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김혜수,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데뷔 30년 차 여배우의 묵직한 내공
[SS인터뷰] 김혜수,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데뷔 30년 차 여배우의 묵직한 내공
  • 승인 2016.06.2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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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는 그 이름 석 자를 자신의 브랜드로 만든 국내 몇 안되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내추럴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음에도 숨길 수 없는 배우로써의 아우라와 사랑스러움이 돋보이는 여자였다.

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철없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톱스타 고주연 역을 맡아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 김혜수는 인터뷰를 통해 ‘고주연’이라는 캐릭터에게서 느끼는 자신과의 동질감을 언급했다.

“이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제 자신이 ‘내 편’이라는 데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여서 너무 큰 공감을 했었고, ‘운명’처럼 받아들였어요. 극 중 고주연처럼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임신을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아주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이 어찌보면 가족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내가 위로받고 나를 지켜주고 있구나’라는 것을 굉장히 크게 느끼게 된 일련의 일들이 있었을 때 시나리오를 받게 돼서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공감을 했었죠”

실제 김혜수는 해당 영화를 ‘운명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주제의식을 강조하고, 웃음을 강조하지는 않는 영화지만 인간 김혜수가 고주연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자신에게 다가온 작품이었기 때문.

이렇게 운명처럼 다가온 영화 ’굿바이 싱글’은 톱스타 고주연이 주변에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 때문에 철없는 ‘내 편’ 만들기에 나서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탔던 고주연처럼 실제 김혜수에게도 외로움이 사무치는 순간이 있을까.

“‘외로움’이요? 사람이니까 늘 있는 고민이고 앞으로도 있겠죠. 하지만 배우여서 더 외롭다 이런 것은 아닌 것 같고, 남들이 볼 때는 군중속의 고독 같은 것이 있으니까 더 외로울 수 있겠다 생각하실수도 있지만 그런 것 보다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외로움이 있는 것 같아요”

   
 

김혜수가 스크린을 찾은 것은 2015년 ‘차이나타운’ 이후 약 1년 만이다.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한 ‘시그널’과는 또 다른 ‘코미디’ 장르에 도전한 김혜수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굿바이 싱글’을 장르 때문에 선택을 한 건 전혀 아니었어요. 이 이야기 자체와 캐릭터가 배우로써 어떤 지점의 매혹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도 충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배우라는 직업이 설정이 되어있긴 하지만 보편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이 좋았기 때문에 선택했죠. 코미디라는 형식을 취한 것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미혼모’라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내보자고 하는 것에 동의를 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만약 ‘코미디’가 저희의 목적이었다면 단지(김현수)라는 캐릭터 설정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웃음을 더 충족할 수 있었을거에요. ‘주연’과 ‘평구’이라는 캐릭터를 조금 더 움직여도 크게 무리가 없었을 텐데 그것을 무겁지 않게 다루자는 데 의견을 모았기 때문에 코미디 장르로 영화가 흘러간 거죠”

실제 김혜수는 ‘굿바이 싱글’의 시나리오를 무려 3년 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를 받았고 ‘굿바이 싱글’보다 1년 앞서 개봉을 했으며, 연이어 ‘시그널’까지 촬영과 방송을 마친 것. 이렇게 오랜 시간 ‘굿바이 싱글’을 준비했던 데는 치열하게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고쳐나갔던 김태곤 감독과 동료 배우들의 노력이 있었다.

“사실 ‘굿바이 싱글’이 어찌보면 익숙한 방식이고 누구나 아는 이야기에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재미있기도 하고 장치적인 설정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죠. 그런데 이게 새롭지 않기 때문에 겉돌거나 진짜 감정이 안나오면 위험이 있는 설정이기도 하거든요. 그 지점을 만드는 부분에서 정말 제대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아주 치밀하고 치열하게 굉장히 많은 회의를 진행했었고요. 배우인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할 정도면 배우를 뺀 스태프들은 얼마나 회의를 많이 했겠어요. 감독님이 2년 넘게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저랑 만나서도, 문자로도 의견을 나누고 했었는데 캐스팅이 확정되고 나서는 더 직접적으로 아이디어를 많이 나눴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고 막혔던 부분들은 촬영 직전까지 굉장히 고민하면서 촬영했었죠”

이렇게 오랜 준비 기간이 있었던 덕분에 ‘굿바이 싱글’은 완벽한 캐릭터 성격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시사회 당시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하기도,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던 ‘웰메이드 코미디 영화’로서의 탄탄한 스토리 구성의 비결이었다.

김혜수는 이러한 철저한 캐릭터 구축과 분석, 김태곤 감독 특유의 ‘자연스러운 코미디’에 대한 추구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가장 고마웠던 것은 제게 코미디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부담이랄까, 소통되지 않은 과잉이나 과함이 주는 부작용이 있는데 진짜 캐릭터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코미디 영화지만 코미디 영화이기 때문에 과잉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내가 지금 코미디 영화 연기를 하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 않게끔 해 주셨던 것이 너무 감사하죠”

그 이유에는 김혜수가 ‘정석파’ 배우라는 점이 있었다. 김혜수는 “제가 의외로 연기를 굉장히 정석으로 하는 편”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애드립을 정말 못하는 편인데, 캐릭터가 구축이 잘 되니까 오히려 애드리브라는 것이 내가 여기서 하나를 더 해서 재미를 줘야지 보다는 캐릭터의 확장성, 연장이라는 점에서 제가 캐릭터를 느끼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개인적으로 말 자체로 웃기는 애드립은 좋은 애드립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마동석씨는 그런 면에서 정말 대단하신거죠. 저는 그런 능력이 별로 없는 편인데, 예를 들어 영화 속 뉴스데스크 장면에서 제게 정해진 대사가 있었지만 그걸 고주연이 쓸만 한 단어로 바꿔서 현장에서 연기를 했던 거였거든요. 연기를 했던 저조차도 ‘내가 이런 것을 했네’라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었던 경험이었는데, 정말 웃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캐릭터가 워낙 잘 구축이 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날 인터뷰에서 김혜수는 ‘미혼모’와 ‘중학생’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냐는 질문에 자신의 소신이 담긴 답을 내놨다.

“‘단지’(김현수)가 저희 영화에 걸맞지 않게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설정인데, 생각해보면 사실 현재 우리의 누군가를 이야기하고 있는거에요. ‘고주연’은 모든 것이 갖춰졌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결핍덩어리고, ‘단지’ 같은 경우에는 사실 그 때는 철 없어도 되고 꿈꾸고 꿈이 100번 바뀌어도 상관없을 때인데 상황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철듦을 강요당하는,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정말 결핍이 과잉된 사회적 소수자-약자 입장이잖아요. 저는 그런게 좋았어요. 특히 저는 직업이 배우다보니까 실제 나와 드러나는 나의 갭을 느끼면서 느껴지는 바로 그런 결핍을 대변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결핍을 가진 두 사람이 각자 다른 목적으로 모의를 하지만 예상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누군가의 편이 되어버린, 그러면서 내 편을 얻게 되는 그런 이야기인데,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심 같은 것들이 반짝반짝 느껴졌었어요.

‘굿바이 싱글’에는 어떻게 보면 여성의 문제, 사회적 편견 등이 살짝 포함이 되어 있어요. 그렇지만 그게 특별한 게 아니라 늘 우리들 저변에 있는거고, ‘미혼모’라는 문제에 봉착하지 않더라도 여자라면 한 번쯤은 임신에 대한 생각을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니까. 결국은 우리가 사실 느끼는,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우리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어 김혜수는 영화 속에서 함께 작업을 했던 배우들과의 호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은) 너무 좋았어요. 좋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건 연기자로써는 가장 이상적이고 축복받는 상황인 것 같아요. 좋은 연기라는 것은 결코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없는 걸 편집으로 만들 수 없는 탓에 좋은 배우들을 만나는 건 너무 큰 공부고 좋은 경험이죠”

김혜수가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던 것은 중학교 3학년 시절. 공교롭게도 ‘굿바이 싱글’에서 김혜수와 가장 가까이 호흡을 맞췄던 아역 배우 김현수 역시 올해 중학교 3학년의 나이다. 그래서인지 김혜수는 김현수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수는 사실은 우리 영화에서 숨은 주인공이이에요. ‘굿바이 싱글’에서 ‘단지’ 역을 캐스팅 할 당시 저희에게는 가공되지 않은 ‘진짜’를 연기 할 수 있는 아이가 필요했었어요. 그래서 꽤 오랜 기간 오디션을 열고 아역 배우를 찾는 데 주력을 했었죠. 최종 오디션 현장에 저도 있었는데, 거르고 걸러 만장일치로 현수가 캐스팅이 됐어요. 요즘엔 성인 배우 못지않게 테크니컬한 연기를 하는 아역 배우들도 많지만 현수는 테크니컬한 연기는 안하고 하나도 기교가 없지만 진짜 느껴지는 감정을 연기 하니까 자꾸 그 아이를 더 보게 되는거에요. 현수의 연기에는 과장이 없고. 본인이 마음으로 와 닿거나 느껴지지 않으면 연기를 못하는 아이에요. 그래서 우리 영화에서 현수의 모습이 아닌 것은 없는거죠. 파트너로써 ‘진짜’ 감정만 가지고 연기를 하는 파트너는 정말 최고에요. 그 앞에서는 거짓이나 가식이 있을수가 없거든요, 정말 좋았어요”

문득 김혜수에게도 극 중 ‘단지’ 못지않게 ‘주연’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늘 곁을 지켜주는 인물인 ‘평구’(마동석 분) 같은 친구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는 아쉽게도 그런 이성 친구가 없어요. 동성친구는 ‘내 편’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인지 제가 지금 무언가 부족하거나 충족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성별은 다르지만 진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주변에 ‘남자 사람 친구’로써는 동료들고 있고 대학 친구들도 있지만 빈번하게 내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평구’같은 친구, 성을 의식하지 않고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싶은거죠. 동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느끼는 연대감이라는 것이 있듯이 이성이기 때문에 동성끼리 위로나 의지가 되지 않는 사회적인 입장, 다른 관점에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 애인 말고 좋은 이성친구, 이성적인 것들을 초월해서 진짜 내밀함을 교류하는 친구가 있는 분들이 너무 부러워요”

인터뷰가 진행될 수록 사람 좋아하고, 그간 지내온 연기인생에서 묻어나는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김혜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김혜수를 오랜시간 꾸준히 사랑받는 여배우로 만든 그녀만의 매력이 아닐까.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사람으로 인해 배가 되기도 하고, 많이 깨닫기도 하고, 모든 것은 사람에게서 오는 것 같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동력을 ‘사람’이라고 표현한 김혜수. 알면 알 수록 멋진, 진국 중에 진국인 이 배우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타서울TV 홍혜민 기자/사진=영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