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김명민,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배우의 연기 20년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SS인터뷰] 김명민,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배우의 연기 20년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 승인 2016.06.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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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 앞에는 ‘연기 본좌’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는다. 본인은 싫어하는 수식어지만 대중들은 그를 연기에 환호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작품 선정 기준에 관해 ‘내가 해도 되고 남이 해도 되는 건 선택을 안 하게 된다’고 말한 적 있는데 아 다르고 어 다른 뉘앙스 차이예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는 뜻에서 한 말이죠. 내가 하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 흥행이 보장되는 상업코드가 없어도 재미있게 연기자로서 후회안할 작품을 하고 싶다는 뜻이에요.”

배우 김명민이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1996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명민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는 물론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파괴된 사나이’, ‘조선명탐정’ 등 스크린, 브라운관 할 것 없이 완벽한 캐릭터 몰입으로 대중들에게 신뢰를 쌓아왔다. 작품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작품에 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잘되는 것만 목적으로 하는 것도 배우의 길을 좁히는 행위다. 김명민은 “돈만 좇아 작품을 선택하고 길을 걸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겁니다”라며 20년을 되돌아 봤다.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경찰 출신의 사건 브로커 필재(김명민 분)가 사형수로부터 특별한 편지를 받은 뒤 사건의 배후세력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내용을 담았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서 김명민은 ‘조선명탐정’ 시리즈와는 또 다른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김명민은 속물근성에 허세 가득한 모습에서 연민을 통한 변화까지 다채로운 모습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또한 성동일, 김상호를 비롯해 김영애, 신구, 김뢰하, 박혁권 등 연기 베테랑이 모여 작은 배역까지 촘촘하게 연기 그물망을 짠다.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연배우로서 좋은 팀을 만나는 건 엄청난 힘이에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죠. 에너지도 보충하고 실수하면 일으켜 세워주고 누수를 막아주는 분들이 적재적소에 있어 너무 든든했어요. 이 팀으로 올림픽에 나가면 금메달도 딸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베테랑 선수와 함께 연기하는 짜릿함이 그대로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재미에 관해 김명민은 ‘배우를 보는 맛’을 언급했다. 김명민은 “캐릭터의 플레이 자체가 너무나도 잘 짜여있어요”라며 “캐스팅이 정말 중요했고 베테랑 배우들이 필요했는데 이 이상 좋을 수 없는 배우들이 잘 꾸려져서 감독님도 신나서 작품을 했죠”라고 말했다. 영화는 영남제분 여대생 살인사건과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을 소재로 했다. 이미 ‘재벌 갑질’을 다루는 영화들이 수차례 개봉했고 사랑받았다. 신선하지 않은 소재일 수 있지만 영화는 권력을 뒤엎는 대결에만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다. 피해를 입은 힘없는 부녀와 각 인물들의 관계 변화를 중점으로 그리며 기존영화와 차별점을 둔다. 특히 범죄자 아버지를 둔 필재가 동현(김향기 분)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정의를 위해 사건에 뛰어드는 과정은 탄탄한 드라마를 느낄 수 있다.

“필재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끊은 지 오래됐어요. 기억을 지우고 모범경찰이 되기까지 치욕을 겪었죠. 아버지는 자신의 길을 막은 족쇄와 같은 존재였어요. 분명 필재에게 아버지는 망각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사람이었을 거예요. 영화 속에 삭제된 장면이 있는데 할아버지가 필재에게 편지를 주는 장면이 있어요. 아버지가 죽기 전에 쓴 편지인데 열어 보니 앞에는 ‘사랑하는 아들 필재에게’라고 적혀있어요. 필재는 읽지도 않고 찢어버리죠. 그리고 밖에 나가는데 비가 오죠. 거기서 필재는 꼬깃꼬깃한 편지를 다시 펴서 읽어요. 동현과 동질감을 느끼고 사건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계기가 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영화에서 필재 부자 관계보다는 부녀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뺐어요. 덕분에 부녀의 절절함이 강조됐다고 생각해요.”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김명민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20kg을 감량했다.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는 관련 논문을 읽으며 촬영했고,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지휘연습만 5개월을 했다. 철저한 캐릭터 분석과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그에겐 어느 순간 ‘연기 본좌’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 배우들이 앞서 길을 걸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민망하고 부끄럽죠. ‘연기 본좌’라는 말이 진짜 미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누누이 싫다고 말하지만 바뀌지 않네요. 솔직히 괴롭습니다. 낙인이 찍히는 기분 같아요. 정말 뛰어나다면 그런 수식어가 필요 없잖아요. 이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죠. 그냥 이름만으로 가치가 있는 배우,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길을 따랐던 김명민도 후배들이 따르는 길잡이가 됐다. 현장에선 어느덧 선배를 넘어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

“데뷔 20주년이라는 걸 주위에서 말해줘서 알게 됐어요.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와 연륜은 비례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세월이 지날수록 사람과의 관계도 깊어지는 게 느껴지긴 해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제 초심과 멀어지고 나태해지고 안일해질 수도 있다는 거죠. 이제 촬영 감독이나 배우들이 거의 후배들이에요. 그러니 나도 모르게 대우를 받고 있는데 거기에 안주하는 건 위험한 독이죠. 제가 신인들에게 좋은 호흡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노력할 부분이 커졌다고 생각해요.”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