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정만식 “‘대호’, 어떤 욕망을 가졌는지 돌이켜 볼 수 있는 영화”
[SS인터뷰] 정만식 “‘대호’, 어떤 욕망을 가졌는지 돌이켜 볼 수 있는 영화”
  • 승인 2015.12.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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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인터뷰] 정만식 “‘대호’, 어떤 욕망을 가졌는지 돌이켜 볼 수 있는 영화”

‘허삼관’부터 ‘베테랑’, ‘내부자들’, ‘대호’까지 2015년 극장가에는 정만식이라는 이름이 6번 올랐다. 올해 작품 수를 말했더니 그렇게나 많이 했느냐며 자신도 놀랐다. ‘다작왕’ 이경영의 기록(10편)에는 못 미치지만, 정만식의 2015년은 뜨거웠다.

영화 ‘대호’는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으려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다. ‘대호’에서 정만식은 산군이라 불리는 대호가 남긴 상처를 얼굴에 간직한 채 복수를 위해 어떠한 방법도 가리지 않는 포수대의 리더 구경 역을 맡았다. 6개월 동안 정만식은 보이지 않는 호랑이를 쫓고 시선을 주고받고 연기 호흡을 맞춰야 했다. 6개월 동안 힘겹게 연기를 했지만 정작 상대 배우인 대호의 실체는 나오지 않아 공개 직전까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궁금함보다 불안감이 더 많았어요. 겁이 났죠. 언론시사회 아침에 나올 준비를 하는데 겁나더라고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할 말이 없으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김대호 씨(영화 속 호랑이를 부르는 애칭)와 팀워크에 대한 자신감이죠. 이 영화가 한국 영화계에서 센세이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CG와 드라마가 함께 들어간 영화인데 완성도가 높죠. 공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호랑이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새끼를 툭툭 친다든지 소리를 치는 모습에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대호’에서 정만식은 최민식과 대립하며 극의 한 축을 묵직하게 이끌어 간다. 그를 캐스팅한 것은 최민식이다. 정만식은 최민식의 연락을 받고 시나리오도 읽기 전에 이미 작품을 하겠다고 말했다. 순전히 믿음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부담이 없으며 말도 안 되죠. 부담감과 책임감이 혼합된 기분이었어요. 최민식 선배가 함께하자고 말해주신 것도 영광인데 작품도 좋으니 두 배로 기쁘고 부담됐죠. 그런데 제가 단순해서 빨리 고민하고 빨리 결정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읽었는데 한 번에 쭉 읽혀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재미가 있었다는 말이죠. 배역이 크고 작고를 떠나 재미있어요. 우리나라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화들이 많잖아요. 구미호 같은 이야기가 있었으면 했어요. 물론 당시에 호랑이를 구현하는 것에는 의구심이 들었죠”

선 승낙을 했던 정만식은 시나리오를 보고 계속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작품 초반에는 구경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해 폐쇄성을 보여 아내를 서운하게 만들 정도로 집중했다. 정만식은 구경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동병상련을 찾았다. 구경은 호랑이 하나만을 위해 평생을 바쳤고, 정만식 역시 20여 년을 연기만 하고 살았다. 정만식은 구경을 만나 안아줬고 그 뒤로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왔다. 정만식은 “저는 가만히 있었어요. 자연이 해준 거죠”라며 당시의 연기를 회상했다. 정만식은 촬영 당시 연기의 기술은 생각하지 않았다. 앵글이나 캐릭터적인 설정 없이 산이 움직이면 산을 바라보고 바람이 불면 그저 바람을 느끼며 감각에 집중했다. 이전과는 다른 연기를 해야 했고 롤 역시 커졌다. 정만식은 자신의 연기에 의문이 들 때쯤 감독을 찾아가 물었다.

“오죽하면 촬영을 절반 정도 했을 때 잘하고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네 왜요?’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배우가 갈 길을 가다가 이상하면 물어볼 수도 있지 대답 좀 길게 해줘요’라고 따졌더니 감독님이 ‘잘 하고 계시는데 왜 그래요’라면서 ‘신세계’와 구도적으로 비슷하다는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신세계’에서 자성(이정재 분)이 맡은 부분을 ‘대호’에서 구경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안심이 됐어요.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잠잠하게 양쪽을 보는 입장인 거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서 고민이었는데 잘하고 있다니 힘이 됐죠.”

   
 

영화 속에서 구경은 ‘대호’를 두고 ‘잡고는 싶으나 쉽게 잡히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일본군이 ‘대호’를 원했고 구경 역시 ‘대호’ 만 바라보며 살았다. 구경은 일본군을 동원하고 결국에 천만덕까지 끌어들인다. 폭탄이 터지고 산이 망가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산군 ‘대호’의 습성을 파악하고 일본군의 기술까지 동원하며 ‘대호’라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구경도 처음에는 보통의 사냥꾼처럼 먹을 것만 잡고 팔면서 살았던 인생이었죠. 하지만 동생이 죽고 명포수로 사는 것보다는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죠. 천만덕과 구경은 같은 과오를 겪고 아픔을 지닌 사람이에요. 하지만 천만덕은 자연의 섭리를 받아드렸고, 구경은 욕망과 복수심을 지니고 이에 맞서는 거죠”

정만식은 유독 선이 굵고 악한 역을 많이 맡아 왔다. 과거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공효진의 뺨을 때렸을 때는 미니홈피가 폭발할 정도로 악플에 시달렸다. 최근 ‘내부자들’에서는 부장검사로 분해 조승우에게 “잘하지 그랬어, 잘 좀 태어나든가”라며 모두의 분노를 유발한다. 강한 인상 덕에 지나가는 어르신께 뒤통수를 맞을 것 같지 않지만, 혹시나 어려움은 없는지 묻는 말에 “연기가 아니면 언제 그렇게 해보겠어요”라며 웃어넘겼다. 이어 그는 “다른 것을 탐구하고 연기할 때가 재미있지 비슷하면 항상 실제 자신과 비교를 하면서 연기를 의심하게 돼요”라며 자신의 연기관을 밝혔다.

   
 

극장가에 ‘대호’와 ‘히말라야’라는 대작이 동시에 걸렸다. 두 영화 모두 설산을 배경으로 하며 자연 앞에 존재하는 인간을 다룬다. 정만식은 “아이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설화 같기도 해요. 아름다운 설경과 함께 우리나라의 정서를 자극하는 호랑이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라며 ‘대호’를 소개했다. 또한, 그는 “사라져 가는 유물들의 관계를 보시면 그 시대의 인물상에 더욱 근접하게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 수 있었음에도 망쳐버린 시대죠. 지금 시대의 사람들도 ‘사냥’을 한다고 생각해요. ‘대호’는 본인들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돌이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대호’를 두고 많은 사람이 ‘항일영화다’, ‘잃어버린 가치의 상징이다’, ‘대자연을 상징한다’ 등 지키고자 했던 가치에 관해 다양하게 해석한다. 정만식이 ‘대호’를 통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사라져가는 가치는 무엇일까.

“천만덕은 산을 딛고 살았고 산에 의지했잖아요. 우리는 요즘 ‘믿는다’, ‘의지한다’라는 것이 흔하지 않아요. 혼자 살 수 있겠죠. 하지만 혼자가 힘들 때 어깨를 짚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데 그러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혹 누군가 의지하려고 하면 뿌리치고요. 신뢰와 의리가 사라진 것이 안타까워요. 물론 그 안에 깔린 것은 사랑이겠죠. 천만덕도 구경도 칠구도 한때는 산을 사랑했고 감사했을 거란 말이죠.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도 그런 마음을 간직했으면 해요. 사랑하는 마음, 감사함과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죠.”

   
 

정만식은 2015년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대호’를 만났고 내년 역시 행복한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정만식은 현재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과 함께 영화 ‘아수라’를 촬영 중이며 김홍선 감독의 ‘브로커’, OCN 드라마 ‘동네의 영웅’을 준비 중이다.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사진= 고대현 기자]