이 될 수 있고 색이 변하는 거죠. 이번에 지인이 우스갯소리로 영화에서 성진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 액션 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캐릭터가 날아가고 영화도 이상하게 흘러가는 거죠(웃음).”

   
 

과거 장혁은 래퍼 TJ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아직까지도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자료화면으로 등장하는 당시 활동은 배우 장혁의 이미지 변신을 위한 프로젝트성 기획이었다. 당시 장혁은 8만 명의 관객이 있는 콘서트 무대에도 섰다. 웅장한 환호성이 온몸을 감싸는 무대 위에서도 장혁은 떨리지 않았고 가수보다는 배우가 자신에게 맞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떨리지 않았다는 건 흥이 없었다는 거예요. 가수가 서는 무대에는 흥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연기는 흥이 나요. 물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는 떨리죠. 카메라가 겁나요. 예전에 영화 ‘감기’로 119소방대원을 맡으면서 한달가량 신입 구조대원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어요. 훈련 거의 마지막에는 산속에 있는 15미터 높이의 전봇대에 올라갔어요. 나무 전봇대 위에 올라가면 전봇대가 막 흔들려요. 그 상태에서 저 앞에 있는 줄을 점프해서 잡아야 돼요. 안전로프가 있는데도 굉장히 공포감이 있죠. 카메라가 그런 것 같아요. 준비가 되어 있으면 정확히 잡을 수 있지만 안 돼있다면 두렵죠.”

영화 속 배경인 1987년, 시민들은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나갔다. 그로부터 30년 뒤인 2017년에도 보통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위해 거리로 나왔다. 시국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시기에 개봉하는 영화에 관해 장혁은 ‘그저 하나의 영화로 즐겨줬으면 한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저 하나의 영화로 편하게 보셨으면 해요. 어떤 색이나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 영화 슬펐어’, ‘영화 좋았어’ 이런 거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먹먹했어요.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감정이 묵직하니 오래가더라고요. 그런 느낌이 공감 됐으면 해요.”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사진= 싸이더스HQ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